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지방분권? 지방붕괴!

세수 결손 여파 지방교부세 대폭 삭감
지자체 재정난에 사업·시책 축소 초래

수도권 중심 투자·교통망 불균형 심화
2차 공공기관 이전 등 실행 못하고 표류
"지방분권·균형발전, 선언·계획에 그쳐"

조기 대선을 맞아 지금 상황을 만든 윤석열 정부 1060일을 되짚습니다. 내란은 무모한 권력자가 한순간 판단 착오로 저지른 실수가 아닙니다. 그런 판단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누적된 비합리와 부조리가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 120대 국정과제를 보면 분야별 국정 목표 6개 가운데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는 6번째 목표였다. '수도권 쏠림-지방소멸' 악순환을 끊고 지역 주도 균형발전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 권력의 수도권 일극 집중을 해소하겠다는 약속이었다.

하지만 윤 정부는 역대급 세수 결손으로 자치단체로 나눠주는 교부세를 줄였고, 이는 지자체 각종 사업과 행사·시책 축소로 이어졌다. '지방시대'를 선언하며 대통령 직속 위원회도 출범했지만, 구심점이 돼야 할 대통령이 임기 2년 10개월 만에 파면되면서 사실상 동력이 떨어지게 됐다. 수도권 일부 공공기관을 지역으로 옮기는 '2차 공공기관 이전'도 결국 실행되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6월 20일 경북 포항시 블루밸리국가산업단지 이차전지종합관리센터에서 열린 제9차 지방시대위원회 회의 및 기회발전특구 협약 체결식에서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포항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6월 20일 경북 포항시 블루밸리국가산업단지 이차전지종합관리센터에서 열린 제9차 지방시대위원회 회의 및 기회발전특구 협약 체결식에서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포항시

◇보통교부세 감소 충격 = 경남도와 18개 시군은 지난해 11월 자치단체 재정 운영에 필수적 재원인 보통교부세를 계획대로 받지 못해 비상이 걸렸다. 한 달 전 기획재정부가 뒤늦게 교부결정액 감소를 발표해서였다. 도와 18개 시군 보통교부세 2307억 원이 줄었다.

이 때문에 도와 시군은 부서마다 집행률이 낮은 사업을 찾아 사업 기간을 늦추는 등 줄어든 세입에 맞춰 세출을 조정하느라 진땀을 뺐다. 지자체 자체 사업이나 복지시책은 엄두를 내기 어려웠다. 아예 세수 결손 흐름과 보통교부세 결정액 감소를 예상하고 허리띠를 졸라맨 지자체도 있었다. 지자체 각종 사업 축소는 지역경제 침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2년 연속 국세 세수 추계를 정확히 하지 못하고 결손을 낸 탓에 이 같은 사태가 잇따라 발생했다. 2023년 사상 최대인 56조 4000억 원 규모에 이어 지난해 30조 8000억 원 규모 세수 결손이었다. 본예산 세입 전망과 실적 오차율도 2023년 -14.1%, 지난해 -8.4%로 역대 첫 번째와 두 번째로 큰 마이너스 오차율이었다. 이에 윤 정부는 2023년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18조 6000억 원 삭감, 지난해 지방교부세 6조 5000억 원 삭감으로 대처했다.

지자체 담당자들은 지난해 보통교부세 감액이 올해 본예산 편성은 물론 내년까지 영향을 끼쳐 자체 사업 재원 마련이 어려워졌다고 말한다. 아울러 정부 세수 추계에서 오차가 크지 않아야 지자체 재정 운용도 예측 가능성이 커진다고 입을 모았다.

'건전 재정'을 내세웠던 윤 정부가 오히려 재정 기반을 훼손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는 지난해 11월 말 성명에서 "윤 정부가 잇따른 세수 결손의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세수 부족으로 인한 세입경정 또는 국채발행을 외면하며 일방적인 지방교부세 삭감과 같은 위헌적 처방을 반복하고 있다"며 "이렇게 정부가 세수 결손 책임을 지방정부에 떠넘기면서 지방재정은 악화되고, 지역 복지와 공공 서비스 축소로 이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들은 "국회 동의를 거치지 않은 지방교부세 삭감은 헌법 및 국가재정법에 의해 부여된 국회의원 심의·표결권을 침해하고, 헌법 및 지방자치법에 의해 부여된 자치단체장 지방자치권, 자치재정권을 침해하는 것인 만큼 국회와 지방정부가 적극 문제를 제기하고 바로잡고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지방시대? 수도권 퍼주기 지속 = 윤석열 정부 지방정책을 총괄하는 지방시대위원회는 2023년 7월 출범했다. 그해 10월 말에는 '제1차 지방시대 종합계획(2023~2027)'을 확정해 발표했다. 2004년 국가균형발전 5개년 계획과 지방분권 5개년 종합실행계획이 처음 세워진 이후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처음으로 통합한 계획이었다.

