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가장 높았던 민주주의 지수 '역대 최저'로 후퇴
조기 대선 시발점은 내란, 원인은 누적된 부조리·비합리
파면 선고로 긴박했던 한 장(章)이 막을 내렸습니다. 끝은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집니다. 역동적인 우리 사회는 무서운 속도로 새로운 장을 써내려갈 기세입니다. 당장 조기 대선 일정이 나왔습니다. 유력 정치인들은 재빠르게 움직입니다. 개헌 제안도 나오고 내란 우선 척결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광장에서 함께 파면을 외치던 시민도 이제 각자 시간을 맞이합니다. 최악을 막겠다는 구호는 단순하지만 저마다 바라는 최선은 다양합니다. 이 다양성은 소통·토론·숙의로 표출될 것입니다. 하지만, 불특정 다수를 품어야 할 이 과정이 늘 합리적이고 세련될 수 없습니다. 각자 최선이 정체되면서 움트는 불만은 갈등처럼 드러날 것입니다. 12.3 내란 사태를 부른 세력이 집요하게 노리고 파고들 틈입니다.
조기 대선을 맞아 지금 상황을 만든 윤석열 정부 1060일을 되짚습니다. 내란은 무모한 권력자가 한순간 판단 착오로 저지른 실수가 아닙니다. 그런 판단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누적된 비합리와 부조리가 있습니다. 이를 제대로 짚지 않으면 내란 세력이 광장을 대변하겠다고 나서는 파렴치를 맞이할지도 모릅니다. 조기 대선에 이른 과정을 곱씹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스웨덴 예테보리대학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는 지난달 <민주주의 보고서 2025>를 냈다. 국가별 민주주의 지수를 매긴 보고서에서 대한민국은 179개 국가 중 41위였다. 순위보다 눈여겨볼 대목은 단계다. △자유민주주의 △선거 민주주의 △선거 독재체제 △폐쇄된 독재체제 등 4단계 분류에서 한국은 '선거 민주주의'로 분류됐다. 지난해 '자유민주주의'에서 한 단계 낮은 등급이다.
선거 민주주의는 △다당제 선거 △참정권·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등이 보장되는 수준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여기에 더해 △행정부에 대한 사법·입법적 통제 △시민 자유 보호 △평등한 법 적용 등도 보장돼야 한다. 해당 보고서는 지난해부터 한국을 '독재화하는 나라'로 지목하기도 했다.
◇수치로 나타나는 한국 민주주의 =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산하 EIU(The Economist Intelligence Unit)는 2006년부터 민주주의 지수를 발표했다. △선거 과정과 다원주의 △정부가 얼마나 잘 작동하는지 △정치적 참여 △정치적 문화 △시민 자유·권리 등 5개 지표에 따라 10점 척도로 점수를 매긴다. 이를 합산해 △완전한 민주주의 △결함 있는 민주주의 △혼합형 체제 △권위주의 체제 등 4단계로 분류한다.
한국은 2006년(참여정부) '결함 있는 민주주의'(7.88·31위)로 시작해 꾸준히 지수와 순위를 높였다. 이명박 정부 들어 첫 평가인 2008년 '완전한 민주주의'(8.01·28위)로 시작해 2012년 8.13점(20위)까지 끌어올린다.
박근혜 정부 첫 평가인 2013년 '완전한 민주주의'(8.06·21위)로 시작했으나 2015년 '결함 있는 민주주의'(7.97·22위)로 하락했다. 결국 2016년 7.92점(24위)까지 떨어진다.
문재인 정부 들어 첫 평가인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 동안 '결함 있는 민주주의' 단계는 계속 이어진다. 이 기간 평점은 8점을 유지했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 '완전한 민주주의'(8.01·23위)를 성취한다. 이듬해 2021년 기록한 8.16점(16위)은 한국이 기록한 가장 높은 지수와 순위다.
윤석열 정부 들어 2023년까지 이어지던 '완전한 민주주의'는 2024년 '결함 있는 민주주의'로 떨어진다. 지수(7.75)와 순위(32위) 모두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3년 차 윤석열 정부가 일으킨 반전이다.
