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여느 해와 달리 가을이 길었다. 언제 끝나나 싶게 오랫동안 더위가 이어지지도 않았다. 더운 기운이 지쳐 살짝 서늘해지는가 싶더니 곧바로 닥치는 추위도 아니었다.덕분에 올해 우리는 오래오래 단풍을 볼 수 있었다. 노란 은행잎이 거리를 꾸미는 날들이 많았다. 빨간 단풍잎으로 자드락 산길이 멋진 시간도 넉넉했다. 황소 등처럼 누런 참나무 잎사귀들도 나름 정취가 있었다.그러던 단풍이 어느덧 지고 있다. 울긋불긋 마지막을 수놓았던 잎사귀들이 하나하나 내려오고 있다. 땅바닥은 덕분에 잘 만든 양탄자처럼 푸근해지고 황홀해진다. 나무들은
함안은 감이 유명하다. 가을이면 대봉감이 주렁주렁 열리고 겨울이면 깎아 말린 곶감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크기도 작지 않고 달콤하기도 처지지 않는다. 여항면과 함안면·가야읍 일대에서 많이 난다.수박도 이름이 높다. 옛날에는 여름에만 났지만 2010년대 들어서는 겨울에도 쏟아져 나온다. 함안이 전국 생산의 10%를 차지하는데 군북면·법수면과 대산면·가야읍이 주산지다.연꽃도 손꼽힌다. '옥수홍련'과 '아라홍련'의 본고장이다. 옥수늪에서 자생하던 옥수홍련은 1100년 전 순수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아라홍련은 고려시대 연밥이 성산산성
조선은 민국(民國)이 아니라 왕국(王國)이었다. 국민이 아닌 임금이 주권자였다. 임금을 상징하는 객사(客舍)가 고을에서 동헌보다 더 크고 높은 까닭이다. 객사는 한가운데 높은 자리에 임금을 대신하는 전패(殿牌)를 모시고 있었다. 조선은 공자의 가르침인 유교가 지배하는 나라였다. 향교(鄕校)는 요즘 공립 중고등학교에 해당되지만 교육 기능만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공자를 모시고 있기 때문에 그 이상이었다. 여러 의식과 행사로 양반과 일반 백성에 대한 수령의 영향력을 넓히는 문화·행정 기능도 담당하고 있었다. 객사와 향교는 관아 못지않게
남명 조식에 대한 국민들의 인지도가 낮다는 보도를 보았다. 경남일보가 MBC경남과 공동으로 진행한 조사였다. 율곡 이이는 98.7%, 퇴계 이황은 96.5%였지만 남명 조식은 25.5%였다. 화담 서경덕의 인지도 31.9%보다도 처지는 수치였다.남명은 당대에 이미 퇴계와 맞먹는 실력을 인정받으면서 명성이 높았다. 일흔이 넘도록 평생 길러낸 제자들이 학파를 이룰 정도로 많았다. 그런데도 인지도가 처지는 까닭은 무엇일까?율곡과 퇴계는 날마다 쓰는 지폐에 초상이 그려져 있다. 율곡은 5000원짜리에 나오고 퇴계는 1000원짜리에 나온다.
함안은 습지의 고장이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낙동강과 남강이 함안을 감싸고 흐르기 때문이다. 오횡묵이 1889년 4월 22일 읽은 에도 나온다. '형승(形勝)' 조항에서 가장 먼저 "낙동강과 풍탄(楓灘)이 북쪽에 가로 놓여 있다"고 했다. 풍탄은 함안군 법수면과 의령군 정곡면 사이 물살(여울)이지만 여기서는 함안에 걸쳐 흐르는 남강 전체를 이른다.'형승' 조항은 이어 "여항산과 파산이 남쪽을 누르고 있다"고 적었다. 얼핏 보면 산은 습지와 상관이 없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높든 낮든 산이 있으면 골짜기가 있고
가뭄은 모내기가 끝나는 5월부터 어린 벼가 쑥쑥 자라야 하는 6월까지 거의 두 달에 걸쳐 이어졌다. 하늘이 내린 재앙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농토가 갈라지고 곡식이 타들어갔으며 사람들 마음 또한 그와 마찬가지였다.오횡묵은 만사 제쳐두고 윤6월 2일부터 이틀에 한 번씩 기우제를 지냈다. 그 하루 전날부터 기우제가 끝날 때까지 공무는 일절 보지 않았다. 여기서 말하는 공무는 조세를 거두거나 형벌을 집행하는 등 백성들을 족치는 일이었다. 반면 백성들과 더불어 가뭄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그치지 않고 이어졌다.◇기우제
◇보물섬 남해의 나비 꼬리 앵강만남해에는 아름다운 자연풍경과 정겨운 사람살이가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 있다.금산·망운산·설흘산·호구산 같은 산도 그렇고 바닷가 마을이나 갯벌·갯바위가 모두 그렇다. 오염되지 않은 남해 경관과 생태에 가장 걸맞은 말이 보물섬인 것 같다.남해는 크게 보면 섬 두 개로 이뤄졌는데 하늘에서 보면 날개를 활짝 편 나비처럼 생겼다. 오른편 위쪽 날개가 창선섬이고 나머지 세 날개는 남해 본섬이다. 앵강만은 아래쪽 양날개 사이인데 가천·홍현·숙호·월포·두곡·용소·화계·신전·벽련 아홉 마을이 모여 있다.◇바래길 2코스
