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모델 좇는 도시엔 껍데기만
​​​​​​​자기 문맥 찾아야 새 생명 얻어

새로운 정책이나 문화공간, 공원 조성 등 도시에서 프로젝트가 추진되기 이전 기획, 연구단계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사례조사'다. 보통 국외 도시의 성공 모델 혹은 관련 상위기관의 우수사례를 조사하고 참고한다. 참고해서 만들어놓은 것들은 표면적으로 그럴듯해 보이기도 하지만 결과는 대개 졸속이거나, 아류에 그치고 만다. 성공사례 기저에 내재해있는 사상, 철학, 특수성,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양식에 대한 이해의 부재, 도시의 맥락과 서사를 온전히 이해하고,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디선가 본 듯한 건축물, 랜드마크와 같은 조형물, 이름만 바뀐 문화, 관광, 산업 등 어느 도시에 가도 엇비슷한 것들과 마주하고 있다. 우수사례가 목적이 된, 이른바 '사례의 덫'에 빠진 것이다.

창원의 '빅트리' 구상은 자연 중심의 친환경 도시 정책을 반영한 싱가포르 '슈퍼트리'의 단순 외형적 모방이었다. 물놀이 시설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인공나무 조형물을 40m 높이 전망대로 만들어 놓았다. 그뿐인가. 앞선 창원시장들은 마산해양신도시에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 같은 아트센터를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그마저도 지키지 않았다. 최근에는 김해시립김영원미술관을 영국 테이트모던 같은 미술관으로 기대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왜 우리가 '~와 같은 것'을 만들어야 하나? 왜 '~처럼' 되려고 하나? 주체성 상실은 도시의 경쟁력을 잃게 한다. 발터 벤야민이 기술복제는 '아우라'를 잃는다고 지적했듯이 도시 주체성과 맥락을 배제한 채 외피만 복제해서 가져온 것들은 독창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생명력을 지니기 어렵다. 또한, 지역을 국제사회의 주변부로 더욱 세차게 밀어내는 요인이 된다. 심리학에서는 인간 인식의 70%가 시각적 사고, 30%가 언어적 사고에 의해 구성된다고 보았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성과를 더 쉽게 좇는다. 하지만, 그대로 복제하는 순간, 결과물은 그저 닮은꼴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우수사례를 찾는 기초 조사 방법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방향이 잘못된 것이다. 주장을 뒷받침하는 장치이자,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는 것이지, 베끼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논문의 각주가 연구자의 독창성을 뒷받침하지 않듯이, 조사는 그저 발판이어야 한다. '브리콜라주(bricolage)', 즉 익숙한 것을 엮어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사고가 필요하지 않을까. 단순 복제가 아닌 전복적 차용, 거기서 창조성이 나온다.

1차 금속, 조립금속을 중심으로 한 창원의 제조산업도 다르지 않다. 대기업의 설계와 기술을 받아 단순 복제 생산, 납품하는 체제는 한계에 봉착했다. 클라우스 슈밥이 <제4차 산업혁명>에서 강조했듯, 데이터, 기술, 창의적 아이디어가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며, 지식재산권, 특허권 등 이를 보호하고, 활용할 수 있는 지식재산제도가 국가의 핵심역량이자 성장동력이 된다. 다품종 소량생산, 맞춤형 제조와 같은 '디자이너블'한 창의적 지식 기반 산업으로의 전환 없이는 사람도, 기업도 빠르게 대체될 것이다.

문화는 도시의 정체성을 비추는 거울이다. 우수사례 찾기에 매달린 도시는 껍데기만 남는다. 그러나 자기 문맥을 발견한 주체적 도시는 새로운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레퍼런스, 우수사례가 아니다. 산업·문화·예술·건축·환경·생태 전반에 걸쳐 그 도시이기에 가능한 이야기를 써내려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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