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회의에서 각 부처에 산재 강력한 대처 주문
포스코ENC, SPC삼립 잇달아 지목해 변화 유도
노동 현안에 폭압적 대응 일관한 전 정부와 대조

이재명 대통령이 윤석열 정부가 사실상 손 놓은 ‘노동 안전’ 분야 정책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고 있다.

이 대통령은 29일 오전 국무회의에서 산업재해 사망 사고를 줄일 특단의 대책 마련을 전 부처에 지시했다. △건설 노동자를 '건폭'으로 몰아 악마화하고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하청 노동자 파업에 경찰특공대 투입을 검토하는가 하면 △화물노동자 '안전운임제' 일몰 연장을 두고 전례를 찾기 어려운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는 등 노동 현안에 줄곧 폭압적으로 대응했던 윤석열 정부와 180도 다른 행보다.

이 대통령은 “연간 1000명 가까운 사람이 일하다 죽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후진적인 산업재해를 영구적으로 추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산불, 산사태 대책 논의를 하며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산불, 산사태 대책 논의를 하며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올해 들어 산재 사망사고가 5건 발생한 건설업체 포스코ENC를 지목해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인데 이를 방지하지 않고 사고가 나는 건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필적 고의’까지 언급하며 “정말 참담하다”고 덧붙였다.

전날 포스코ENC가 시공하는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작업을 하던 60대 노동자 ㄱ 씨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여 숨졌다. 경찰은 ㄱ 씨가 약 20m 높이에서 사면 보강작업을 하던 중 사고를 당한 것으로 확인했다. 

포스코ENC 시공 현장에서는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현장 추락사고 등 올해 전국적으로 5명이 사망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국무회의 직후 곧장 포스코ENC가 시공하는 전국 모든 건설 현장에 불시 감독을 지시했다. 산업안전보건 감독에 속히 착수해 사고가 반복되는 원인을 규명할 계획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도 수사 의뢰하기로 했다.

김 장관은 “포스코ENC 같은 대형 건설사(시공능력 7위) 현장에서 후진국형 사고가 반복 발생한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본사와 최고경영자(CEO) 안전 관리에 총제적 문제가 있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김영훈(오른쪽) 고용노동부 장관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산업재해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영훈(오른쪽) 고용노동부 장관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산업재해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장관은 국무회의에서도 “중대재해처벌법 수사와 판결이 상당 시간 소요되기에 심판이 솜방망이 처벌이고 기업에서는 불확실성이 길어져 불만이 큰 게 사실”이라며 “중대재해법으로 대형 로펌만 좋아졌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도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실효성 강화 방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 사고 발생 때 △징벌적 손해배상 △공공입찰 참가 제한 △영업정지 병행을 검토하고, 관계부처와 불법 하도급 근절 방안을 협의하겠다고 예고했다.

아울러 산업안전관리감독관 증원을 설명하며 “실무 경력 퇴직자와 신규자를 2인 1조로 해 이른바 ‘노동안전 투캅스’를 만들겠다”고 보고했다.

김 장관은 또한 ‘직을 걸고’ 산재 사고를 줄이겠다는 각오도 밝혔다. 이에 이 대통령은 “상당 기간 산재가 줄어들지 않으면 진짜 직을 걸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국무회의 내용에 포스코ENC는 이날 오후 5시 인천 송도 본사에서 담화문을 발표해 중대재해로 노동자들이 숨진 데 사과하고, 현장 안전관리를 더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산불, 산사태 대책 관련 논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산불, 산사태 대책 관련 논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국무회의는 사상 처음으로 생중계됐다. 1시간 20분가량 진행된 공개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각 부처 장관으로부터 산재 근절 방안을 보고받고 사망사고가 반복되는 기업에는 강한 제재를 지시했다.

금융위원회는 산업재해 발생 기업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에 기반을 둔 대출 규제 불이익을 검토하겠다는 방안을 밝혔다. 이에 이 대통령은 “뻔한 산재사망 사고가 반복·상습적으로 발생한다면 아예 여러 차례 공시해서 투자를 안 하게, 주가가 폭락하게(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실제 시행계획을 만들어 대출 제한 등을 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건설 현장 관리 감독을 하는 국토교통부로부터 불법 하도급 제재 방안을 보고받고서는 “잘 지키면 손해, 안 지키면 이익인 법은 차라리 없애야 한다”며 “고용노동부와 협조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강력히 단속하라”고 주문했다. 최대 5000만 원인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장 안전관리 의무 위반 과태료 상향, 법 위반과 중대 사고 반복 발생 업체 입찰 제한과 영업 허가 취소 검토도 지시했다.

행정안전부를 향해서는 경찰에 산재 사망사고 전담팀 구성을 검토하라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 경기 시흥시 SPC 삼립 시흥 공장에서 열린 산업재해 근절 현장 노사간담회에서 허영인 SPC그룹 회장(왼쪽)과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 경기 시흥시 SPC 삼립 시흥 공장에서 열린 산업재해 근절 현장 노사간담회에서 허영인 SPC그룹 회장(왼쪽)과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이 대통령은 과도한 심야 노동 등으로 산재 사망사고가 잇따른 SPC삼립을 직접 찾아 8시간 초과 근무 체계 근절 등 실질적 변화를 끌어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 처리에 속도를 내줄 것도 강조했다. 이에 당정은 협의 끝에 내달 4일 본회의 때 노란봉투법을 처리하는 것으로 일정을 앞당겼다. 노동계와 진보정당으로부터 후퇴했다는 평가를 받은 법안 내용과 법 적용 시기도 다듬었다.

/김두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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