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비자’ 강제노동 악용]
(1) 경영계 입맛 맞춘 정책
조선업계 부족 인력 대체 요구
윤석열 정부서 발급 기준 낮춰
취업비자 입국 5년 새 75% 증가
최저임금 수준·이직 제한까지 둬
2025년 6월 말 기준 국내체류 외국인은 장·단기 체류, 국내거주 동포 등을 합쳐 273만 명을 넘어섰다. 이는 역대 최고치이며 우리나라 인구의 약 5.3%에 해당한다. 정부는 일손을 확보하고자 이주노동자 취업비자 조건을 완화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은 느슨해진 취업비자 조건에서 입국 이후 노동착취 등 부작용을 겪고 있다. 국내 이주노동자 비자 정책과 노동환경을 들여다보고 상생책을 찾아보고자 한다.
코로나19 이후 한국 조선업 활황을 기점으로 이주노동자 수요가 급증했다. 산업·경영계는 국내 조선소 인력 부족이 심각하다며, 이주노동자를 원활하게 수급할 수 있도록 정부에 취업비자 완화를 요구했다.
윤석열 정부는 이주노동자 취업비자 발급 조건 완화로 즉각 화답했다. 나아가 정부는 경영계 쪽에 서서 이주노동자들 기준 연봉도 최저시급 수준으로 낮췄다. 경영계와 정부는 더 많은 이주노동자를 불러들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들의 처우는 후퇴했다.
이주노동자 입국 왜 늘었나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총 36개 체류·취업비자가 있다. 비자는 영어 알파벳(A~H)과 숫자 조합으로 구분한다.
취업비자는 E에 해당한다. 취업비자는 E1~E10으로 나뉜다. E-1은 교수, E-2는 회화지도, E-3는 연구, E-4는 기술지도, E-5는 전문직업, E-6는 예술흥행이다. E-7은 특정 업종 전문인력, E-8은 계절근로, E-9은 비전문취업, E-10은 선원취업이다.
이 가운데 E-9이 가장 많다. E-9은 단순 노동 위주 취업을 허용한다. 허용 범위는 제조업부터 건설업·농축산업·어업·임업·광업·서비스업 등 광범위하다.
E-7은 전문성을 지닌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제도다. 전문인력(E-7-1), 준전문인력(E-7-2), 일반기능인력(E-7-3), 숙련기능인력(E-7-4)으로 세분화되는데, 통틀어서 87개 직종에서 고용을 허용한다. E-8은 주로 농촌인력 확보를 위해 활용되며, E-10은 어선 등 어업인력 확보를 위해 발급된다.
이주노동자는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월보를 보면 2020년 기준 E1~E10 등 취업비자를 발급받은 이주노동자는 29만 5404명이었다. E-9 이주노동자 23만 6950명, E-7 이주노동자 1만 9534명, E-10 이주노동자 1만 7552명이었다.
올해 상반기 기준 E1~E10을 발급받은 이주노동자는 5년 전보다 75.43% 증가한 51만 8235명이다. E-9 34만 1453명, E-7 7만 1877명, E-10 2만 1181명이다.
특히 E-7 비자가 급증했다. 정부가 조선산업 등 노동력 부족을 호소하는 업종에 외국인을 투입하고자 비자 개선에 나서면서다. 윤석열 정부는 2023년 1월 조선업 관련 협회 등과 조선업 규제 완화를 논의했다. 조선소 용접·도장·전기노동자 등은 취업비자 E-7-3에 속한다.
그런데 조선업계는 이들을 고용할 때 임금 보장 수준, 각종 고용 제한 등에 불만을 쏟아냈다. 정부는 이들의 요구를 수용하기 시작했다.
이주민 노동 여건 뒷전
정부는 2023년 1월 조선업 이주노동자 도입 허용 비율을 20%에서 30%로 확대했다. 이듬해 10월에는 E-7-3 이주노동자의 임금 요건을 국내 최저임금 수준으로 크게 낮췄다.
E-7-3 애초 임금 요건은 전년도 1인당 GNI(국민총소득)의 80% 이상이었다. 2024년 기준 GNI 5000여만 원의 80% 수준은 4000만 원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 연봉 수준을 3년차 때까지 ‘2515만 원 이상’ 수준으로 대폭 낮췄다. 이주노동자들은 어느 정도 전문성을 요하고 위험 직군에 해당하는 조선소 용접·도장·전기 노동을 하면서 최저임금을 받게 됐다.
법무부는 경영계 입맛에 맞춘 취업비자 조건 완화 이후 공적을 보도자료로 배포했다. 보도자료 제목은 ‘조선업 생산 인력 1만 4359명 투입됐다’, ‘정부, 적극적인 비자제도 개선으로 조선업 구인난 해소’ 등이다. 이주노동자 인력 수급이 원활하게 된 어두운 이면은 드러내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노동력 부족을 호소하는 경영계 호소를 달래는 데 치중했을 뿐, 이주노동자 노동 여건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윤용진 전국금속노조 전남조선하청지회 사무장은 “윤석열 정부는 사업주들과 지자체 요구를 적극 수용해 임금 기준을 계속 낮춰왔다”며 “저임금 편법 인력 활용을 방지하려는 목표로 임금요건을 설정해 놓았던 것을 정부 스스로 없애버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영계 입맛에 맞춘 제도에는 이주노동자가 내국인과 일자리 경쟁을 하지 못하게 제한하는 까다로운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이주노동자 취업비자 중 일부는 ‘사업장 변경 제한’을 두고 있다. 애초 정해진 사업장 외에는 고용복지센터·출입국외국인사무소 허가 아래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게 해 일자리 경쟁을 차단한 것이다.
사업장 변경 제한은 이주노동자 노동권을 묶는 족쇄로 변질됐다. 이주노동자들은 늘고 있지만, 제대로 된 권리를 찾긴 어려운 실정이다.
송은정 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은 “개인이 거부하거나 떠날 수 없는 착취 상황인 ‘현대판 노예제’가 현실화됐다”며 “노동자들은 업체의 강한 통제 탓에 신원이 드러날까봐 고충을 드러내는 것조차 거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안지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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