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비자’ 강제노동 악용]
(3)사업장 변경 제한 개선해야
E-9 이어 E-7-3서 더욱 강화된 제한
이주민 “노동자가 사업장 선택해야”
비자 관리 주체 ‘이민청’ 설립 촉구
노동계 “이주민 처우가 곧 우리 처우”
노동·인권 유린 확산 전 제도개선 시급
현행 ‘고용허가제’는 정부가 노동력을 원하는 고용주에게 취업비자를 받은 외국인을 배정하는 형태다. 특히 이주노동자 취업비자 중 E7(준전문인력)~E10(선원취업)은 특히 강제노동 사례가 빈번하다. 정해진 사업장에서 ‘사장님’이 불법 노동을 시키거나 급여를 적게 주고 착취하더라도 사업장 변경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이주노동자 취업비자 문제 해결을 통해 위험의 이주화를 중단해야 한다고 일침했다. 학계 또한 현행 제도는 노동권을 보장하지 못해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양산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주민단체는 ‘고용허가제’가 이주민 인권을 무너뜨린다며 이주민이 직장을 선택할 수 있는 ‘노동허가제’로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취업비자 관리 ‘이민청’ 설립을
고용허가제, 취업비자 제도는 2004년 8월부터 시행된 제도다. 국내 중소기업이 이주노동자를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게 지원한다. 애초 도입 취지는 1993년부터 운영된 외국인산업연수 제도의 미등록 체류자 양산, 인권 침해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제도 시행 21년이 지난 현재, 노동계는 경영계 입맛에 맞춘 취업비자 개악에 이주민 인권이 더욱 무너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취업비자의 ‘사업장 변경 제한’은 20년 동안 이주노동자에게 족쇄처럼 작용했다. 사업장 변경 제한은 인력 부족 중소기업을 보호하고 이주노동자의 무분별한 사업장 이탈을 막으려는 목적이었는데, 지금은 강제노동으로 변질됐다.
특히 2022년 4월 정부는 E-7-3(조선소 기능인력) 이주노동자를 유입하고자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노동권을 더욱 제약했다.
김현주 울산이주민센터 센터장은 “E-7-3은 전문 기능인력이지만 임금마저 최저임금을 받고 있다”며 “기업·정부가 자신들 입맛에 맞게 E-7-3 취업비자를 요리하는 동안 이주노동자 권리는 축소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취업비자 E-7-3은 E-9보다 사업장 변경을 신청하기 어렵다. E-7-3은 사업장의 휴·폐업 때만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다. 반면 E-9는 사업장 휴·폐업 사유 외 사업주가 임금 체불·부당한 대우를 하면 관할 고용센터의 승인 아래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다.
게다가 취업비자 E-7-3과 E-9는 관리 주체가 다르다. E-9 이주노동자들은 고용노동부 관리·지원을 받는 반면, E-7 이주노동자들은 출입국 관리에 중점을 두는 법무부 관리를 받다 보니 노동권 보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 센터장은 “E-7-3 취업비자는 브로커 비리·저임금·임금 갈취·강제노동·초단기 계약 등 온갖 문제를 담고 있다”며 “E-7-3 이주노동자 인력 도입·운용 권한 또한 조선해양플랜트협회라는 경영계 대변 단체가 맡고 있어 노동권은 더욱 후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네팔, 몽골, 미얀마, 방글라데시, 베트남, 스리랑카, 우즈베키스탄, 인도네시아, 일본, 중국, 캄보디아, 태국, 파키스탄, 필리핀 등 경남지역 14개국 교민회 대표단인 경남이주민연대회의는 “고용허가제 대신 노동허가제를 통해 이주노동자에게 노동 선택권을 줘야 한다”며 “취업비자 관리도 출입국 관리에 몰두하는 법무부 대신 외국인 정책·취업비자 관리를 전담하는 ‘이민청’을 설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정부는 지난 9월 조직개편안을 내놓았지만, 이민전담기구 관련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다만 노동부는 이민자의 정주 금지를 원칙으로 하는 ‘고용허가제’에서 정주를 유도하는 ‘노동허가제’ 전환을 검토하고 있다.
위험 이주화 막아야 노동자 처우 개선
노동계 또한 비정규직 확대·위험의 이주화를 막을 수 있도록 취업비자 개선을 촉구했다. 노동계는 이주노동자 처우 개선이 곧 국내 노동자 처우 개선이라며 연대를 강조했다.
김정호 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하청노동자들에게 전가되던 위험 작업이 이제 이주노동자들에게 전가되면서 위험의 이주화가 벌어지고 있다”며 “이주노동자들이 들어오면서 하청노동자를 비롯한 국내 노동자들과 노노 갈등을 빚는 상황도 종종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주·국내노동자들끼리 서로 임금을 깎아가며 일자리를 두고 분쟁하는 노동시장 교란이 일어날 수 있다”며 “결국 동일노동·동일임금이란 가치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이주노동자 처우 개선에 노동계도 함께 힘을 보태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주노동자가 대거 유입된 경남지역 조선소에서는 이주노동자 처우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금속노조 경남지부는 지난달 1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이주노동자 쿼터제 폐지’를 요구하기도 했다.
학계는 경영계·정부 입맛에 맞춘 제도 변화를 중단하고, 노동자가 노동권·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제도로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현일 국립창원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행 취업비자 제도는 이주노동자 관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이주노동자 노동권 보장은 상당히 미흡한 편”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주노동자들에게 보편적인 노동권이 보장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며 “제도 허점으로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양산되고 있으며, 이로 말미암은 인권 문제도 덩달아 급증하기 전 정부의 빠른 결단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끝>
/안지산 기자
잠깐! 7초만 투자해주세요.
경남도민일보가 뉴스레터 '보이소'를 발행합니다. 매일 아침 7시 30분 찾아뵙습니다.
이름과 이메일만 입력해주세요. 중요한 뉴스를 엄선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