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전 벗어나 치밀·장기 접근을
도시의 문맥·서사·미래 사유부터
2024년 2월 22일 경남도청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창원은 우리 경제발전의 심장 역할을 해왔지만, 문화가 없다. 문화와 융합되지 않은 산업은 발전할 수 없다"고 말하며, 국가산업단지에 '청년이 살고 싶은 문화가 풍부한 산업단지 조성'할 것을 지시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속도"라고도 강조했다. 이는 창원산단 내 청년 노동자가 열악한 근무환경 개선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문화와 산업이 융합하고, 산업도시에서 살아가는 노동자의 삶과 일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국가에서 정책을 펼치고 국비를 지원하는 것은 긴요한 문제이다.
오늘날 산업의 구조적 변화와 디지털 전환, 에너지 전환이 일어남과 동시에 지역 청년 인재들이 수도권으로 끊임없이 유출되고, 기업 기반시설 노후화, 숙련 노동자와 사용자 은퇴 시기 등이 맞물리는 위기 속에 신속한 대응이 얼마나 중요할까.
그러나 문화는 속도전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문화는 조건 없이 투자하고 희생하더라도 그 성과를 단기간에 내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치밀하고, 장기적인 계획으로 긴 호흡을 하고 내밀하게 접근해야 한다.
특히 문화선도산단 조성과 같은 일을 도모함에 있어 어떤 사람들이 모여 길을 내느냐, 도시민들(노동자들)과 함께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설정하는 것은 중요하다. 도시 전체 문맥과 서사를 촘촘하게 읽어내고, 도시 미래를 사유할 수 있어야 한다.
산업과 문화의 속성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산업은 경제성, 효율성, 생산성을 최우선으로 하고, 문화는 창의성, 다양성, 자율성을 근간으로 하기 때문이다. 산업과 문화의 간극을 접합하는 복합체로서 예술의 효용성을 기대해볼 수는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속성은 '혼융'할 필요가 있다.
기계제조산업도시 창원은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까? 무엇이든 구상만 하면 만들 수 있는 제조 환경(R&D)을 조성하고, 그 환경에 기업인들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접근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면 어떨까. 물론 규모의 경제 논리에 부합하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레이먼드 윌리엄스가 말한 것처럼 문화가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들이 긴밀하게 연결된 '삶의 전체 방식'이듯, 산업에서도 기계부품부터 정밀기계·로봇·신소재, 다시 말해 소부장 제조 산업을 눈에 드러나게 촘촘하게 연결 짓는 것이다. 창원을 중심으로 경남 전체를 아우르는 방식으로.
더 중요한 것은 제조 환경에 기업가, 예술가, 연구자, 엔지니어, 행정가, 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다. 이들과 과학기술·산업·예술을 융합한 연구실험의 물결을 일으킬 수 있다면 지식기반 산업인 제조업의 새로운 혁신 생태계 모델을 만드는 것이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창원의 출사표는 이미 던져졌다. '기계·방산을 품은 메타 문화산단'을 비전으로 삶터·일터·즐김터로 탈바꿈해 일만 하던 곳에서 문화도 즐기는 곳으로 전환한다는 목표로 공모 신청을 했다. 창원의 '문화선도산단' 사업이 공모에서 선정되더라도 그 이후 사업을 유치하고 행정적 절차에 따라 형식적으로 대응한다면 시간과 비용만 소모될 것이 자명하다.
그래서 결과가 어떻든 창원의 미래를 깊이 사유하고, 기계제조산업의 혁신도시로 나아갈 수 있도록 섬세하게 설계해야 할 것이다. 문화는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며, 사람의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니까.
/김나리 피에스아이 스튜디오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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