지표별로 보면 과제는 단순하다. 5개 지표 가운데 '선거 과정과 다원성' 항목은 조사 기간 내내 9점대를 기록하고 있다. 최저 9.17점에서 최고 9.58점을 기록했다. '정치 참여도'는 조사 기간 내내 7.22점을 기록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급격하게 점수가 떨어진 지표는 '정치 문화'이다. 윤석열 정부 이전에는 7.5점을 균일하게 기록했던 지표가 윤석열 정부 시작과 함께 6.25점으로 떨어진다. 윤석열 정부 마지막 평가가 될 2024년 '정치 문화' 지수는 5.63점이다. 조사 기간 내내 전 항목에 걸쳐 가장 낮은 수치다.
◇현실로 나타나는 한국 민주주의 = 현재 한국 민주주의 수준은 지표보다 현실에서 쉽게 확인됐다.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을 선고하면서 '민주주의와 부조화'를 언급했다.
문형배 헌법재판관은 "피청구인은 국회를 배제의 대상으로 삼았는데, 이는 민주정치의 전제를 허무는 것으로 민주주의와 조화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12.3 내란 사태는 외국 기관이 제시한 복잡한 수치를 인용하지 않아도 한국 민주주의 수준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불법 계엄으로 법과 체계를 짓밟은 윤 전 대통령은 탄핵 소추안 가결로 권한이 정지됐지만 전혀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체포 영장 집행은 관저 앞에서 멈췄다. 윤 전 대통령은 구속 중에도 남다른 대접을 받으며 헌법재판소를 오갔다. 이 와중에 권한대행은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을 한없이 미뤘다. 헌법재판소가 임명을 미루는 것은 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막무가내로 책임을 외면했다.
법원은 한 발 더 나아가 윤 전 대통령 구속 취소 결정을 내렸다. 한 번도 적용하지 않은 셈법은 윤 전 대통령에게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적용된다. 검찰은 다소곳하게 이 결정을 받아들이며 맞장구쳤다. 국민의힘은 법 집행이 멈추고 가로막힐 때 반기고 환호했다.
광장에 선 시민은 민주주의 방식과 체계가 작동하지 않는 현실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체계가 이처럼 대놓고 멸시받은 경험이 없던 사회는 닥친 상황에 대한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 탄핵 선고 직전까지 광장은 구호가 커진 만큼 긴장도 커졌다.
◇조기 대선 원인은 윤석열 그리고… = 탄핵 정국은 이제 조기 대선 정국으로 이어진다. 탄핵 정국을 주도했던 야당은 대선 승리까지 분위기를 이어갈 기세다. 열세에 몰렸던 여당은 돌파구가 마땅찮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당장 당 안팎에서 후보를 낼 자격이 없다는 비판과 맞닥뜨리고 있다.
김웅 전 국민의힘 의원은 6일 누리소통망(페이스북)에서 "국민의힘은 이번 대통령 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전 의원은 "선거가 발생하게 된 이유는 바로 우리 당 공직자인 윤석열 전 대통령 잘못에 의한 것으로 마땅히 국민에게 사죄하고 반성하는 의미로 후보를 내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권에서 자격을 따지는 비판 어조는 더욱 강경하다. 지금 여당 처지에서 시급한 과제는 대선 정국에서 야당과 같은 출발선에 서는 것이다. 어느 시점에 들면 여당은 과감한 인상 세탁을 시도할 수밖에 없다.
조기 대선 원인 제공자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직접적인 행위는 불법 계엄 선포로 시작한 내란이다. 하지만, 되짚어야 할 점은 내란까지 이어진 과정이다. 그 출발점은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내세웠던 내란 명분이다. 정부가 일을 못한 원인이 야당 독재였을까? 부정선거가 문제일까, 부정선거에 휘둘린 권력자가 문제일까? 공정을 표방한 정부는 공정했을까? 역대 최고 수준 동맹은 우리를 어떻게 볼까? 지난 3년 각종 경제 수치는 어떤 현실을 드러낼까? 각 정당이 대선 후보를 확정하기 전까지 <경남도민일보>가 곱씹을 질문들이다. 내란은 하루아침에 정리되지 않고, 새로운 세계는 거저 오지 않는다.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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