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여느 해와 달리 가을이 길었다. 언제 끝나나 싶게 오랫동안 더위가 이어지지도 않았다. 더운 기운이 지쳐 살짝 서늘해지는가 싶더니 곧바로 닥치는 추위도 아니었다.

덕분에 올해 우리는 오래오래 단풍을 볼 수 있었다. 노란 은행잎이 거리를 꾸미는 날들이 많았다. 빨간 단풍잎으로 자드락 산길이 멋진 시간도 넉넉했다. 황소 등처럼 누런 참나무 잎사귀들도 나름 정취가 있었다.

그러던 단풍이 어느덧 지고 있다. 울긋불긋 마지막을 수놓았던 잎사귀들이 하나하나 내려오고 있다. 땅바닥은 덕분에 잘 만든 양탄자처럼 푸근해지고 황홀해진다. 나무들은 이제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군더더기 하나 없는 몸매로 겨울을 날 것이다.

하지만 모든 나무가 다 같지는 않은 모양이다. 시들고 메마른 잎사귀를 가지마다 있는 힘껏 움켜쥔 나무도 없지 않다. 차가운 바람이 매섭게 불어대면 어찌할 줄 모른 채 마구 흔들린다. 새봄 새잎에 자리를 내어줄 때까지 내내 저렇게 궁상을 부릴 것이다.

잎사귀는 나무가 움켜쥐어 본들 때가 되면 바짝 말라붙고 만다. 아무리 햇볕을 많이 받아도 양분을 만들지 못한다. 보내야 할 때 보내지 못하고 놓아야 할 때 놓지 못한 업보로 저렇게 추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무나 자연만 그럴까? 사람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다. 제1야당 당대표가 얼마 전 단식을 시작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그러더니 이제 열흘이 안 되어 의식을 잃고 병원에 실려 갔다. 누구나 짐작하는 뻔한 욕심 때문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알지 못할 어떤 조바심이 원인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내 눈에는 청와대 앞 몽골텐트 안 풍경과 마른 고엽을 바짝 움켜쥔 저 나무들이 왠지 비슷해 보인다.

깊어가는 가을날 아침, 도종환의 시 한 구절이 문득 떠오른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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