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때부터 거대 야당 '반지성집단' 몰아
대화와 타협 없는 '정치 아닌 통치'로 일관
총선 참패 국민 경고에도 부정선거론 맹신
임기 처음부터 끝까지 여소야대 첫 대통령
조기 대선을 맞아 지금 상황을 만든 윤석열 정부 1060일을 되짚습니다. 내란은 무모한 권력자가 한순간 판단 착오로 저지른 실수가 아닙니다. 그런 판단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누적된 비합리와 부조리가 있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여소야대’ 정국에서 2022년 5월 10일 임기를 시작했다. 정치 경험이 없는 검사 출신 윤 전 대통으로서는 국정 철학을 정책으로 녹여내려면 야당 협조가 필수적이었다. 문재인 정부도 야당과 대화가 부족한 경직된 국정 운영을 지적받곤 했다. 이것이 정권 교체 이유 가운데 하나였기에 대화와 타협을 바탕에 둔 안정된 국정 운영에 대한 기대가 컸다. 윤 전 대통령은 이 같은 열망을 받아 안았을까.
◇시작부터 협치는 없었다 = 윤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반(反)지성주의’를 언급했다. 그 원인을 “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정치는 민주주의 위기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지성주의’를 설명하면서 ‘다수 힘’, ‘상대 억압’, ‘민주주의 위기’ 등을 언급했다. 임기 시작과 동시에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을 ‘반지성적 집단’으로 규정하고 들어갔다. ‘자유’는 무려 35회나 언급하면서 ‘국민 통합’, ‘협치’, ‘소통’ 같은 단어는 단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취임사는 다수 야당 겁박용 ‘대화와 타협 없는 일방적인 국정 운영’ 선포문과 다름없었다.
윤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정치에 소극적이고 통치에 적극적이었다. 정부 정책을 관철하려 낮은 자세로 야당과 대화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임기 초 이른바 ‘허니문 기간’에 으레 통과하기 마련인 ‘정부조직 개편’도 야당이 반대한다며 손을 놓은 게 대표적이다. 핵심인 여성가족부 폐지를 야권이 반대한다면 요구를 일부 반영한 기능 재편이라도 검토했어야 했다. 정부조직 개편을 제대로 매듭짓지 못해 언제 조직이 없어질지 몰라 붕 떠버린 부처가 여성가족부다. 이는 결국 희대의 ‘잼버리 참사’로 이어진다.
◇사회적 요구 묵살, 남용되는 거부권 =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독선은 정치 영역에서 머무르지 않았다. 안전운임제 연장을 요구하며 벌인 화물연대의 집단 운송 거부를 두고 대화로 갈등을 조정하기보다 폭력적인 ‘업무개시명령’으로 대응했다. 결사의 자유와 생존권을 짓밟는 방식에 노동자 반발은 거셌다. 건설노조는 ‘건설 조직폭력배 몰이’로 악마화했다. 쌀 수입을 늘리기보다 수급을 조절해 생존권을 보장해달라는 농민 요구도 묵살했다.
이 같은 사회 갈등을 정치가 나서서 조정하려는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양곡관리법’ 등에는 줄줄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대통령이 대화와 타협으로 갈등을 조정하기는커녕 국민 요구에 번번이 뭉개고 억압했다. 정부·여당을 향한 시선이 좋을 리 없었다.
반면 자신과 김건희 여사를 향한 각종 의혹에는 너무도 관대했다. △코바나컨텐츠 뇌물성 협찬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논문 표절 △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명품 가방 수수 △대통령실 이전 감사 부실 논란 △채해병 사건 수사 외압 △인천세관 마약 수사 무마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 로비 △삼부토건 주가 조작 △명태균 게이트 △인사 개입 등 온갖 범죄 의혹에 눈 감았다. 이들 의혹을 규명하려는 특별검사법에도 죄다 거부권을 행사했다. 윤석열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 쪽 불만은 점점 누적될 수밖에 없었다.
◇무너진 당내 민주주의, 이어진 총선 심판 = ‘제왕적 통치자’로서 윤 전 대통령 모습은 정당 민주주의 근본마저 흔들었다. 임기 2년 11개월 새 자신을 비판하고 마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윤 씨 의중에 따라 갈아치운 여당 대표만 6명(비상대책위원장 포함)이다. 당 대표 선거 과정에서 대통령이 지지하지 않는 후보를 향해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는가 하면, 홍위병을 자처한 초선 의원들이 선거 도전이 거론되는 인사를 비판하는 연판장을 돌려 출마를 저지시키기도 했다.
사라진 협치, 시민사회 요구 외면, 지나친 권한 행사, 당내 민주주의 위협 등이 쌓이면서 2024년 총선이 다가왔다. 유권자는 싸늘한 경고를 날렸다.
22대 총선 결과 더불어민주당은 비례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과 함께 175석을 얻었다. 국민의힘과 비례 위성정당 국민의미래는 108석에 그쳤다. ‘3년은 너무 길다’며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을 구호로 내걸었던 조국혁신당이 12석을 얻으며 3당 자리를 차지했다. 보수 성향이지만 국민의힘과 확실히 선을 그은 개혁신당이 3석, 진보당 1석, 새로운미래 1석을 얻었다. 국민의힘을 제외한 범야권이 192석으로 개헌 가능 직전 수준까지 세력을 확보한다. 윤석열 정부 처지에서 변명할 것도 없는 완벽한 참패였다.
총선 결과는 대화와 타협, 소통에 기반을 두고 국정 운영 방향을 전환해 주권자 뜻을 따르라는 명령이었다. 그러나 이미 윤 전 대통령은 살벌한 경고를 ‘귀찮은 아우성’ 정도로 취급했다. 준엄한 심판은 윤 전 대통령은 ‘부정 선거’로 만들어진 ‘야당 독재’로 인식한다. 이는 반헌법적·불법적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12.3 내란으로 이어졌다.
◇임기 중 여소야대 벗어나지 못한 유일한 대통령 = 윤 전 대통령은 불법 계엄이 무산된 지난해 12월 12일 대국민 담화에서 “공직자 탄핵과 위헌적 특검법안으로 정치 선동 공세를 가하며 국정을 마비시키려 한다”며 억울해했다. 하지만, 그 원인을 제공한 건 정치가 아닌 통치를 한 자신과 정부, 이를 용인한 여당이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헌법재판소는 탄핵 심판 선고 요지에서 “피청구인(대통령)과 국회 사이에 발생한 대립은 일방의 책임에 속한다고 보기 어렵고, 이는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해소되어야 할 정치의 문제”라면서 “피청구인은 국민의 대표인 국회를 협치의 대상으로 존중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피청구인은 취임한 때로부터 약 2년 후에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정을 주도하도록 국민을 설득할 기회가 있었다”고 꼬집었다.
윤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헌정사에 임기 시작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여소야대’ 정국을 벗어나지 못한 유일한 대통령으로 남았다. 윤 전 대통령처럼 여소야대로 임기를 시작한 대통령은 많다.
노태우 씨는 ‘3당 합당’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은 ‘DJP연합’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탄핵의 강을 건너 ‘총선 승리’로 정국을 반전시켰다. 옳고 그름을 떠나 각자 정치적 노력과 결단으로 한계를 돌파했다.
정치가 실종된 공간을 차지한 ‘독재적 통치’, 이를 용인할 때 감당할 값비싼 대가를 대한민국은 아직 치르는 중이다.
/김두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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