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 벤 후 마늘 심어 이름나며 남해 대표농산물 등극

남해 사람들에게 마늘은 특별하다. 오래 전 좁은 땅 위에 많은 사람이 모여 살다 보니 넉넉한 삶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부지런히 먹고살 길을 찾아야 했기에 한시도 땅을 놀릴 틈이 없었다. 자연스레 벼를 수확한 뒤면 논에 마늘을 심었다. 다행히 따뜻한 겨울과 서늘한 여름 기후가 한몫했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지리적 특성도 힘을 보탰다. 주민들은 마늘 농사에 힘을 실었다.

아이들에게는 간식거리도 생겼다. 이른 아침 어른들은 소죽을 끓이고 남은 재에 마늘 한두 톨씩을 던져줬다. 다 익으면 꺼내 까먹는 맛이 기가 막혔다. 돌이켜보면 보약이나 다름없었다. 이윽고 '해풍을 먹고 자랐다'는 수식어가 붙었다. '해풍 속 나트륨이 마늘 양분 이동을 좋게 하여 독특한 맛을 만들어 낸다'는 말도 나왔다. 어느새 마늘 농사를 지으며 기울어진 가세를 일으켜 세웠다는 이야기도 여럿 생겼다. 2011년 남해 농업 총 생산액 1위는 마늘이 차지했다.

   

이 기특한 마늘이 식탁 앞에서는 또 다르다. 딱히 특별할 게 없다. '남해에서 즐겨 먹는 마늘 음식'을 물어봐도 묵묵부답이다. 한참을 생각해보다가도 슬쩍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러다가 이내 "마늘이 안 들어가는 음식이 어디 있겠느냐"며 반문한다. 지극히 일상적이지만 없어서는 안 될 채소가 바로 마늘이다.

예전부터 마늘은 '밥상의 조연'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향신료·양념·반찬 등으로 널리 이용되며 가치를 뽐냈다. 우리나라에서 마늘은 고춧가루, 파와 함께 식생활에 빠지지 않는 '3대 양념'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당장 밥상을 들여다보면 마늘이 빠진 음식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물론 온전한 제 모습을 드러낸 경우는 드물다. 볶고, 굽고, 다지는 등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밥상을 채운다. 그래서 남해 사람들도 마늘 음식에 대해서는 유난 떨지 않는다. 효능과 맛에 대해서는 신나게 이야기하다가도 음식 이야기에서는 한발 물러선다. 대신 한 입을 모아 "마늘은 버릴 게 없다"고 전한다. 뒤에서는 부지런하고 앞에서는 수줍은 듯 제 모습을 감추는 것이 이곳 사람들을 똑 닮았다.

마늘은 생것 그대로 먹기도 하고 뿌리의 비늘줄기와 연한 잎, 마늘종도 양념을 해서 먹는다. 풋마늘은 연하면 잎이 붙은 채로 된장이나 고추장에 찍어 먹기도 하지만 썰어서 된장찌개에 넣거나, 쇠고기와 번갈아 꼬치에 꿰어 산적을 만들기도 한다. 고기 요리에도 빠지지 않는다. 마늘은 고기 비린내를 없애주고 맛을 좋게 하는데 탁월하다. 또 함께 먹으면 단백질을 응고시켜 위에 대한 자극을 가볍게 해 소화를 돕는다. '마늘 쌈'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봄철 남해에서는 마늘종이 나온다. 마늘종은 장아찌, 김치로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이 중 마늘종김치는 갓 뽑은 마늘종을 썰어 소금에 절이고서 고춧가루를 넣고 버무린 것이다. 여기에 참기름을 뿌려주면 참기름의 고소함과 마늘종김치의 매콤함이 잘 어울려 기막힌 맛을 낸다. 그 맛에 마늘종을 찾는 사람도 점차 늘고 있다. 농민에게 마늘종은 본격적인 마늘 수확에 앞서 보는 '짭짤한 수입'이 될 수 있다. 그런데도 마늘종을 두고 말이 많다. '품삯이 더 나온다'는 말은 차치하더라도, 마늘 품질과 연관이 있어서다. 보통 농가에서는 마늘종이 30㎝ 정도 자라면 뽑아낸다. 하지만 마늘종이 2~5㎝ 정도 자랐을 때 마늘대 제일 위에서 대를 끊어버리면 마늘종으로 갈 영양분이 아래쪽 마늘로 갈 수 있다. 물론 몇 해 되풀이해야 한다지만 더 건강한 마늘을 생산할 수 있다. 그럼에도 마늘종을 외면할 수 없다. 음식도 음식이지만 결국 버릴 수 없는 '수입원'이기 때문이다. 당장 '마늘종 빼다가 허리가 아파 죽겠다'고 하지만 참고 넘긴다. 애먹더라도 별수 없는 게 농민 마음이다.

