모든 정보가 나를 중심으로 정렬되는 사회, ‘초개인화(hyper-personalization)’의 시대가 우리 앞에 도래했다. 기술은 개인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감정의 흐름까지 예측한다. 이 편리함은 분명 이전 세대가 누리지 못한 새로운 자유이지만, 동시에 사회적 관계의 균열을 예보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모든 것이 무한히 연결되어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한 개인은 고립되어 간다. 이것이 초개인화의 역설이다. 개인의 감정과 행위는 데이터가 되고, 취향은 수치로 환원된다. 문화의 중심이 ‘공동체’에서 ‘개인’으로 이
새로운 정책이나 문화공간, 공원 조성 등 도시에서 프로젝트가 추진되기 이전 기획, 연구단계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사례조사'다. 보통 국외 도시의 성공 모델 혹은 관련 상위기관의 우수사례를 조사하고 참고한다. 참고해서 만들어놓은 것들은 표면적으로 그럴듯해 보이기도 하지만 결과는 대개 졸속이거나, 아류에 그치고 만다. 성공사례 기저에 내재해있는 사상, 철학, 특수성,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양식에 대한 이해의 부재, 도시의 맥락과 서사를 온전히 이해하고,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디선가 본 듯한 건축물, 랜드
'소부장'이라 불리는 소재·부품·장비 산업은 흔히 국가 제조 경쟁력의 근간으로 여겨진다. 반면 예술은 감성과 창의성의 세계다. 얼핏 상반된 이 두 영역은 경제성과 생산성, 품질과 안전을 중시하는 산업 가치와, 표현의 자유와 미적 탐구를 지향하는 예술 가치로 구분된다. 그러나 정말 이 둘은 동떨어진 영역일까? 산업 생산물과 예술 작품을 모두 '물질' 혹은 '소재'라는 시각으로 바라보면 어떤가. 서로 긴밀히 맞닿아 있지 않은가.인간의 손에서 탄생한 제품과 예술품은 결국 모두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 자체도 물질적 존재다. 물질이 가
창원시에는 현재 표류 중인 전시·관람·문화공간이 있다. SM타운(창원문화복합타운), 창원시립미술관, 창원산업·노동·역사박물관, 대한민국민주주의전당이 그것이다. 벌써 몇 해째 시민과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 문화공간이 모두 건립되고서 운영하는 데 필요한 연간 시 예산은 얼마일지 추산해보기는 했을까?2016년부터 추진된 SM타운은 안상수 시장 재임기간 "K팝 한류 메카도시로 만들겠다"며 민간투자 사업을 벌여 건물만 지어놓고, 수년간 운영하지 못한 문화공간이다. 2024년 8월 창원문화재단에서 총괄감독
예술은 영어로 '아트(art)'이고, 이 단어의 어원을 살펴보면 그리스어 '테크네(techne)'를 번역한 라틴어의 '아르스(ars)'에서 유래한 것이다. 예술의 기원은 '솜씨' 혹은 '기술'을 의미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떤 분야든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그 '기술'을 연마한 이후에 할 수 있는 것이 예술이었다는 뜻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예술은 수학적 원리로 명확하게 설명 가능하며, 규칙성이 있는 것이었다. 기술과 예술이 동의어였다는 사실은 오늘날 새삼 흥미롭게 다가온다.중세 이후까지 계속된 '기술'로서의 '예술' 개념은 1
2024년 2월 22일 경남도청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창원은 우리 경제발전의 심장 역할을 해왔지만, 문화가 없다. 문화와 융합되지 않은 산업은 발전할 수 없다"고 말하며, 국가산업단지에 '청년이 살고 싶은 문화가 풍부한 산업단지 조성'할 것을 지시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속도"라고도 강조했다. 이는 창원산단 내 청년 노동자가 열악한 근무환경 개선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물론 문화와 산업이 융합하고, 산업도시에서 살아가는 노동자의 삶과 일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국가에서 정책을 펼치고 국비를 지원하는 것은 긴요한
아닌 밤중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다. 드라마 같은 밤은 길었고 영화 속의 권력을 쥔 이가 더 큰 권력을 요구하고자 스스로 벌이는 친위 쿠데타 같았다. 역사에서는 독일의 프로이센 쿠데타와 장검의 밤, 일본의 2.26 사건, 중국의 4.12 쿠데타, 그리고 대한민국의 '사사오입' 개헌, 박정희의 10월 유신, 전두환의 5.17 내란 등이 그랬다.통상적으로 친위 쿠데타는 초반에 실패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이미 그 정도 힘을 갖춘 이가 벌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 친위 쿠데타 같았던 비상계엄령은 새벽 4시가 넘어 해제되면서 실
