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정신 바탕으로 미래 의병장 길러내
마땅히 더 알려져야 할 '나라 구한 스승'

남명 조식에 대한 국민들의 인지도가 낮다는 보도를 보았다. 경남일보가 MBC경남과 공동으로 진행한 조사였다. 율곡 이이는 98.7%, 퇴계 이황은 96.5%였지만 남명 조식은 25.5%였다. 화담 서경덕의 인지도 31.9%보다도 처지는 수치였다.

남명은 당대에 이미 퇴계와 맞먹는 실력을 인정받으면서 명성이 높았다. 일흔이 넘도록 평생 길러낸 제자들이 학파를 이룰 정도로 많았다. 그런데도 인지도가 처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율곡과 퇴계는 날마다 쓰는 지폐에 초상이 그려져 있다. 율곡은 5000원짜리에 나오고 퇴계는 1000원짜리에 나온다. 율곡은 십만양병설 스토리가 있고 화담은 명기 황진이와 러브스토리가 있다. 초·중·고도 남명은 조금만 다루어지고 퇴계·율곡·화담은 더 많이 언급된다. 역사나 문학·국어 교과서가 다루는 정도도 남명이 처진다. 학생들의 남명 인지도가 13.7%로 어른 38.8%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남명은 더 많이 알려져야 한다. 김해 산해정, 합천 삼가 뇌룡정, 산청 덕산 산천재에서 제자를 가르친 경남 출신이라서가 아니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드높은 학문을 이루어서도 아니다. 지행합일이라는 가르침으로 나라를 구한 스승이기 때문이다.

뇌룡정에 가면 '연묵이뢰성(淵默而雷聲) 시거이룡현(尸居而龍見)'이 적혀 있다. '연못처럼 가만있다가 벼락처럼 소리를 내고, 시체처럼 가만있다가 용처럼 나타나라'는 얘기다. 평소에는 잘난 척 나대지 말고 필요할 때 나타나 할 일을 하라는 뜻이다.

임진왜란에서 왜적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로 이순신과 의병 두 가지를 꼽는다. 이순신은 한 해 전 전라좌수사가 되었기에 왜군이 나름 대비했지만 의병은 예상하지 못했다. 일본은 대장이 지면 주민은 바로 복종하지만 조선은 수령이 죽자 거꾸로 백성들이 들고일어났다.

제자들은 뇌룡정에 걸린 교훈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익혔다. 남명 사후 20년 임진왜란이 터지자 제자들은 전국 각지에서 의병장으로 들고일어났다. 정인홍·김면·이준민·박성·박이장·하흔·문위·곽준·전치원·노흠·이흠·조종도·박여량·오장·이정·이로·이유근·김경근 등 일일이 꼽기 어려울 정도다.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수륙을 통틀어 최초 승전한 곽재우가 대표적이다. 평소 벼슬을 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살았다. 연못처럼 조용하고 시체처럼 가만있었던 셈이다.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본가는 물론 처가·외가의 재산까지 털어 의병을 일으켰다. 벼락처럼 소리를 내고 용처럼 나타났다.

남명은 퇴계나 율곡과 맞먹는 정도 인물이 아니다. 학문이나 인품은 그럴 수 있지만 역사에서 한 역할은 그 이상이다. 남명은 실천정신을 바탕으로 미래 의병장을 대거 길러내 나라를 구한 위대한 스승이다. 남명 말고는 누구도 하지 못한 업적이다. 곽재우와 임진왜란 의병장들은 학생들이 좋아하는 아이템이기도 하다. 여기에 초점을 맞추면 인지도도 자연스레 올라가지 않을까.

 

 

출판국장 소임을 맡고 있습니다. 도서 제작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관장합니다. 학교와 현장을 찾아 진행하는 문화사업(공연··이벤트 제외)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환경전문기자로서 생태·역사 부문 취재도 합니다. 전화는 010-2926-3543입니다. 고맙습니데이~~~
[출판국에서]아무도 안 했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비춰볼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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