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0억$ 투자 펀드+1000억$ 에너지 구매도
25%이던 자동차 품목 관세 15%로 완화 성과
한국 12.5% 요구…미 자동차 노조 반대 '무산'
조선 협력 프로젝트 통한 미국 달래기 주효해
농산물 개방 한-미 견해 차…농민 "명확히하라"

한국과 미국이 31일 무역 협상을 타결했다. 미국이 예고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대신, 한국은 3500억 달러(약 486조 원) ‘투자 펀드’와 1000억 달러 상당의 에너지 구매를 약속했다. 조선·자동차·철강 등 전통 제조업 위주 경남 경제엔 어려움이 예상된다. 특히 50%를 부과받는 철강·알루미늄 관세가 이번 협상에서 제외된 건 부담이다.

31일 한미 양국 발표를 종합하면 한국은 앞선 일본·EU 사례와 유사한 방식으로 대규모 투자와 미국산 구매 약속을 제안하면서 1일부터 부과될 예정이던 상호관세와 4월부터 이미 부과 중인 자동차 관세를 낮추는 데 성공했다. 25%로 예고된 상호 관세는 15%로, 25%를 적용 중인 자동차 품목 관세도 15%로 각각 낮아졌다. 일본·EU와 같은 조건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3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브리핑 후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3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브리핑 후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정부는 먼저 3500억 달러 규모 투자 꾸러미를 미국 측에 약속했다. 앞서 일본이 제시한 5500억 달러 규모 ‘투자 기구’(Investment Vehicle)와 성격이 비슷하다. 조선, 반도체, 이차전지 등 미국 정부가 전략적으로 투자하고자 하는 산업에 투자할 재원을 투자(Equity), 대출(Loans), 보증(Credit guarantees)으로 지원해주는 개념이다.

대미 투자 제안에는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로 명명된 조선 협력 프로젝트가 핵심 역할을 했다. 대미 투자 펀드 3500억 달러 중 1500억 달러는 조선산업 전용 펀드로 조성된다. 나머지 2000억 달러가 반도체, 이차전지, 바이오, 핵발전 등 미국이 중점 육성하려는 전략 산업에 두루 투자하는 범용 펀드로 조성될 예정이다. 펀드를 활용한 투자 항목은 미국 정부가 결정한다.

정부는 미국이 한국과 일본 펀드로 육성하려는 전략 산업 대부분이 한국이 세계적으로 선두를 달리는 분야라는 점에서 결국 실질적인 혜택이 국내 기업에 돌아갈 것으로 본다.

예컨대 한화오션은 지난해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 해군부대 내 필리조선소를 사들여 운영하고 있다. 미국 현지에서 조선소를 인수해 운영하거나, 미국 주요 조선사와 공동 사업을 벌일 수 있는 사업자가 사실상 한국 기업밖에 없다는 점에서 조선 펀드 직접 수혜자가 미국에 진출하는 한국 조선사들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지엠 창원공장 전경. /경남도민일보 DB
한국지엠 창원공장 전경. /경남도민일보 DB

자동차 관세는 미국 시장에서 일본·EU와 같은 15%를 부과 받게 돼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그럼에도 일본과 EU가 2.5% 관세를 적용받을 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무관세로 수출하던 때를 돌이켜보면 일괄 15% 적용은 상대적으로 손해를 본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국 협상단도 이를 고려해 자동차 품목 관세 12.5% 적용을 주장했으나 전미 자동차 노조 압박에 미국 측이 15%를 고집해 뜻을 접었다.

경남에는 GM창원공장 등 완성차 업체뿐만 아니라 범퍼, 서스펜션, 차체 등 부품 업체들이 많다. GM창원공장은 미국 수출 비중이 80%가 넘는다. GM은 물론 현대와 기아 등 완성차 업체가 더 높은 대미 수출 경쟁력 확보하고자 1차, 2차 벤더에 가격 절감 등을 요구하면 지역 부품업체들로서는 납품 단가 후려치기 등 압박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3500억 달러는 지난해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20% 규모에 해당한다.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한국 경제가 감당할 수 있고, 또 국내 기업이 제공하는 투자하는 혜택을 상당 부분 한국 기업이 누리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점에서 일본의 투자 꾸러미와 차별화된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대부분이 대출과 보증으로, 그 중에서도 체감으로는 보증이 제일 많을 것”이라며 “우리는 펀드에 그 3가지 요소(지분투자·대출·보증)가 포함된다는 사실을 무역 합의 비망록에 적어놨고, 그 안에 에쿼티(지분투자)가 5% 미만일 것이라고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액화천연가스(LNG)를 중심으로 향후 장기간에 걸쳐 1000억 달러(약 139조 원) 미국산 에너지를 구매하겠다는 약속도 한국으로서는 도입선 조절 정도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게 정부 설명이다. 에너지를 전적으로 수입하는 한국은 지난해에만 원유와 석유제품 수입에 1100억 달러를 넘게 썼다. 김 실장은 "1000억 달러는 우리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이번 협상 타결로 추가로 없는 수요를 만드는 게 아니"라며 "중동산을 미국산으로 바구는 정도 구성 변화는 있지만 우리 경제 규모에서 필요로 하는 에너지 수입액이기에 구매에 무리는 없다"고 말했다.

 

한미 관세협상이 타결된 31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미국산 소고기가 진열돼 있다. 이번 협상에서 소고기 시장은 추가로 개방하지 않기로 해 30개월 미만 소고기 수입은 그대로 유지된다. /연합뉴스
한미 관세협상이 타결된 31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미국산 소고기가 진열돼 있다. 이번 협상에서 소고기 시장은 추가로 개방하지 않기로 해 30개월 미만 소고기 수입은 그대로 유지된다. /연합뉴스

이처럼 조선업 부흥 등으로 미국 면을 세워주면서 쌀과 소고기 등 농산물 시장 현상유지를 이뤄낸 건 ‘선방’으로 평가된다. 정부는 소고기 월령제나 쌀 수입 쿼터 조정 등 약속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농산물’ 언급한 데 대해 김 실장은 “정치적 표현으로 이해해하고 있다”면서 “미국과 협의 과정에서 농축산물 시장 개방에 강한 요구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식량 안보와 우리 농업의 민감성을 고려해 국내 쌀과 소고기 시장은 추가 개방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못 박았다. 미국 측 개방 압박에 2008년 ‘광우병 시위’ 사진까지 내밀었다는 뒷 얘기도 흘러나왔다. 하지만 농민단체는 국내 쌀과 소고기 외 농산물 관련 세부 협상 내용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민감 품목인 쌀과 소고기가 제외된 점은 다행스러우나, 서로가 소고기를 비롯해 모든 농축산물에 추가 개방이 없다는 것인지 명확한 해명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두천 기자·일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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