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에 타 연기가 나고 있는 두양리 은행나무 모습 /백인수 씨
불에 타 연기가 나고 있는 두양리 은행나무 모습 /백인수 씨

"서운해요. 그래서 제가 딸들에게 두양리 은행나무 열매를 가져와서 심어보자고도 제안했어요." 

지난 21일 산청군 시천면에서 발생한 산불이 23일 하동군까지 번지면서 900년 된 은행나무가 불에 탔다. 긴 역사만큼 쌓인 은행나무를 기억하는 이들의 추억도 함께 사라졌다. 하동군 '두양리 은행나무'를 자주 찾았던 사람들은 안타까워하고 있다.

진주에 사는 백인수(49) 씨는 두양리 은행나무에 애정이 각별했다. 그는 등산이 취미인 데다 임업에 필요한 장비를 대여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매일 매일 나무를 보며 살아온 그에게도 두양리 은행나무는 특별했다. 나무를 처음 만난 건 2002년이다. 선배와 함께 지나가다 우연히 만난 나무에서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숲속에 있어 일부러 찾아가야만 볼 수 있다는 신비로움도 그를 매료했다. 

2017년 새 차 구매 기념으로 가족들과 함께 찾은 두양리 은행나무. /백인수 씨
2017년 새 차 구매 기념으로 가족들과 함께 찾은 두양리 은행나무. /백인수 씨

인수 씨는 가을이면 가족들과 두양리 은행나무를 찾았다. 그 세월이 10년이다. 근처에 캠핑장이 있어 아이들과 놀다가도 함께 나무를 보러 갔다. 2017년에는 새 차를 산 기념으로 방문하기도 했다. 두 딸은 은행나무를 '어르신 나무'라고 부르며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아이들이 나무를 워낙 좋아해 코로나19가 기승일 때에도 이곳에서 단풍을 구경했다.

나무와 첫 만남 당시 초등학생, 유치원생이던 두 딸은 이제 고등학교 1학년, 중학교 2학년이 됐다. 두양리 은행나무가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동안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랐다. 가족들과의 많은 추억이 깃든 만큼 이번 화마 피해에 아쉬운 마음이 크다. 그는 "딸들이 예전부터 좋아하던 나무라서 그런지 아이들도 많이 우울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에 타버려 볼 수 없는 아름드리 은행나무. 인수 씨는 이번 주말 가족들과 함께 막걸리 한 병 사들고 찾아가 '두양리 은행나무'를 기릴 계획이다. 은행나무에게 마지막으로 예를 갖춰 건네는 송별주다.

하동 두양리 은행나무가 불에 탄 소식이 SNS를 타고 전해지자, 인수 씨를 비롯한 많은 누리꾼이 애도했다. 한 누리꾼은 "노랗게 물든 모습을 보려 언젠간 다시 가보려고 했었다"며 은행나무 사진을 올렸다. 하동에 산다고 밝힌 이도 마찬가지다. 그는 "하동 내려오기 전부터 황금빛 은행나무 보러 자주 갔었다"며 애석해 했다.  /권민주 기자 kwon@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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