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비자’ 강제노동 악용]
(2)‘사장님’이 신고할까 두렵다

‘사장님’이 불법파견·돈 떼먹어도 말 못해
노동자 “가족 부양 위해 일 계속 해야해”
체류자격 있든 없든 강제노동 심각한데
정부·경영계가 오히려 ‘강제’ 족쇄 더 채워

이주노동자들은 이른바 ‘코리안드림’을 안고 취업비자를 받아 우리나라에 발을 들였다. 브로커들은 이주노동자들에게 말했다. 한국에 오면 숙소를 제공받고 좋은 일자리에서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현실은 달랐다. 이주노동자의 고용주인 ‘사장님’들은 불법과 강제노동을 일삼았다.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장 변경 제한 때문에 한 사업장에 묶일 수밖에 없었다. 사업장 변경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부당한 처우 속에서 묵묵히 일하거나,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사무소의 단속을 피하며 생계를 이어가야 했다.

창원 한 병원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인 베트남 국적 레 호앙 안(가명·오른쪽) 씨가 응우옌 하이 당(가명) 씨의 휠체어를 밀고 있다. /안지산 기자
창원 한 병원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인 베트남 국적 레 호앙 안(가명·오른쪽) 씨가 응우옌 하이 당(가명) 씨의 휠체어를 밀고 있다. /안지산 기자

고국에 있는 가족 위해 참았다

베트남 국적 레 호앙 안(가명·43) 씨는 E-9(비전문취업) 취업비자를 통해 2010년 10월 14일 우리나라에 입국했다. 경남에서 오랜 기간 용접 노동을 했고 최근에는 CNC(공작기계) 가공 업무를 했다. 회사 4곳을 다니며 일하다가 최근에는 사천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생활하다가 병원에 입원했다.

베트남 국적 응우옌 하이 당(가명·46) 씨도 E-9 비자로 2017년 7월 26일 우리나라에 왔다. 그 또한 경남에서 알루미늄 공장 등 직장을 3군데 다녔고, 사천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생활 중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두 사람은 E-9 취업비자의 최대 체류 기간을 넘겨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됐다. E-9 비자 기본 체류 기간은 3년이다. 사업주가 재고용하면 1년 10개월 추가 연장 가능해 최대 4년 10개월까지 체류할 수 있다. E-9 취업비자로 5년 이상 체류하면 추가 E-9 비자 발급이 불가능하다.

이들은 사천시 축동면 한 농업용 기계 제조 전문 ㄱ 업체에서 일하고 있었다. 지난 9월 15일 법무부 출입국사무소 직원 30여 명은 ㄱ 업체에 들이닥쳐 미등록 이주노동자 마구잡이 단속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호앙 안, 하이 당 씨는 2층에서 추락해 골절상을 입었다. 이후 이들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도 못하다가 마창거제산재추방연합·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의 도움 아래 창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다.

두 노동자는 다친 것보다 생계를 먼저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호앙 안 씨는 베트남에 아내·아이 2명·남동생 부부·남동생 부부의 아이 2명을 책임졌어야 했다. 하이 당 씨도 어머니·아내·아이 3명의 가장 역할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호앙 안 씨는 “다쳤을 때 수갑을 차고 있었지만 119가 와서 병원 치료를 받았다”며 “사장님이 병원비를 선결제했는데 나중에 내 월급에서 치료비 400만 원을 차감했다”고 말했다.

이어 “아파서 쉬고 있는데 사장님이 전화 와서 ‘병원 치료비가 더 나왔으니 돈을 200만 원 더 보내라’고 했다”고 전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인 베트남 국적 응우옌 하이 당(가명) 씨는 업무 중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사무소의 단속을 피하다 골절상으로 다리를 다쳤다. /안지산 기자
미등록 이주노동자인 베트남 국적 응우옌 하이 당(가명) 씨는 업무 중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사무소의 단속을 피하다 골절상으로 다리를 다쳤다. /안지산 기자

호앙 안 씨는 수중에 있는 100만 원과 빌린 돈 100만 원을 ‘사장님’에게 보냈다. 그러나 지원단체가 알아본 결과 ‘사장님’은 보험을 통해 치료비를 지원받았으면서 이중으로 두 노동자에게 치료비를 청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두 노동자는 ‘사장님’의 만행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사장님’이 나를 다른 사업장에 불법파견한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말할 수 없었다. ‘사장님’과 사이가 틀어지면 그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라고 신고할테고, 그러면 본국으로 추방당할 거란 두려움 때문이었다.