가뭄은 예로부터 인간 사회에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안겨주는 엄청난 자연재해였다. 그나마 요즘은 과학기술이 발달하여 나름대로 대응할 방책이라도 있지만 옛날에는 그대로 꼼짝없이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재난을 맞닥뜨리면 대부분 백성들은 처음에는 나름 애를 쓰지만 한계를 넘으면 임금이나 수령을 원망하기 마련이다. 조세를 거두고 지배하고 명령하고 집행했으면 그에 걸맞게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임금이나 수령인들 별달리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효과가 있든 없든 하늘에 대고 비를 비는 제사를 올려야 했던 이유다.기우제라 하면
올해는 삼일운동 100주년이다. 삼일운동이 일어난 그해 11월 중국에서 의열단이 창설되었다. 의열단은 일제 식민지 시기를 통틀어 가장 강고한 항일투쟁 조직이라 일컬어진다. 그런 의열단의 본향이 바로 밀양이다. 단장 김원봉을 비롯하여 박차정·윤세주 등등 핵심 구성에서 밀양 출신이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올해 밀양청소년희망탐방대는 의열단을 다루는 의열기념관과 일제 치하 독립운동가 구실을 했던 아리랑의 밀양아리랑아트센터를 필수 코스로 삼았다. 이 밖에 물길과 뭍길 모두 밀양이 교통 요충임을 알려주는 삼랑진역과 삼랑창, 불교
원효암(元曉菴)과 의상대(義相臺)는 여항산이 북쪽으로 뻗어내리는 미산(眉山) 골짜기 가파른 비탈에 붙어 있다.1950년 한국전쟁 당시 일대에서 북한군과 유엔군이 격전을 벌이는 바람에 불에 타서 칠성각(七星閣) 빼고 옛날 모습은 남아 있지 않다.원효암·의상대는 찾는 사람이 별로 없어 한적하다. 하지만 130년 전 오횡묵 당시는 그렇지 않았다. 지금도 콘크리트 좁은 도로를 한참 올라가야 하는 깊은 산속인데도 그랬다. 오횡묵은 여기서 재를 지내기도 하였고 일반 백성들 또한 친근하게 여기며 즐겨 드나들었다.◇오횡묵이 치성을 들였던 자리18
◇너무 먼 생태관광지2018년 밀양 사자평 재약산이 환경부 생태관광지역으로 지정되었을 때 이상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경관이야 아름답고 사랑스럽지만 너무 먼데다 찾아가는 길조차 대중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사자평은 재약산 정상 수미봉 동남쪽 비탈 해발 700~800m에 너르게 탁 트인 억새평원이다. 삵·담비·하늘다람쥐, 은줄팔랑나비·꼬마잠자리·비단벌레 같은 희귀생물이 살고 습지보호구역이라 억새·진퍼리새·버드나무 등 습지지표식물도 곳곳에 자란다.어쨌든 관광지라면 손쉽게 찾아갈 수 있어야 할 텐데 그런 조건이 사자평에서는 애초부터 글
오횡묵보다 300년가량 앞선 시기에 함안에서 군수를 지낸 인물로 한강 정구(寒岡 鄭逑·1543~1620년)가 있다. 남명 조식과 퇴계 이황 모두에게서 배웠고 따로 한강 학파를 이룰 만큼 대단한 사람이었다. 역대 함안군수 가운데 인품과 학문이 가장 빼어나다는 평가를 받으며 함안 사람들은 지금도 한강 정구를 많이 기억하고 높이 받들고 있다.함안 사람들에게 정구는 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1586~88년 함안군수로 있으면서 지역 역량을 끌어모아 를 편찬했던 것이다. 함안의 산천과 인물·문화·산
조국 사태의 핵심이 '계급'이라는 칼럼을 한겨레에서 보았다. "개혁과 정의와 진보를 외쳤던 그의 삶이 알고 보니 다른 '강남 상류층'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중산층과 서민이 느끼는 배신감과 상실감이 핵심이다."자기네 잘못을 가리는 물타기 칼럼이다. 의도했든 안 했든 그렇다고 나는 본다. 조국 사태의 핵심은 '가짜뉴스'다.8월 9일 법무부장관 후보 지명 이후 지금껏 갖은 위조·위장·허위 의혹이 보도되었다. 하지만 사실로 확인된 것은 거의 없다. 한 달 넘게 수사 중인 검찰은 사실로 확인된 내용이 있다면 100% 공개했을
화포천은 예나 이제나 무척 아름답지만 10년 전에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았다. 2008년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고향 봉하마을로 돌아오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봉하마을 바로 옆이 화포천이다. 노 대통령은 화포천을 가꾸고 봉하들녘 농사를 친환경적으로 하는 운동을 벌였다. 덕분에 화포천은 유기농 쌀을 생산하는 봉하들녘과 함께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고 널리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2017년 11월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화포천은 2018년 1월에 환경부 생태관광지역으로 선정되었다. 자연상태 그대로 보전된 하천습지로 황새·독수리·고