5대 전략 중 첫 번째가 '자율성 키우는 과감한 지방분권'으로 자치 역량과 지방 재정력 강화 추진이었는데, 교부세 감소는 오히려 지자체 재정 기반을 흔드는 격이 됐다.

윤 대통령은 선거 때부터 임기 동안 '지방시대'를 잇따라 언급했다. 지난해 7월 충남도청에서 시도지사와 함께한 제7회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그는 "저출생 대응과 외국인 인력 문제는 중앙과 지방이 함께 온 힘을 다해 대응해야 하는 중차대한 사안"이라며 지방에 과감한 권한 이양과 재정 지원 추진을 주문했다.

그러나 이 같은 발언에도 '지방시대는 헛구호'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교통망 구축사업이나 국책사업을 수도권에 퍼준다"라는 쓴소리도 그중 하나였다.

일례로 윤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직접 주재한 민생토론회에서 134조 원을 들여 '수도권 30분 출퇴근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국토교통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는 그해 5월 수도권 남부, 6월 수도권 북부, 7월 수도권 동부, 9월 수도권 서부 교통편의 방안을 잇달아 발표했다.

또 같은 해 1월 정부는 용인·평택 등 경기 남부지역에 세계 최대 규모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대규모 협력지구)'를 조성한다고 밝혔다. 2047년까지 622조 원 민간 투자를 유치해 16개 시설(생산 13개·연구 3개)을 신설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당장 지역에서는 그해 4월 국회의원선거를 노린 '수도권 표심 잡기용'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해 7월 최상목 경제부총리 주재로 열린 제7차 부동산 관계장관회의에서도 △2029년까지 3기 신도시 등 중심 주택 23만 6000호 공급 △그린벨트 해제 등으로 수도권 신규 택지 2만 호 이상 추가 공급 △공공매입임대주택 13만 호 이상 가운데 5만 4000호 수도권 집중 공급 등 수도권에 편중된 대책이 쏟아졌다.

심지어 여당이었던 국민의힘은 경기 김포시 서울 편입과 같은 서울시 덩치 키우기에 발벗고 나선 모양새였다. 시장이 국민의힘 출신인 경기 김포시와 구리시는 여전히 서울 편입을 추진 중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혐의 형사재판 2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전 대통령이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혐의 형사재판 2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언만 있고 실천은 없었다 = 윤 대통령이 약속했던 2차 공공기관 지역 이전도 연기되고 말았다. 1차 이전 성과를 평가하는 등 용역 결과를 살핀다는 것이 이유였다. 앞으로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 간 유치 경쟁이 과열되며 정치권 셈법에 따라 결정이 미뤄지거나 아예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벌써 나온다.

한편으로는 지방시대 종합계획에 뿌리를 둔 교육발전특구·글로컬대학·기회발전특구 등 사업도 6월 대통령선거와 새 정부 출범 뒤 순항할지 미지수다.

안권욱 지방분권경남연대 공동대표는 "지난 정부는 선언적 의미인 계획들만 발표했고, 실제 실천에 옮긴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며 "뚜렷한 균형발전 수단 중 하나가 기회발전특구였는데, 계획은 나름대로 있었지만 가시화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안 대표는 "현재 수도권 쏠림은 중앙집권화에서 비롯한 것이어서 지방분권부터 중점을 둘 필요가 있었는데 너무 부가적인 것으로 다뤘고, 2차 공공기관 이전은 미루고 미루다 탄핵까지 가버렸다"면서 "자치행정 시스템 변화로는 한 일이 없고, 주민참여 쪽은 오히려 마이너스가 됐다. 종합부동산세 절반을 감면해주면서 부동산교부세가 줄어 이를 재원으로 삼았던 마을 만들기나 소규모 지역 개발사업 등은 축소돼버렸다"고 짚었다.

/이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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