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사이 달라진 광장의 얼굴
응원봉, 아이돌 노래 뒤덮은 광장
"민주화 주도하는 세대 교체 시작"
8년 만에 대통령 퇴진 광장이 다시 열렸다. 2016년 10월,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면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이 전국을 덮었다. 2024년 12월, 내란 사태를 빚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는 촛불이 타오른다. 대통령의 실정에 분노했다는 점은 같으나, 그때와 지금의 광장은 다른 얼굴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세대가 바뀌었다. 촛불 대신 응원봉이 광장을 메웠다. 젊은 세대가 마이크를 잡고 무대 위에 오른다. 1020세대가 광장을 바꿔나가고 있다.
◇달라진 광장 = “샤이니(남자 아이돌 가수)가 명하노니 윤석열을!”
창원 촛불집회 사회자를 맡은 김인애 경남청년유니온 위원장의 선창에 “탄핵하고 체포하라”는 후창이 따른다. 그도 30대다. 김 위원장은 “10대부터 30대까지 여성들의 집회 참가가 많아진 것 같다”라며 “이 노래 가사가 좋으니 틀어달라거나, 다른 집회에서 본 건데 우리도 해보자는 요청이 많다”고 말했다.
한눈에 띄는 변화는 ‘응원봉’이다. 촛불 대신 형형색색의 응원봉이 파도처럼 일렁인다. 또 다른 손에는 ‘윤석열 퇴진’이 적힌 손팻말이 들려있다. 상상하기 어려웠던 조합이 광장에 나타났다. 1020세대가 광장에 나오면서 아이돌 팬덤 문화도 집회 현장에 녹아들고 있다.
정당이나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하지 않는 일반 시민들이 발언하겠다고 나서는 사례도 늘었다. 이들은 거리낌 없이 무대 위로 올라가 대통령의 실정을 비판한다. 광장에는 아이돌 그룹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기성세대들은 어설프게나마 노랫말을 따라 부르면서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고 있다.
“민중가요를 배워보고 싶다는 의견이 있어서요. 다 같이 바위처럼 따라 불러보겠습니다.”
김 위원장의 말이 끝나자, 무대 옆에 서 있는 방송차 전광판에서 가사가 켜진다. 이번에는 1020세대들이 전광판 속 가사를 따라 노래를 부른다. 김 위원장은 집회 노래 신청을 받는다. 아이돌 그룹 노래만이 아니라 민중가요를 배우고 싶다는 요청도 많다고 한다. 광장 안에서 세대가 어우러진다.
김 위원장은 “질문하면 대답도 잘해주고, 파도타기를 한 번 해보자고 하면 바로 된다. 피드백이 잘 된다”라며 “촛불이 아닌 응원봉을 직접 가지고 온 것만 보더라도 주체적으로 집회에 참가한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주최 측도 “변화 실감” = 창원 촛불집회는 기획팀 10여 명을 통해 꾸려진다. 사회를 보고, 집회 식순을 짜고, 발언과 신청곡을 받는다. 안전요원이나 손팻말 배부 등으로 돕는 자원봉사자까지 합치면 50여 명이 집회를 준비하는 셈이다. 집회를 주최하는 윤석열퇴진경남행동에서도 광장이 달라졌다고 느끼고 있었다.
박종철 윤석열퇴진경남행동 집행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운동을 할 때는 김해에 있는 공장에 초를 2만 개씩 주문해야 했다”라며 “지금은 청소년들이 응원봉을 가지고 오면서 다른 세대까지도 응원봉을 사서 오더라. 이 자리를 주도하는 세대가 새로운 집회 문화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와 카카오톡 오픈 대화방에서 집회 일정을 공유하고, 후기를 나눈다. 한 참가자는 “휴대전화를 분실하는 일이 있었는데 자원봉사자들이 쓰레기통까지 뒤지면서 찾아주는 것을 봤다”고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주최 측은 오픈 대화방에서 신청곡과 자유 발언도 받고 있다. 청소년들에게서 요청이 많다. 송명희 윤석열퇴진창원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은 “공연 신청을 받았는데 너무 많아서 언제 배치할까 고민까지 했다”라며 “14일 토요일 집회에만 공연을 5개 잡았는데 대부분 청소년”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세대의 등장 = 조효래 창원대 사회학과 교수는 “새로운 이들이 민주화를 주도하는 세대 교체가 진행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대가 바뀌면서 시위 문화도 과거보다 훨씬 더 경쾌하고, 가벼워졌다”라며 “시위 문화 주도권도 자연스럽게 젊은 세대의 취향을 타게 되고, 반영되는 것 같다”고 짚었다.
김찬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도 광장한 변화를 느끼고 있다. 그는 10대 여성 청소년이 집회 현장에서 자유 발언하는 모습을 봤다. 이 여성은“20대 남성 여러분,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했던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뽑으니 좋으냐”고 되물었다. 이 발언을 들은 50대 남성은 “미안하다”라면서 사과하고 있었다.
김 활동가는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 때는 다양한 요구가 현장에 나오지 못했다”라며 “서로 차이가 나거나 이질적이면 힘이 안 생길 거라고 하는데, 오히려 서로 굉장히 소통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류지영 마산청소년문화의집 팀장은 “청소년을 두고 미래의 세대라고 부르는데, 청소년은 현재를 사는 세대이기도 하다”라며 “청소년들은 당연히 한 사람의 국민이자, 시민으로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촛불집회에 참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다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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