세수 결손을 이유로 지방교부세가 대폭 삭감되었다. 마치 당연한 것처럼 경남의 문화예술 예산도 강력한 세출 구조 조정을 당했다.지방소멸 위기를 맞고 있는 경남에서 손익관계를 떠나서 문화예술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들이 단순히 경제적 이익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사회적 가치 창출로 지속 확장됨에도 경남의 문화예술 예산은 대폭 삭감되었다.'2023년 광역자치단체 문화예술 예산 현황'에 따르면 광역자치단체 전체 예산 중 문화예술 예산 비율이 가장 낮은 곳이 경남이었다. 광주시(2.84%)에 비하면 3분의1 수준으로 전체 예산 중 문화예
"추석이 가까워졌습니다. 벼가 익었습니다. 밤도 익었습니다. 어머니가 새 옷을 만드십니다. 아버지가 새 신을 사 오셨습니다."어렴풋이 기억에 남은 어릴 때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추석 명절이다. 그런데 기다림과 설렘으로 손가락 꼽아가며 기다리던 그 추석은 어디로 갔을까?추석을 앞두고 소비가 가장 활발해지는 시기를 두고 '대목'이라고 했고, 반대로 추석 앞두고 소비가 뚝 떨어지는 현상을 '대목 전에 대목 탄다'고들 했다.추석이 코앞이면 '단대목'인데, 예전 같지 않다. 자꾸만 간편해지고, 축소되어가고, 그래서 이러다가 추억 속에나
지속 가능한 축제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콘텐츠가 좋으면 명칭에 연연하지 않는다.삼바 춤으로 유명한 브라질 리우 카니발(Rio Carnival)이나 맥주를 매개로 각종 이벤트를 벌이는 독일 뮌헨 맥주 축제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는 국제 카니발이나 세계 축제와 같은 명칭을 사용하지 않음에도 축제의 독창성과 질적 내용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획득하고 있기 때문이다.축제의 영어 표현 Festival은 즐겁고 흥겹다는 뜻을 지닌 라틴어의 festivus에서 유래했다. Carnival이라고도 표현한다. 축제는 세부적으로는 다양
경남도립미술관이 2004년 6월 23일에 개관했으니 이제 20주년을 맞았다. 가까운 일본과 비교하면 우리는 유독 미술관에 인색했다. 100만 도시 창원에도 시립미술관이 없고, 주변 도시들 역시 변변한 공공미술관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경남도립미술관 20주년은 의미 있다.설립 당시에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20세기 이후 경남의 현대미술 작품을 수집·보존·연구함으로써 향후 지역 미술 연구의 토대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은 얼마나 성취했을까? 그래서 지역 미술사 연구와 정립을 위한 경남지역 작가 중심의 기획전들은 또 얼마나
지금은 바야흐로 1인 크리에이터(creator) 시대다. 이전에는 이 직업이 디자이너들을 지칭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낱말의 의미처럼 '창작자'라는 표현에 무게가 많이 실렸었다. 그러나 이제는 온라인 플랫폼에 올리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으로 더 많이 사용된다. 특히 유튜브(YouTube)에서 동영상을 생산하고 업로드하는 이들을 지칭하면서, 크리에이터가 무엇을 창작하는가에 따라 게임 크리에이터, 먹방 크리에이터, 뷰티 크리에이터, 여행 크리에이터, 홈트(홈트레이닝) 크리에이터 등으로 불린다. 그리고 이른바 '크리에이터
우리는 하루에 얼마나 많은 영상을 만나고 있을까? 스마트폰 보급으로 영상 제작을 촬영과 편집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독점하던 시대를 벗어나 바야흐로 영상 콘텐츠의 홍수 시대가 되었다.1인 미디어 시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상을 전문적으로 찍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작은 공간에 자신만의 스튜디오를 만들고 영상을 제작하는 게 보편화되었다. 주변에서 유튜브를 하고 싶어 하는데 어떻게 하면 될지 물어올 때가 많은데, 기자재는 뭐가 필요한지? 무엇부터 배워야하는지? 그때는 휴대전화로 먼저 시작하라고 말해준다. 이제 누구나 스마트
잠깐 도시를 벗어나 그 도시를 바라볼 수 있는 섬이 손 닿을 만한 곳에 있다.사진작가 고 김영갑의 '그 섬에 내가 있었네'의 제목처럼 지난 추석 연휴 나는 한나절을 돝섬에 있었다. 유원지를 만들 때 친구의 노동일에 따라와서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고부터 수십 번을 여러 이유로 돝섬을 드나들었다.돝섬은 고운 최치원의 설화가 전해지는 섬이다. 당나라에서 돌아와 해인사로 들어가기 전에 별서를 짓고 후학을 키웠다는 이야기와 그 징표로 직접 새겼다는 월영대가 섬이 보이는 곳에 있다. 돼지의 후손이라는 경주 최씨의 시조설화와 금빛 돼지가 된 섬