오횡묵의 행적을 보면 거의 쉬는 여가가 없었다. 하루에 100리 넘게 길 위에 있기도 하였고 자정 전후 해시(亥時)에 횃불을 들고 돌아오기도 하였다. 어떤 때는 비를 쫄딱 맞기도 하였고 새벽에 잠자리에 들어 옷을 입은 채로 한두 시간밖에 못 자고 일어나기도 하였다. 바깥에서 업무를 보다 기운이 빠져 뒷산에 숨어 잠깐 쉬는 등 지쳐 떨어지거나 아파서 옴짝달싹할 수 없거나 땀이 비 오듯 쏟아지거나 하는 표현도 곳곳에서 튀어나온다.이런 오횡묵에게 무진정은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와 같았고 사막에서 만나는 오아시스와도 같았다. 업무에 바삐
검암(儉巖)마을은 지금은 가야읍이지만 오횡묵 군수 당시는 산외면(山外面)이었다. 낙동강을 건너온 이들이 함안읍성으로 드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함안천과 검암천이 만나는 어귀에 있는 마을인데 함안천은 광려산 서쪽 골짜기에서 시작되는 중심 물줄기이고 검암천은 광려산 동쪽 골짜기에서 비롯되는 가지 물줄기다. 두 물이 만나는 자리는 들판이 너르게 형성되기 마련이다. 옛날에는 무엇보다 농사부터 잘되고 보아야 했기에 넉넉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이런 자리가 좋았다. 함안군수 오횡묵은 편한 날이 없었다. 조세 걷느라 장부를 뒤적거리며 노심초사하
◇요즘은 핑크뮬리가 대세녹색 또는 갈색 막대에 분홍 솜사탕을 얹은 듯 핑크뮬리가 꽃을 피웠다. 몽글몽글한 느낌은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 때마다 분홍빛 물결로 일렁인다. 사진 찍는 각도와 햇살이 쏟아지는 정도에 따라 다양한 색감과 질감도 선보인다. 되풀이되는 일상에서 별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없는 대부분 사람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안겨준다.함안 악양생태공원이 온통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로 두 번째 연출되는 이색적인 풍경이다. 여태까지는 가을을 알리는 전령으로 갈대와 억새 그리고 코스모스가 주로 꼽혔지만 이제는 핑크뮬리
오횡묵의 대민 업무는 대체로 두 가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하나는 조세를 공정하게 거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백성들이 헐벗고 굶주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받아내기 위해서는 족치고 때리는 형벌도 서슴지 않았지만 세심하게 보살펴 나누고 베푸는 데에도 열성을 다했다.요즘 말로 하면 공정 조세와 복지 실현을 동시에 추진했다. 어쨌거나 하나는 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는 것이어서 얼핏 보면 서로 반대되는 듯하다. 하지만 둘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근본은 조세가 아닌 백성이었다.백성이 헐벗고 굶주리면 일을 하기 어렵고 일을 하지
밀양에 사는 학생이라면 표충사는 누구나 한 번은 가 본 곳이다. 밀양 도심 가까이에 있는 멋진 절간이다보니 부모랑 손잡고 가거나 아니면 학교에서 소풍으로 다녀오는 명소인 것이다.그런데도 표충사의 특징이 무엇이냐 물으면 "풍경이 멋져요"나 "경치가 아름다워요" 이상 대답이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 어쩌다 "사명당이요" 하고 답하는 학생이 있으면 바로 상품권을 선물로 주면서 아주 훌륭하다고 추어줄 정도다.◇불교와 유교의 공존표충사는 이처럼 사명당을 위하는 절간이다. 사명당은 임진왜란을 맞아 승병장으로 활약한 인물이다. 전쟁이 끝난 뒤
◇원래는 저습지였는데창원 주남저수지는 경남도청으로부터 경남 대표 생태관광지 가운데 하나로 2018년에 지정되었다. 이에 따라 창원시청 주남저수지사업소 주관으로 주남저수지생태관광협의회를 구성하여 운영하는 등 관련 사업을 벌이고 있다.하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시설물을 만든다든지 하기보다 지역주민들 사이 협력을 강화하고 서로 이해를 높이면서 주남저수지를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바람직한 생태관광지로 지속될 수 있도록 토대를 닦는 일에 좀더 집중하고 있다. 한 해 탐방객이 40만 명을 넘어서는 등 인간의 자연에 대한 압력이 이미 상당하기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