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원전강국? 기후 후진국!

윤 정부 10·11차 전기본서 원전 신설 강행해 시대 역행
OECD 국가 재생에너지 비중 꼴찌, 원전 전력은 상위권
원전 수출 목표달성치 저조, 대왕고래 프로젝트 실패
'정의로운 전환' 뒷짐에 고용 불안..."차기 정부 과제"

조기 대선을 맞아 지금 상황을 만든 윤석열 정부 1060일을 되짚습니다. 내란은 무모한 권력자가 한순간 판단 착오로 저지른 실수가 아닙니다. 그런 판단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누적된 비합리와 부조리가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에너지 정책 기조로 ‘원전 생태계 복원’을 택했다. 윤 정부가 ‘친원전’을 택하면서 재생에너지 분야는 후퇴하게 됐다. 전 정부를 비롯한 전 세계가 ‘탈원전’에 집중한 것과 정반대의 길을 택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1일 창원국가산업단지 내 원전 부품업체인 '진영TBX'를 방문해 공장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원전 신설 예고하며 시대 역행 = 산업통상자원부는 2년 단위로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을 세운다. 전기본은 향후 15년간의 전력 수급 방향을 담은 법정 계획이며, 연도별로 우리나라의 전력 발생원 비중 목표를 설정하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문재인 정부는 9차 전기본을 통해 2030년 신재생 비중 목표치를 30.2%로 잡았다. 반면, 윤 정부는 2023년 10차 전기본 발표를 통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1.6%로 전 정부 대비 8.6%포인트(p) 낮췄다.

문 정부는 2020년 9차 전기본에서 노후 원전 수명을 연장하지 않고, 신규 원전도 추가로 건설하지 않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문 정부의 9차 전기본은 2030년 기준 원전 발전 비중이 23.9%였는데, 윤 정부는 32.4%로 대폭 확대했다. 32.4%란 수치는 2012년 이명박 정부 시기의 원전 발전 비중 수준이다.

올해 2월 확정된 11차 전기본에는 결국 윤 정부의 원전 신설안이 담겼다. 여기에는 대형원전 2기와 SMR(소형 모듈 원자로) 1기 건설 내용이 담겨있다. 전기본에 원전 신설 계획이 담긴 것은 2015년 박근혜 정부가 7차 전기본에서 신한울 3·4호기 신설을 계획한 이후 10년 만이다.

2024년 우리나라 에너지원별 발전량을 보면 원자력(31.7%), 가스(28.1%), 석탄(28.1%), 신재생에너지·양수(11.3%), 기타(0.6%), 석유(0.2%) 순이다. 2024년 재생에너지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꼴찌를 다툰다. OECD 회원국 평균 재생에너지 비중은 35.84%다. 반면 2024년 원전 설비용량은 26.1GW로 세계 5위다.

윤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실천도 목표 달성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종권 경남탈핵시민행동 대표는 “2020년 재생에너지 보급량은 연간 4.5GW(기가와트)였는데 윤 정부 들어 재생에너지 보급량은 3GW로 감소했다”며 “윤 정부는 2038년까지 재생에너지 125.9GW를 보급한다고 했는데, 이를 달성하려면 연간 보급량을 3GW의 3배 수준으로 늘려야 겨우 달성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왼쪽 첫째)과 체코 페트르 피알라 총리(오른쪽 첫째), 참석자들이 두산에너빌리티의 자회사 두산스코다파워(체코 플젠)에서 진행된 ‘한국·체코 원전 전주기 협력 협약식’에 참여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
윤석열 대통령(왼쪽 첫째)과 체코 페트르 피알라 총리(오른쪽 첫째), 참석자들이 두산에너빌리티의 자회사 두산스코다파워(체코 플젠)에서 진행된 ‘한국·체코 원전 전주기 협력 협약식’에 참여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

◇‘기후 악당’ 자처하고 얻은 결과는 = 일각에서는 윤 정부가 기후 악당을 자처한 대신 ‘원전 수출’ 결과를 이루지 않았냐는 반박도 있다.