문화도시 사업은 도시 문화계획을 통한 사회발전 프로젝트로 ‘지역문화진흥법’에 근거, 법정 ‘문화도시’를 지정하는 정책이다. 사업 근거법인 ‘지역문화진흥법’에서는 문화도시를 '문화예술·문화산업·관광·전통·역사 등 지역별 특색 있는 문화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문화 창조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제15조에 따라 지정된 도시를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이를 근거로 문체부는 제1차 문화도시 7곳, 제2차 문화도시 5곳, 제3차 문화도시 6곳, 제4차 문화도시 6곳 등 문화도시 총 24곳을 지정했다. 그리고 ‘제5차 법정문화도시’지정을 위한
프랑스 사회학자 장 비야르는 을 통해 청년들에게 '사회적 배낭'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배낭 안에 총 5가지 꾸러미(16∼28세 청년을 위한 보편적 청년수당, 각종 공과금과 보험 부담금 면제, 국내 여행 제도 등)를 담자고 제안했는데, 유동하는 시대에 적응력을 갖춘 청년을 배출하려면 노동, 학업, 여행, 사랑 수업이 필요하다는 통찰에서 나온 아이디어다.프랑스에는 마크롱 대통령 문화정책의 핵심 프로젝트인 '청소년 문화패스(Pass culture)'가 있다. 2018년 최초로 도입된 이 제도는 15~18세가 수혜 대
로컬 크리에이터(Local Creator). 이 새로운 용어는 대략 2015년부터 사용되면서 2018년 이후 급격하게 늘어가다가 2020년 중소벤처기업부가 '지역기반 로컬크리에이터 활성화 지원사업'을 신설하면서 공공사업에서도 사용되는 공식적인 명칭이 되었다. 특히 국정과제 119번, 6대 국정목표 중 하나로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 실현을 위해서 잠재력 있는 골목상권을 로컬 브랜드로 키우고, 활성화 사업을 통해 주민들의 일상적인 활동이 이뤄지는 생활권을 살고 싶고, 찾고 싶게 만드는 것으로 그 사용이 확산하였다.이전
예술의 기본 의미는 수 세기에 걸쳐 여러 번 바뀌었고 21세기에도 진화하고 있다. 그중에서 아서 단토가 에서 다룬 것은 '예술의 종말 이후'의 예술작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예술이라 칭하는 시대 이전에도 예술은 있었듯이 종말 이후에도 예술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의 종말 이후 '예술'은 어떤 처지일까?1936년 발터 벤야민은 복제 가능한 예술의 시대에 세상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비복제성의) 예술작품은 '아우라'를 가진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가 말한 아우라는 실종 위기를 맞았다.최근 들어 기존 데
이른바 20세기 후반 이후를 뮤지엄 시대(Museum Age)라 지칭할 만큼 최근 몇 십 년간 뮤지엄은 전 지구적으로 확산하고 수적으로 증가하면서 우리의 삶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뮤지엄에 옹색했던 우리나라도 광역·기초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투어 공공미술관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충남도와 경북도가 도립미술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고, 충주시를 비롯해 춘천시, 화성시, 경주시, 여수시, 제천시, 구리시, 전주시, 청도군, 부여군, 해남군 등이 공공미술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경남지역만 해도 창원시, 김해시, 통영시
코로나19 유행으로 중단됐던 일본 무비자 여행·관광이 재개되었다. 동시에 한국인 관광객이 줄을 서고, 한국 대통령이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를 통 크게 양보했다고 발표했다. 히로시마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한국 대통령이 일본 총리와 나란히 참배하면서 예상처럼 강제징용과 위안부 동원의 가해자인 2차 세계대전 전범국 일본이 원폭 피해자로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후쿠시마 오염수 '사찰단'이 아니 '시찰단'이 면죄부를 주고자 갔고, 미국은 한미일 미사일 방어훈련의 장소를 동해가 아닌 '일본해'(Sea of Japan)로 표기했다. 외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