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광장 집회 참가한 10, 20대
응원봉, 재치 넘치는 깃발 들어
아이돌 가수 콘서트 현장 방불케 해
시민 호응 "시위, 즐겁고 따뜻"
창원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시민대회에는 '응원봉'을 들고나온 10·20대가 절반 이상이었다. 지난 8일 오후 6시 시청광장에서 다섯 번째로 열린 시민대회에 참여한 이들은 불을 켠 응원봉을 흔들면서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주최 측이 행사 종료를 알리자 응원봉을 든 이들이 '전국 응원봉 연대' 깃발 주변에 모였다. 이들은 응원봉을 모아 사진도 찍었다. 어떤 이는 스케치북에 응원하는 아이돌 그룹 가수 이름을 적고 '살기 좋은 세상 만들어줄게'라는 각오를 써넣기도 했다. 이는 현장에 함께 있었음을 인증하는 것으로 아이돌 팬들에게는 익숙한 모습이다. 서울 집회 현장에서도 다양한 성향인 개인 저마다 개성있는 깃발을 만들어 들고 집회에 나서기도 했다. 응원봉이나 깃발 응원은 아이돌 콘서트에서 흔히 보는 풍경이다. 또, 프로 스포츠 구단 응원에도 쓰인다. NC다이노스 팬들이 방망이 모양 응원봉과 긴 수건을 머리에 두르는 것과 같다.
◇촛불 대신 빛나는 응원봉 = 응원봉과 깃발을 들고 연대하고 인증하는 방식은 이번 '윤석열 내란 사태' 집회 현장에서 눈에 띄는 시위 문화의 하나다.
'전국 응원봉 연대' 깃발을 만들어 들고 온 김찬미(24) 씨는 국립창원대 사회학과 학생이다. 응원봉을 들고 참여한 이들은 그에게 "깃발을 들고 나와줘서 고맙다"며 "다음 집회에도 참여할 것"이라고 인사했다. 김 씨는 아이돌 팬들 사이에 '불법 비상계엄 사태로 공개방송 사전녹화를 가지 못하게 된 팬들이 어디로 가는지 보여주겠다'는 글이 누리소통망으로 퍼지면서 집회 시위 현장에 응원봉이 등장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집회 시위가 있어도 용기 내기 어려워 나오기 어려운데, 응원봉을 쓰면서 마치 아이돌 시상식 또는 즐길 수 있는 콘서트 분위기로 전환돼 폭력적인 의미를 탈피한 것 같다"며 "응원봉은 특정 그룹의 팬임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팬들 입장에서 가장 밝고 소중한 불빛을 집회 시위 현장에 들고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응원봉이 처음 집회 시위 도구로 나오게 된 건 2016년 11월 17일 당시 김진태 새누리당 국회의원(현 강원도지사)의 발언이 계기가 됐다. 김 지사는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최순실 특검법'을 반대하면서 법안이 통과되면 촛불에 밀려서 원칙을 저버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오역의 역사로 남을 것이라며 '촛불은 촛불일 뿐 바람이 불면 꺼진다, 민심은 언제든 변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에 반발한 시민은 전지로 작동하는 발광 다이오드(LED) 촛불과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나왔다.
그룹 비투비 응원봉을 들고 창원 시민대회에 참여한 이주은(19·함안군) 씨는 같은 응원봉을 든 참여자를 4명 만났다. 이 씨는 "아이돌 문화를 좋아하면서 시위에 참가한다는 것 자체가 젊은 세대가 정치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며 "행진할 때 시민도 호응을 많이 해주시고 안전하게 진행돼 의미가 있었고, 특히 시장 근처 상인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민중가요 대신 아이돌 노래 = 지난 7일 윤석열 탄핵을 외치며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이들은 로제의 '아파트'나 투애니원 '내가 제일 잘나가' 등 아이돌 노래를 신나게 불렀다. 8일 창원 시민대회에서도 에스파의 '위플래쉬', 지드래곤의 '삐딱하게', 데이식스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등 대중가요가 울러퍼졌다.
20대 신현경 씨는 경남지역 대학생들이 참여한 '윤퇴사동(윤석열 퇴진하면 사라질 동아리)' 회원 2명과 함께 무대에 올라 소녀시대의 '힘내'를 부르며 춤을 췄다. 신 씨는 "윤석열 탄핵 의지를 발언이나 행진으로 보여줄 수도 있는데, 춤과 노래 등 문화적인 게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 언젠가는 무대에서 보여주고자 준비했다"며 "'힘내' 가사는 힘든 일이 있겠지만 같이 헤쳐나가자는 내용인데, 탄핵이 한 차례 무산된 상황에서도 힘을 모아 퇴진시키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아이돌 노래가 집회 현장에서 불리게 된 건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촉구 시위 때부터였다. 그리고 2016년 이화여자대학교 교내 비리와 비민주적 운영을 규탄하는 시위에서 불렀던 노래는 걸 그룹 소녀시대의 데뷔곡 '다시 만난 세계'(2007)였다. 이 노래는 노동자 권리 보장, 차별 철폐를 외치는 집회·시위 현장에서 단골로 불리는 곡이 됐다.
지난달 동덕여자대학교 학생 1000여 명이 모여 남녀공학 전환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면서 부른 노래는 24인조 걸 그룹 트리플에스의 흔들리고 불안한 10대 청춘의 모습을 그린 '걸스 네버 다이(Girls Never Die)'다. 자신이 삶의 주체가 되자는 취지를 담은 아이돌 노래는 집회 현장에서 결의를 다지는 데도 적합했던 것이다.
◇즐겁고 따뜻해진 집회 현장 = 응원봉과 아이돌 노래 덕분에 집회 현장은 나이를 떠나 다함께 즐기는 분위기가 됐다.
크로스오버 그룹 포레스텔라 응원봉을 들고 시국대회에 함께한 조경화(48·창원시) 씨는 "내 한뜻이라도 보태야겠다 싶어, 이렇게 되면 쉽사리 끝나지 않겠다고 느껴 들고나갔다"며 "응원봉을 든 젊은이들을 본 순간 너무 안심이 됐고, 집회가면 또 얼마나 뜨겁고 축제처럼 재미있을지 기대도 된다"고 말했다.
이주희(44·창원시) 씨는 "아이돌이나 야구단 응원봉을 가지고 나와 함께 행진하고 구호도 외치고 노래하고 춤추고 헤어졌는데, 옆에 있던 여자 청소년들도 정말 멋졌고 남자 청소년들도 들어오라고 손짓하니 수줍어하면서도 함께했다"며 "시민 발언 또한 격하게 욕하지 않아도 비하하지 않아도 따뜻한 말로 진심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줬다"고 말했다.
진냥(이희진)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는 "어린이·청소년은 동료 시민으로 불법 비상계엄에 대한 분노와 불안을 느껴 행동으로 옮긴 것으로, 참여 자체를 특별하게 여기거나 기특하게 보고 '왜 왔느냐'라고 물으면 '오는 게 이상한가?'라고 생각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 퇴진 집회 때 '평등한 집회를 하자'라는 집회 안내 지침에서 '평등한 관계 : 친구가 아니면 친구라고 부르지 않기, 말 놓지 않기' 등을 이번 경남 집회에서 상기하고 실천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주성희 이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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