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 혁신은 예술의 새 지평 열고
예술적 상상력은 기술을 확장한다

'소부장'이라 불리는 소재·부품·장비 산업은 흔히 국가 제조 경쟁력의 근간으로 여겨진다. 반면 예술은 감성과 창의성의 세계다. 얼핏 상반된 이 두 영역은 경제성과 생산성, 품질과 안전을 중시하는 산업 가치와, 표현의 자유와 미적 탐구를 지향하는 예술 가치로 구분된다. 그러나 정말 이 둘은 동떨어진 영역일까? 산업 생산물과 예술 작품을 모두 '물질' 혹은 '소재'라는 시각으로 바라보면 어떤가. 서로 긴밀히 맞닿아 있지 않은가.

인간의 손에서 탄생한 제품과 예술품은 결국 모두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 자체도 물질적 존재다. 물질이 가공되어 재료가 되고, 재료를 다루는 것은 곧 창조의 시작이다. 예술의 역사는 곧 재료의 역사이기도 하다. 고대 동굴벽화의 자연 안료, 종이와 먹, 중세의 템페라, 르네상스의 유화, 현대의 아크릴과 디지털 매체까지 예술은 늘 새로운 재료와 함께 발전해왔다. 예술 표현의 지평은 재료의 발전에 따라 확장되었고, 19세기 인상주의는 '튜브물감'의 발명으로, 20세기 미니멀리즘, 설치미술은 산업 소재의 예술적 전환을 통해 그 가능성을 넓혔다.

오늘날 현대미술은 합성수지, 광물 안료, 나노복합재료, 광섬유, 디지털 미디어를 아우른다. 미디어 파사드, 프로젝션 맵핑, 아두이노 기반의 인터랙티브 아트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센서 기술과 함께 발전해왔다. 산업기술의 진보는 예술에 새로운 표현의 장을 제공했고, 예술은 그 기술에 인간적 감각과 문화적 깊이를 더했다. 산업혁명 이후 금속, 유리, 플라스틱 같은 신소재는 우리의 생활 방식을 바꾸었으며, 이는 곧 건축과 디자인, 예술의 판도를 새롭게 했다.

소재 혁신은 단지 새로운 산업의 탄생을 넘어서 노동, 소비, 감성 문화 전반을 변화시킨다. 이제 '소부장' 산업은 공장의 기술에 머무르지 않고, 예술과의 접점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투명 OLED(발광 다이오드), 초경량 복합소재, 스마트 섬유, 고강도 나노복합소재들은 예술가들에게 감각의 새로운 언어를 제공하고, 이는 다시 산업기술에 감성적 디자인과 사용자 경험의 가치를 더한다. 예술적 통찰은 제품 개발 초기 단계부터 감성 소재, 색채, 디자인 혁신으로 연결되며, 기술의 차가움을 넘어 인간과의 접점을 만들어낸다.

산업이 경제성과 효율성에만 머물 때 우리는 기술로는 앞설지 몰라도 감동은 줄 수 없다. 그러나 예술과의 교차점을 모색할 때, 산업은 기능을 넘어 감성과 문화를 품게 된다.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문화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산업기술과 예술의 융합은 미래 제조업의 새로운 전략이 된다.

이제는 '기술에서 감성으로', '산업에서 문화로' 나아가는 시대다. 산업기술과 예술 감각이 서로를 교차편집하는 '디자이너블(designable)'한 사고방식이야말로 지식혁명 시대의 핵심 방법론이 될 것이다. 디자이너블이란 단순히 디자인할 수 있다는 뜻을 넘어서, 기술과 감성, 기능과 미학이 상호 교차되며 재구성될 가능성의 사고방식을 말한다. 산업기술을 감각적이고 창의적으로 재해석하고, 예술적 상상력을 통해 기술의 영역을 확장하는 태도다.

디자이너블은 디자인이 비단 '겉모습 꾸미기'가 아닌, 제품과 사용자 사이에 감성적 가치와 문화적 경험을 매개하는 본질적 과정임을 시사한다. 기술과 감성, 산업과 문화가 만나는 그 교차점에서 우리는 더 넓은 가능성과 지속 가능한 혁신을 기대할 수 있다.

/김나리 피에스아이 스튜디오대표

잠깐! 7초만 투자해주세요.

경남도민일보가 뉴스레터 '보이소'를 발행합니다. 매일 아침 7시 30분 찾아뵙습니다.
이름과 이메일만 입력해주세요. 중요한 뉴스를 엄선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뉴스레터 발송을 위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합니다. 수집된 정보는 발송 외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며, 서비스가 종료되거나 구독을 해지할 경우 즉시 파기됩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