   

마늘이 비교적 제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는 음식은 '마늘장아찌'다. 마늘 음식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덕에 대표 마늘 음식이라 해도 될 정도다. 마늘장아찌는 하지 전에 캔 여린 마늘 가운데 잎이 푸른 것을 골라 겉껍질만 벗겨 통째로 담근다. 그 이후에 캔 것은 껍질을 모두 벗겨서 깐마늘장아찌로 담근다. 아린 맛을 없애고자 식초에 담가두고, 다시 간장과 설탕을 한소끔 끓였다가 식혀 붓기를 반복한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지만 귀찮게 여기는 사람은 없다. 덕분에 남해 어느 곳을 가도 마늘장아찌를 맛볼 수 있다. 그렇다고 '특별 대접'은 없다. 어느 순간 밥상 한구석에 자리 잡을 뿐이다. 그저 오래 두고 먹으며 다른 찬을 돋보이게 한다. 그게 마늘이다.

마늘을 수확하고 나면 마늘대가 남는다. 이 역시도 '누군가'에게는 좋은 음식이다. 남은 마늘대를 마르기 전에 잘라 쌀겨와 섞어 김치담그듯 담그고서 70일 정도 기다리면 사료로 사용할 수 있다. 특히 이 사료는 알리신 등 마늘의 유용한 성분을 가축 체내로 전이시킨다고 한다. 이에 '마늘 먹인 남해 한우·돼지'도 나왔다. 지금도 마늘 수확이 끝날 때쯤이면 마늘대를 거둬가려는 손길이 이어진다. 공짜도 아니다. 비료와 물물교환을 해 농민 시름을 던다. 마늘은 이래저래 쓰임이 많다.

이런 마늘이 최근 변신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흑마늘'이 있다. 마늘을 숙성시키면 냄새가 없어지고 자극성도 감소한다. 또 생마늘에 존재하지 않던 'S-아릴시스테인'이 생성된다. 이 성분은 항산화작용, 간 장애·암 예방작용은 물론 암세포 증식억제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졌다. 기존 마늘에 새로운 효능이 더해지고 쉽게 먹을 수 있다는 장점까지 덧붙여진 것이다. 흑마늘을 만드는 원리는 간단하다. 이곳 주민들은 우스갯소리로 '보온밥통에 가만히 둬도 흑마늘이 된다'고 할 정도다. 그렇다고 만만히 볼 수는 없다. 온도와 숙성 기간에 따라 그 맛이 확연히 달라진다.

마늘로 만든 퓨전요리. /남해전문대 호텔조리제빵학과

아쉬움도 있다. 정작 남해를 대표하는 '마늘 음식'이 없다는 점은 많은 사람이 안은 고민거리다. 남해마늘연구소 신정혜 연구기획실장 어깨가 무거운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단양에 마늘 전문 식당이 있는 걸 봤어요. 마늘 정식·만두·갈비는 물론 밥에도 마늘 몇 톨을 넣어 주더라고요. 사실 남해가 이 부분은 굉장히 취약해요. 본받아야 할 점이죠."

이에 남해마늘연구소에서는 '마늘종'부터 손대기 시작했다.

신정혜 실장은 이렇게 말한다. "마늘종은 장아찌나 김치 말고는 특별한 요리법이 없어요. 우리 연구소에서는 누구나 먹을 수 있는 가공식품과 손쉬운 가공법 개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사실 형체가 온전하지 않아서 그렇지 마늘이 들어가지 않는 음식은 드물잖아요. 못 느낄 뿐이죠. 뿌리부터 껍질까지 진짜 버릴 게 없다는 걸 알려야죠."

남해 마늘은 너무 익숙해진 그 쓰임을 되새기며 다시 첫 발을 떼려 한다. 이제 당당하게 주연으로 나설 차례다.

※이 취재는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기업 ㈜무학이 후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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