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은(창원 마산무학여중 1학년)

개기월식. 또는 두 개의 달이 뜨는 밤. 어젯밤, 너를 몇 년 동안 좋아한 나는 그렇게 나에게 이별을 고한 너와 헤어지고 난 후 눈이 벌겋게 달아오르도록 한참을 울다 지쳐 잠에 들었다. 잠에서 깨어나 거울을 보자, 말끔한 거울에 비치는 나의 모습은 너무나 슬퍼 보이고 너무나 처량해 보였다.

"이게 다 너 덕분이지. 아니, 그냥 바보 같았던 나 자신 때문이지."

그 사람으로 인해서 내가 얻은 것은 오직 결과적으로 상처밖엔 없었다.

너를 만난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저 좋아해서, 사랑해서, 단순히 감정에 휘둘려 가면을 쓰고 너를 마주했었던 것 같았다. 사랑이라는 가면은 내게 숨을 옥죄어 오는 탁한 손길이라는 것도 모른 채.

서랍에서 약통을 깨내어 들었다. 탁탁탁. 위 아래로 한 번 흔들어 보았더니 둔탁하면서도 가벼운 소리를 내며 서로 뒤섞이는 약들의 소리는 마치 내게 살려 달라 하는 한 여성의 비명 소리와도 같이 들려왔다. 내가 너를 살려줄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약들을 한 움큼 쥐어 손바닥 위에 탈탈탈 올려놓았다. 새하얀 약.

"나도 너처럼 그에게 새하얗기만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순결의 상징, 횐 색. 눈물이 약 위로 떨어졌고, 눈물을 머금으며 약들을 입으로 털어 넣었다. 방안을 어둡게, 암흑으로 만들어버린 커튼을 활짝 걷었다. 하지만 걷어 봐도 어두운 것은 똑같았다. 아직 낮은 오지 않았다. 창 너머로 하늘에 떠있는 달은 곧 자취를 감출 것만 같이 야위어 있었다. 어쩌면 그게 나의 또 다른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니 떠올리기 싫은 끔찍한 너에 대한 기억들이 문득 떠올랐다.

"사라져, 사라지라고! 제발 내 기억 속에서 사라져."

나는 나의 머리를 스스로 때리기 시작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파올 정도로 마구 세게 때렸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헛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환각이었을까. 허공을 헤집으며 돌아다니는 너였다. 하반신이 없는 상태였고, 표정은 무표정을 한 채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무서워. 저리 가."

나는 손사래를 치며 거부했다. 환각이지만 이렇게 선명하게 보이는 너, 우리의 관계에 마침표를 그은 건 누구였을까. 너무 후회되고 감정이 밀려오는 나는 그 자리에 바로 주저앉았다. 조용히 잠들어 버린 나.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을 차리고 다시 보니 아까 보였던 너의 그 끔찍한 모습은 없어져 있었다. 내가 너무 예민해서 그랬던 걸까. 나는 과로로 쓰러지기 전에 잠을 자려고 걷었던 커튼을 다시 굳게 치고 침대 위 이불 속으로 숨듯이 기어 들어갔다. 실내는 따뜻한데, 나에겐 오한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벌벌 떨리는 몸, 입술은 시퍼렇게 질려갔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또다시 너에 대한 기억들이 머릿속을 주마등처럼 훅 스쳐지나갔다. 나는 다급히 핸드폰을 켜, 너와의 추억이 담겨있는 사건들을 눈에 담았다.

"넌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아무렇지 않은 거냐고."

추억에서 감정을 빼면 기억이 된다고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 추억이 아니야. 이건 기억일 뿐이지. 과거의 너와 함께 보냈던 시간들을 난 기억할 뿐인 거야."

자기 합리화를 하며 갤러리 속 다정하게 웃고 있는 너와의 사진을 보며 몰래 눈물을 훔쳤다.

"야, 정신차려. 정신 차리라고."

그가 나에게 말했다. 놀란 나는 그에게 말했다.

"니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내 말을 들은 그는 나에게

"너 뭐 착각하나 본데, 잘못은 니가 한 거야. 제발 이러지 말자."

라고 말했다.

"윤승아, 다시 한 번만 생각해봐. 제발."

너를 놓치기 싫었던 나. 하지만 돌아오는 건 오직 그 말 밖에 없었다.

"이거나 저거나 불행한 건 피차일반이야. 제발 이젠 좀 저리 가."

오늘로 드디어, 달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야 말았다.

개기월식. 누군가에겐 희가 되고 또 누군가에겐 비가 된다.

희비교차. 과연 누가 희이고, 누가 비일지. 예측은 가능하다. 왜냐면 너무나도 뻔한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너라는 달은 자취를 감추고 숨어버렸지만, 내 세상에는 달이 두 개나 존재했다. 개기월식. 즉, 나에겐 달이 두 개나 뜨는 날이었던 것.

"너 하나 숨어버려도 괜찮아."

하나의 달이 더 존재하고 있으니까.

"너무 속상해하진 말라고. 언젠간 다시 찾으러 갈게, 윤승아."

고혹적인 짙은 레드 색의 립스틱을 오버되게 입술 전체에 바른 후 검은색 아이라이너를 꺼내 들어 관자놀이에 점을 옅게 찍었다. 비로소 오늘, 내가 다시 태어나는 날. 다른 하나의 달을 만나러 가는 날.

"이미 이윤승은 죽었어."

며칠 후.

"자기야, 많이 기다렸지?"

"아니야 별로 많이 안 기다렸어."

그리고 드디어 만났다. 나의 두 번째의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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