하이 당 씨는 “6~7개월 일해도 사장님이 돈 없다고 하면 돈을 안 받고 넘어가기도 한다”며 “사장님은 돈이 있어도 내가 미등록이니까 돈을 적게 주거나 안 줘도 그만이라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고 토로했다.

두 노동자는 사업장 변경 제한 제도를 악용해 강제노동시키는 사업주 탓에 체류 자격도 잃고 정상적인 대우를 받지 못한 것이다.

비자 있든 없든 강제노동 당한다

핵심은 정상적인 체류 자격을 갖고 있든 미등록 이주노동자든 똑같이 강제노동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E-9을 포함한 일부 취업비자는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고 있으며, 사업장을 변경하려면 임금체불 등의 정당한 이유와 사업주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는 이 같은 행정적 절차를 100% 이해하지 못할뿐더러 사업주의 승인 없이는 사업장 변경이 어렵다. 사업장 변경 권한이 있는 사업주가 이주노동자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셈이다. 이에 이주노동자는 사업주 명령에 반하면 체류기한 내 사업장 변경을 못한 채 체류자격을 잃고 미등록으로 활동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인 베트남 국적 레 호앙 안(가명) 씨의 급여명세서. 그는 ‘사장님’으로부터 매달 급여를 현금으로 받았다. /마창거제산재추방연합
미등록 이주노동자인 베트남 국적 레 호앙 안(가명) 씨의 급여명세서. 그는 ‘사장님’으로부터 매달 급여를 현금으로 받았다. /마창거제산재추방연합

금속노조 경남지부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에 따르면, 거제 한 대형 조선소에 2년 근무했던 우즈베키스탄 국적 E-7-3(조선소 용접공 등 기능인력) 취업비자 노동자 9명도 차별 대우를 받았다.

이주노동자들은 이 조선소에서 1년 근무 후 새 계약서를 썼다. 회사는 매달 급여에서 식비 명목으로 월 18만 원을 떼갔다고 밝혔다. 회사 아침·점심 식사는 무료로 제공됐음에도 식비를 공제한 것이다. 문제는 식비 공제가 이주노동자에게만 해당됐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이주노동자들은 반발할 수 없었다. E-7-3 취업비자의 사업장 변경 제한 때문이다.

E-7-3는 E-9보다 사업장 변경 제한이 더 까다롭다. 휴·폐업 상황이 아니면 변경조차 할 수 없다. 이에 이주노동자들은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강제노동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강제노동을 더욱 더 공고히 하는 E-7-3 이주노동자 수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법무부에 따르면 올해 조선업 E-9 이주노동자 수는 1만 1200명, E-7-3 이주노동자 수는 1만 1741명이다.

강제노동을 합법화하는 탓에 ‘사장님’이 시키면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위험한 일도 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다친 노동자 수는 매해 급증하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강득구(더불어민주당·경기 안양시만안구)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업종별 외국인 노동자 산업재해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이후 외국인 노동자의 산업재해는 매년 증가했다. 2020년 7583명에서 2024년에는 9219명으로 늘었고, 2025년 6월까지 4550명이 산업재해로 다치거나 사망했다.

결국 정부가 경영계 입맛에 맞춰 손본 취업비자 제도는 다단계 하도급 저임금 구조 고착화를 넘어 위험의 이주화를 공고히 하고 있다. 노동계는 현 취업비자 제도가 사회 문제를 더 일으키기 전에 개선돼야 한다고 목소리 내고 있다.

/안지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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