윤 정부는 지난해 7월, 두산에너빌리티 등으로 구성된 ‘팀 코리아’가 2009년 UAE 바라카 원전 수주 이후 15년 만에 24조 원 규모 체코 원전을 수주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내 원전 기술은 미국 원전업체 웨스팅하우스 소유로, 단독 수출이 아닌 미국의 수출 통제를 받는다. 2009년 바라카 원전 수출 당시 웨스팅하우스에 주요 기자재를 구매하면서 지식재산권 분쟁을 해결한 것처럼, 이번 체코 원전 수주도 사용료 지급이나 일감 나누기 방식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간단히 말해 수주액에 비해 가져갈 이익은 적을 것이라는 평가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김정호(더불어민주당·김해 을) 의원은 “기기 제작, 시공은 우리나라가 하고 핵심 이익은 미국에 뺏길 수밖에 없는 구조인지 살펴봐야 한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체코 원전 수출의 실제 수익률은 수주액 7% 수준일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윤 정부는 2030년까지 원전 10기를 수출하겠다고 공언했지만, 3년 동안 2곳(체코, 이집트)과 수출을 추진한 게 전부다. 전 세계가 재생에너지 확대에 치중하는 가운데, 기후 악당을 자처하고 원전 수출에 집중한 결과치고는 초라한 실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윤 정부의 허황된 ‘대왕고래 프로젝트’도 실패로 결론났다. 이 프로젝트는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사업으로, ‘기후위기 대응에 역행하는 계획’이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2024년 윤 전 대통령은 직접 “막대한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다”는 취지로 발표했지만, 올 2월 산업부가 ‘경제성 없다’고 밝혀 사업은 동력을 잃었다.

변기수 창원기후행동 대표는 “윤 정부의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결국 기후위기를 앞당기는 에너지원인 화석 연료를 발굴하는 것”이라며 “원전 수출, 대왕고래 프로젝트 등 기후위기는 안중에도 없었고 경제성과 치적 쌓기에만 집중한 정권”이라고 평가했다.

탈핵경남시민행동이 23일 오전 경남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윤석열 정부의 원전 활성화 정책을 규탄하고 있다. /김다솜 기자출처 : 경남도민일보(https://www.idomin.com)
탈핵경남시민행동이 경남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윤석열 정부의 원전 활성화 정책을 규탄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DB

◇정의로운 전환 외면…차기 정부 ‘숙제’ = 윤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그야말로 ‘원전 일색’이었다. 윤 정부 때 시행된 ‘탄소중립기본법’에 따르면 정부는 석탄발전 노동자 등에 ‘정의로운 전환(탄소중립 정책 이행 중 산업과 노동자 피해를 사회가 분담해 최소화하는 정책 방향)’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경남은 하동화력 8호기, 삼천포화력 4호기, 고성하이 2호기, 이렇게 14호기의 석탄화력발전소가 폐쇄를 앞두고 있다. 당장 2026년 하동석탄화력발전소 1호기가 폐쇄하면 석탄발전 노동자들이 실직함에도 어떠한 대책도 마련하지 못했다.

김영구 발전HPS지부 하동지회장은 “정부·지자체에 질의해도 아무런 대책을 듣지 못했다”며 “하동화력이 군에서 차지하는 세수는 17% 수준이라 단순 노동자 고용 불안을 넘어 지역 소멸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고 우려했다.

윤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역행했던 만큼, 기후·환경 활동가와 전문가들은 차기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변 대표는 “기후위기 문제를 여태 정부 부처 별로 처리해 일관성이 다소 부족했다”며 “재생에너지청 등을 신설해 국가 차원의 주도성과 민간 참여를 바탕으로 신속히 재생에너지를 확충하는 게 관건”이라고 진단했다.

남어진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 위원장은 “원전처럼 발전소가 한 곳에 몰리는 에너지 공급 환경은 결국 송전망 건설로 사회적 비용도 증가시킨다”며 “탈원전은 당연한 시대적 흐름이고, 중요한 것은 에너지 수요·공급지가 일치해 송전망이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대운 국립창원대 스마트그린공학부 환경에너지공학전공 교수는 에너지 비중을 극단적으로 줄이거나 늘리는 정책 대신, ‘급진적인 거북이(도전적 과제를 제시하되 실천은 조심스럽게)’ 형태의 건강한 에너지 정책 방향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정 교수는 “차기 정권에서는 기존 원전 생태계를 말살하기보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축소분을 복구·확대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며 “우리나라 전력 계통은 한 구역에 쏠려 있기에 향후 지역마다 에너지를 자급자족할 수 있는 기반 조성도 권장된다”고 말했다. 이어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원전·태양광·풍력 등 에너지원 다각화가 필요하고, 민간 태양광 확대·기업 RE100 지원 등 세부 계획도 중요하다”며 “단순히 원전을 ‘흑’, 신·재생에너지를 ‘백’으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국내외 정세에 맞춰 유연한 정책 방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지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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