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고 뽑고 다듬고 고르고1년, 땀과 눈물로 일궈 자식들 뒷바라지

남해군 남면 죽전리 양지마을. 김춘길(69) 씨는 잠시 일손을 놓고 나무 아래 그늘로 들어온다. 비 내린 다음 날이라 햇빛이 제법 따갑다. 물 대신 소주로 목을 축인다. 그리고는 아직 반쯤 더 수확해야 하는 마늘을 내려본다.

김 씨는 8264㎡(2500평)가량 되는 땅에서 마늘농사를 한다. 3305㎡(1000평) 이상이면 크게 하는 편이니, 만만치 않은 규모다. 고향 땅 남해에서 마늘과 씨름한 세월이 벌써 45년 가까이 된다.

"군대 제대하고 서울에 몇 년 간 있다가 고향에 왔어. 장남이니까 부모님 모시러 들어온 거야. 집에서는 예전부터 마늘농사를 했거든. 자연스레 물려받게 된 거지. 그때는 재래종이었고, 남도마늘이 들어와 소득 작물화 되기 이전이었어. 재래종은 아마 15년 전 즈음에 거의 다 사라졌을 거야."

어느 품목이나 그러하지만, 마늘농사 역시 땅 일구는 것이 중요했다.

"퇴비·비료를 잘 줘 마늘이 되게끔 땅을 만들어야지. 너무 과하면 땅이 죽기에 적당히 넣어야 하고…. 몇 년 동안 안 되던 땅도 그렇게 노력해 가며 만들어 가는 거야. 나는 처음엔 잘 몰라서 뭐, 어른들 시키는 대로 배워가면서 했고…."

가끔 큰 비가 내려 배수가 안 되는 통에 망친 적도 있지만, 꾸준히 괜찮은 편이었다. 자식들 교육비 걱정 없을 정도는 됐다. 1990년대 말, 큰 손해를 본 적이 있기는 하다.

"마늘농사 하면서 중매인도 했었거든. 수매한 것을 대량 저장해 뒀는데, 갑자기 값이 내려가는 바람에 손해를 많이 봤지. 그 전에는 돈에 구애받지 않았는데, 그 일로 지금까지 고생하고 있네."

3년 전부터는 남해 내에서 처음으로 '유황마늘'을 하고 있다.

"예전부터 황토에서 나는 식물은 약이라고 했어. 황토에는 유황이 많거든. 유황마늘은 황토에서 자란 것과 같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야. 땅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고, 황토에서 자란 놈들처럼 그러한 성분을 마늘에 뿌려주는 거지. 특별히 돈 많이 들어가는 건 아니고, 노력과 정성을 많이 쏟아야 해. 그래도 일반 마늘보다 값을 좀 더 받을 수는 있어."

   

김 씨는 300명 넘는 이들과 직거래한다. 단골손님인 셈이다. 수첩에는 그 명단이 빼곡히 적혀 있다. 농사일 할 때도 이 수첩과 휴대전화는 늘 몸에 지니고 있다. 언제 주문 전화가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인터넷 홈페이지도 만들었다.

대개 농협 경매를 통해 처리하지만, 김 씨는 조금이라도 유통차액을 줄이고 제값을 받기 위해 직거래를 택했다.

"외국산이 들어오면서 가격이 맞지 않아 마늘농사도 어려워졌어. 지지난해는 좀 괜찮았는데…. 늘 가격 때문에 걱정이지. 말린 걸 기준으로 kg당 5000원씩만 받으면 마늘 하는 사람들이 신나서 일하지. 마늘은 사과보다 당도가 높아. 그런데 매운맛이 강해 그 맛을 잘 모르는 거지. 특히 남해 것은 다른 지역보다 당도가 2~3도 더 많아. 동에서도, 서에서도, 사방에서 바닷바람이 불어서 그런 거야."

올해는 일손이 부족해 걱정이다. 남해는 유대관계가 끈끈하다. '뭉쳐야 산다'는 말이 잘 통하는 곳이다. 각 지역 향우회에서는 수확 철 고향을 찾아 일손을 보탰다.

이제는 예전만은 못하다. 대학생 농촌봉사활동도 마찬가지다. 돈 주고 아낙네들을 쓸 수밖에 없는데, 일당을 높이 쳐주지 못하니 사람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은 대민 지원도 별로 없어. 대학생들도 일당 주고 써. 보통은 3만 원이고, 일 좀 잘하면 5만 원은 주지. 이번 주말에 학생들이 올는지 모르겠어. 촌에 있는 여자들 쓰려면 5만~6만 원은 줘야 하거든. 그것도 일당 적다고 안 하려해. 일손 없어도 어떻게든 해야지."

자녀는 모두 넷이다. 모두 외지 나가 있다.

"가끔 와서 일손을 보태기도 해. 얻어먹으려면 그렇게 해야지."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통화를 마친 김 씨 얼굴이 썩 편치 않았다.

"대학생 40명이 와서 어제 우리 마을회관에서 잤거든. 그런데 그중에서 반은 다른 마을로 가서 일 돕는다고 그러네. 그러니 우리마을 사람들이 지금 화가 좀 나 있는 거야."

김 씨는 소주 한 모금을 들이켰다. 1.5리터 페트병 소주를 늘 나무에 둔다.

"이거 안 마시면 허리 아파 일 못해. 이게 곧 약이야. 술힘으로 일하는 거지. 젊을 때는 생생했는데, 이제 나이 드니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래도 우리는 뼈가 단련돼 있어 어떻게든 하는데, 젊은 사람들은 조금만 일해도 허리가 불편하지."

보름 내에 마늘을 모두 정리해야 벼농사에 들어갈 수 있다.

"모 심고 나면 마늘 판매에 신경 써야 하거든. 9~10월까지는 다 팔아야지. 그러면 또 그다음부터는 마늘 파종해야 하고…. 농한기가 없는 거지. 특히 마늘은 농사일 중에서 제일 힘들어. 심고, 뽑고, 절단하고, 다듬고, 선별하고…. 노력한 만큼 대가가 나와야 할 텐데…. 남해에서 마늘은 계속 이어져야 하는데, 지금은 젊은 사람도 없고, 소득도 별로라서 걱정이 많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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