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불 현장도 봄기운 완연합니다
희망 보며 자연의 위대함 또 깨닫습니다

살아남은 가지에서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났습니다. 그야말로 기적입니다. 화마가 할퀴고 간 산불 현장에서 만난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은행나무 소식입니다. 주변은 아직도 처참하기만 합니다. 마치 그날의 뜨거운 불기운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도 살아남은 한쪽 가지에는 생명의 온기가 움트고 있습니다. 지난해 가을 보았던 찬란하리만큼 노랗던 은행잎이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900년 세월을 살아내며 '살면 살아진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전해주는 듯합니다. 울컥한 마음에 한참을 주저앉아 바라봅니다. 두양리 은행나무는 아직 살아있습니다.

지리산 산불 현장을 찾았습니다. 이제 봄기운이 완연합니다. 불길이 미치지 않은 참나무 숲엔 연둣빛 꽃과 잎사귀가 가지 사이로 반짝반짝 빛을 발합니다. 나무 아래 돌 틈 사이에선 살아남은 다람쥐 한 마리가 먹이를 찾아 분주히 움직입니다. 복주머니를 닮은 금낭화 군락지엔 예쁜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산불 피해 복구에 여념이 없습니다. 타다 남은 밭을 일구고, 씨앗을 뿌리고, 다시 나무를 심습니다. 더디지만 희망이 보입니다. 그리고 새삼 깨닫습니다. 자연은 정말 위대합니다.

아직도 산등성이 곳곳에서 나는 매캐한 재 냄새가 코끝을 스칩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두려웠을까?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현장입니다. 불에 타서 재로 변하거나 흉터처럼 남은 그루터기 나무는 대부분 소나무입니다. 원래 있던 나무를 베어내고 다시 심은 편백나무도 모조리 불에 탔습니다. 반면에 참나무를 비롯한 활엽수는 살아남았습니다. 침엽수와 활엽수의 차이가 마치 선을 그어놓은 것처럼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자연스러운 숲, 다양한 수종으로 구성되어있는 산림은 산불에 강할 수밖에 없는 모양새입니다.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봅니다. 산 아래부터 산꼭대기까지 불길이 번져간 흔적이 역력하게 드러납니다. 우선 악전고투 진화에 온 힘을 다한 산불 진화대원들의 명복을 빌어봅니다. 그리고 조용히 생각해봅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을까. 미리 대비하진 못했을까. 정말 온 정성을 쏟아 불은 끄긴 한 걸까. 또 앞으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온갖 생각이 뇌리를 스치며 지나갑니다.

어쩌면 우리는 산불에 대해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외국 학자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숲 생태계는 빙산에 비유할 수 있다. 빙산의 일각처럼 생태계 전체는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것이다." <숲이 불탈 때>라는 책을 쓴 프랑스 철학자 조엘 자스크의 말입니다. 모든 산불을 싸워야 할 적으로 규정해서는 앞으로 닥쳐올 대형 산불을 막기 어렵다는 견해입니다. 또 이 학자는 힘주어 주장합니다. 생태주의적 사고, 산업주의적·기술주의적 사고 전체를 재검토하라고 요구합니다.

산불 트라우마는 미루어 짐작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덮쳐오는 화마 앞에서 겪어야 했던 공포감은 지옥 불을 연상케 합니다. 상실감과 무력감이 온몸과 마음을 불길처럼 감싸 안는 느낌이었을 듯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전국 방방곡곡에서 한마음으로 따뜻한 온기를 보내오고 있습니다. 희망의 손길입니다. 자연도 화답해줍니다. 새싹을 틔우고 꽃을 피웁니다. 머지않아 가을이 되면 다시 노란 잎으로, 알찬 열매로 보답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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