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침해사건조사위 결과 발표
강제진압·채증·사망사건 축소
재발방지·인권제도 개선 권고

밀양 765㎸송전선로 건설과정에서 주민들에게 가해진 경찰의 폭력이 공식 확인됐다. 법적 기구가 경찰의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해 송전탑 공사 과정에서 벌어진 국가폭력을 처음 인정한 것이다.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13일 밀양·청도 송전탑 건설사건 조사·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위는 경찰청에 재발방지와 인권 증진 제도·정책 개선을 권고했다.

밀양 송전탑 갈등은 2007년 정부가 울산시 울주군 신고리원전∼창녕군 북경남변전소 765㎸ 송전선로 건설사업을 승인하고, 2008년 7월 주민들이 송전선로 백지화를 요구하는 궐기대회를 하면서 시작됐다.

주민들은 의견수렴, 건강권, 재산권 침해 등 문제를 제기하며 반발했었다. 한국전력공사가 공사를 강행하는 과정에 투입된 경찰은 주민들에게 무자비한 폭력과 인권침해를 자행했다.

◇경찰의 주민 탄압 = 경찰은 송전선로 공사과정에서 주민의 안전을 고려하기는커녕 과도한 물리력으로 탄압했다. '3선 차단' 경비대책을 세워 생업을 위해 일터로 가는 주민들의 통행권을 침해하고, 주민들을 도우러 가는 의료진과 변호사들도 막았다.

2014년 1월 주민들의 식사판을 걷어차고 논바닥에서 몸싸움을 하는 등 경찰은 물리력을 동원했다. 주민이나 활동가에게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특히 2014년 6월 11일 행정대집행이 진행된 날, 경찰은 농성장 천막을 직접 커터칼로 찢고 몸에 쇠사슬을 묶은 주민에게 절단기를 들이댔다. 옷을 벗고 저항하는 고령의 여성은 남성 경찰에 의해 강제로 끌려나왔다. 진상조사위는 "경찰력 투입은 안전하게 행정대집행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강제로 진압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정보경찰도 마찬가지였다. 정보경찰은 불법행위가 발생하기도 전에 주민의 이름과 나이, 처벌 전력 등을 파악해 검거대상으로 분류했다. 체포·호송조를 편성해 마을별로 배치하기도 했다. 보고서에는 '강성 주민', '외부세력', '과격', '극렬 불법행위 주동자' 등 표현으로 강경수사를 대응기조로 삼았다. 사복 채증조를 편성해 상시로 채증활동도 했다.

2014년 6월 11일 밀양 송전탑 반대주민 농성장 행정대집행이 진행된 날, 경찰이 부북면 평밭마을 인근 129번 움막에서 알몸인 주민들을 끌어내고 있다. /표세호 기자
2014년 6월 11일 밀양 송전탑 반대주민 농성장 행정대집행이 진행된 날, 경찰이 부북면 평밭마을 인근 129번 움막에서 알몸인 주민들을 끌어내고 있다. /표세호 기자

 

◇사망사건 사인 축소 = 특히 경찰은 밀양 송전탑 공사과정에서 고 이치우(당시 74세)·유한숙(당시 74세) 씨 죽음의 진실을 축소하는 데 급급했다.

이 씨는 2012년 1월 16일 오전 4시께 한전 용역 50명이 굴착기로 논을 파헤치자 그날 저녁 분신해 사망했다. 이 씨는 형제들과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유지했는데, 논에 대한 보상금은 아예 없는 수준이었다. 매매도 되지 않았고, 농협에서 대출을 받고자 했으나 담보로 잡히지도 않아 막막한 상황이었다.

분신사건 발생 당시 밀양경찰서 한 정보관은 "분신하신 분이 있다"고 119에 신고했다. 그런데 밀양서 정보과장은 '화재 안전사고'로 보고하라고 지시했고, 상황보고서는 안전사고로 수정됐다. 경찰은 언론에 '나무 잔가지를 모아 불을 붙이려다 실수로 옮겨붙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가 비판이 들끓자 1월 30일에야 '분신자살로 추정'이라고 수정 발표했다.

음독해 숨진 유 씨에 대한 사인도 축소 발표했다. 경찰은 2013년 12월 6일 유 씨 사망 후 '복합적 원인 추정'이라며 송전탑 관련 내용을 숨기려 했다. 유 씨는 사망 전 병상에서 대책위와 딸에게 송전탑 때문이라며 울분을 표현했었다. 경찰은 2013년 12월 밀양시청, 한전 밀양지사, 밀양역 등에 유 씨의 시민분향소 설치를 차단했고, 3차례 천막을 철거했다. 또 2014년 1월 밀양시청 앞에 분양소를 설치하려던 주민과 유족을 강제로 끌어내기도 했다.

◇징계는커녕 포상잔치 = 송전탑 공사 이후 경찰의 포상과 특별승진이 잇따랐다. 2012~2014년 경남청장과 밀양서장은 직원들에게 모두 1050건 표창을 수여했다.

또 2014년 경남청 소속 5명, 밀양서 3명 등은 밀양송전탑과 관련해 특진했다. 당시 이성한 경찰청장은 퇴임 후 2016년 한전 상임감사로 재취업했다.

주민들에게 욕설을 하거나 조롱한 경찰은 4명만 경고·주의 징계를 받았다. 주민들이 진정한 경찰의 욕설·부당행위에 대한 감찰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밀양 송전탑 건설 과정에 주민 2명이 숨지고, 2013년 10월 막판 공사강행과 이듬해 6월 행정대집행 때까지 224명이 다쳤다.

밀양 송전탑 갈등으로 주민·활동가 67명이 연행돼 69건이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에서는 집행유예 14건, 벌금 37건, 선고유예 12건, 소년보호처분 1건, 무죄 4건으로 처리됐다. 벌금은 모두 8350만 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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