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옥종면 두양리 은행나무 부활기원제
9일 나무 사랑하는 시민 23명 모여
산불 탄 나무 안타깝지만 생명력에 희망 느껴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9일 오후 2시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은행나무에서 가까운 교회에 두양리 은행나무를 사랑하는 시민 23명이 모여 부활 기원제를 올렸다.
산불로 80% 이상 생명이 끊어진 두양리 은행나무 뿌리에서 최근 근맹아(뿌리움)가 돋아났다. 근맹아는 땅속에 묻혀 있던 순을 말하는데, 나무에 물리적인 충격이 가해졌을 때, 잠자던 뿌리 싹 순이 생존 본능을 일으켜 지상 위로 깨어난다고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방식으로 나무의 부활을 기원했다. 가수 우창수·김은희 부부는 노래로, 지리산 시인으로 유명한 이원규 시인은 시로, 전통 무용을 하는 김태린 무용가는 춤으로 간절한 마음을 표현했다.
특히, 이원규 시인은 은행나무의 심정을 담아 다음과 같은 시를 써 낭독했다.
"온 동네 온 산에 산불을 지르고/ 온 나라 온 지구에 인류 종말의 화마를 자초하니/ 살아 천년 어찌 나 혼자만 청청 살아남겠느냐// (중략) 온갖 탐욕에 찌든 몸과 마음 다 불살라 버리고/ 아직 어린 새싹으로, 첫 마음의 연초록 새순으로 다시 살자// (중략) 천년을 살아도 죽어 다시 살아나야 할 때가 있느니라/ 그렇다, 지금이 바로 그날이다"
참석자들은 이후 다 함께 산길을 따라 비를 맞고 있는 은행나무 앞으로 향했다.
우방산 해발 225m에 뿌리내린 두양리 은행나무는 고려시대 은열공 강민첨(963~1020) 장군이 15세(978년)에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수령이 최소 1000년 이상이다. 현재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됐고, 2021년엔 국가유산청 천연기념물 우수 잠재 자원으로 추천된 바 있다. 보통 은행나무는 생활권에 있지만, 두양리 은행나무는 산 한가운데 있어 공간 구조 면에서도 가치가 뛰어나다고 평가받는다.
산불 피해 이후 두양리 은행나무는 생물학적으론 살아 있지만, 노거수로서 가치는 크게 상실됐다. 으뜸 줄기가 모두 타고, 나무 몸통 안쪽이 섞어 구멍(공동)이 생긴 상태였는데, 지금은 그 부위마저도 검게 그을려 있다. 현재 최소 200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줄기 2개 중 일부만 살아 있다.
사람들은 이런 현실 앞에서 안타까움과 죄책감을 느꼈다. 이날 박정기 곰솔조경 대표는 부활 기원제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하동에서 산불이 났을 때부터 두양리 은행나무에 대한 걱정이 컸다고 한다. 행정 당국에 전화해서 은행나무 주변으로 물을 뿌려달라고 요청할지 망설였다고 한다. 그러다 당시 소방대원 2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는 사람이 죽은 마당에 나무를 살려달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그때 전화를 걸지 못한 것이 평생 한으로 남을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강민첨 장군 후손 강석규 은열공파 대종회장도 마음이 아프긴 마찬가지다. 강 회장은 조상이 내려준 나무가 산불로 험하게 사라진 걸 생각하면 속이 탄다고 한다. 그는 "건물은 타면 다시 지으면 되지만, 나무는 다시 살릴 수가 없다"며 "불에 탄 나무를 생각하면 억울하고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두양리 은행나무 생명력은 은행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건넸다. 두양리 은행나무 꺾여진 굵은 줄기엔 구멍이 하나 있다. 부활 기원제가 진행되던 때 쇠박새 두 마리가 번갈아서 먹이를 물고 구멍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그곳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은 것이다. 나뭇가지 끝엔 원래 나무가 머금고 있던 물 덕분에 작은 새잎이 났다. 뿌리와 작은 줄기 중앙에도 새순이 났다. 두양리 은행나무는 열매를 맺는 암그루인데, 은행나무 주변 땅에 떨어져 있는 은행 열매에서 새싹이 났다.
김재은 자연생태복원기사 겸 나무 의사는 "많은 부분 소실 됐지만, 살아날 가능성도 있다"라며 "은행나무는 수피가 두껍고 물이 많은 나무이기 때문에 일부분이 살아 있는 상태이고, 근맹아가 난 것도 반가운 소식"이라고 생각했다.
이 행사를 주도한 최세현 지리산초록걸음 대표는 원래 은행나무가 완전히 죽은 줄 알고 49재를 지내려던 참이었다. 그러다 지난달 20일쯤 은행나무에서 새순이 돋은 것을 발견했다. 최 씨는 부활을 간곡하게 빌어보자는 취지로 행사 주제를 고쳤다. 최 대표는 "새순은 그야말로 희망이었다"라며 "우리가 간곡하게 기원하면 다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날 부활기원제에 참석한 유미정 씨는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은행나무가 다시 소생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백솔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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