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 하청 노동자와 해넘이부터 해맞이까지
슬프고 힘들어도...연대와 희망을 말하는 시민
"약한 자에게 연대하는 2025년 한 해 되기를"

 2024년 12월 31일과 2025년 1월 1일, 전국 각지에서 조선소 하청 노동자에게 연대하고 싶은 시민들이 거제를 찾았다. 이들은 1박 2일 동안 연대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김다솜 기자 

2024년의 마지막 날, 거제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에게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연대버스를 타고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연대자들입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조선하청지회는 한화오션과의 임금단체교섭(임단협)을 타결짓지 못하고, 거리 위에서 투쟁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1일 기준 노숙 농성 50일 차, 단식 43일 차입니다. 연대자들은 조선소 하청 노동자가 겪는 차가운 현실이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말합니다. 서울 남태령에 이어 거제 조선소까지 찾은 이들…. 연대가 2024년을 넘어 2025년까지 계속된다는 사실을 보여줬습니다.

2024년의 마지막 날 

2024년의 마지막 날, 연대가 필요한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과 이들의 손을 잡아 주고 싶은 사람 300여 명이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서문다리 위에서 만났다. 형형색색의 응원봉 불빛이 마지막 날이 저문 하늘 위를 채웠다.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주자. 해 떨어져 어두운 길을 서로 일으켜 주고.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31일 오후 10시께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서문다리 위에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노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 울려 퍼졌다. 연대자들은 좌우로 몸을 흔들면서 함께 노래를 불렀다. 전국금속노동조합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등이 개최한 투쟁 문화제에 참가한 이들이다.

한 연대자가 2024년 마지막 날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서문다리에서 열린 투쟁 문화제에서 응원봉을 흔들고 있다. /김다솜 기자 
한 연대자가 2024년 마지막 날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서문다리에서 열린 투쟁 문화제에서 응원봉을 흔들고 있다. /김다솜 기자 

연대자들은 추위로 빨갛게 물든 얼굴을 감싸면서도 자리에 남아 서로를 응원하면서 마지막 날을 보냈다. 따뜻한 어묵 국물과 손난로를 나누면서 추위를 버텼다. 조선소 하청 노동자의 곁을 지키기 위해서다.

“조선하청지회의 투쟁은 우리나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는 투쟁입니다. 우리의 투쟁을, 우리의 투쟁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새해에는 반드시 조선하청지회의 승리를 전하겠습니다.”

강인석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은 “(조선소 하청 노동자에게) 연대의 배려를 더 많이 보내주면 좋겠습니다”라며 “2025년에는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함께 새로운 대한민국, 노동 중심의 대한민국을 함께 만들어갔으면 합니다”라고 밝혔다.

조선하청지회의 농성은 해를 넘겨서도 계속된다. 조선하청지회는 한화오션 하청업체와 교섭에 나섰지만, 지난 7월에 결렬됐다. 이달부터 교섭이 재개됐다가 지난 28일 중단됐기 때문이다. 조선하청지회는 농성을 이어가면서 노동조합법 2·3조 개정 등으로 원청과 교섭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강인석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12월 31일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서문다리 위에서 열린 투쟁문화제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다솜 기자 
강인석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12월 31일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서문다리 위에서 열린 투쟁문화제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다솜 기자 

청년들은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기 위해 서울에서 연대 버스를 꾸려 거제를 찾았다. 연대 버스 참여자 모집 3일 만에 자리가 다 찼다고 한다. 창원에서도 연대 버스 안에 사람들을 가득 싣고 거제에 도착했다.

투쟁 문화제 참가자들은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을 염원했다. 기존 노동조합법 2·3조는 사용자 범위를 협소하게 해석하고 있어 원청에 책임을 묻기가 어렵다. 노동자 쟁의 행위에도 제한을 두고 있다. 노동조합법 2·3조가 개정된다면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 개선도 크게 진전될 수 있다.

김재하 노조법2·3조개정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은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이 2022년 51일간 파업 투쟁을 하면서 노조법 2·3조 개정이 전면화되고, 국민 70% 이상이 개정에 찬성하는 여론이 만들어졌습니다”라며 “조선하청지회가 가장 헌신적으로 투쟁한 일이기도 합니다. 내년에는 2·3조가 반드시 통과될 것입니다”라고 강조했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마침내 하나 됨을 위하여~’ 연대자들은 문화제가 끝나고 나서도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가사를 흥얼거렸다. 이들은 끝까지 ‘희망’을 말하면서 2024년의 마지막 날을 보냈다.

 

2025년의 첫날

2025년의 첫날에도 조선소 하청 노동자를 향한 연대가 이어졌다. 이번에는 형형색색의 응원봉 불빛이 아니라 붉은 해가 하늘을 채웠다.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과 연대자들은 거제 옥포조각공원에서 새해를 맞았다. 망산을 괴고 해가 고개를 들자, 이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연대자들은 해를 보면서 더 나은 세상을 그렸다.

연대자들은 지난해를 아프게 기억했다. 민간인의 공천 장사 의혹으로 나라가 시끄러웠다. 대통령은 불법 계엄령을 내렸다.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로 생떼 같은 숨이 꺼졌다. 최지환(25) 씨는 “세상에 진짜 슬프고 억울한 일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1일 거제 옥포조각공원에서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과 시민듣이 일출을 보고 있다. /김다솜 기자 
1일 거제 옥포조각공원에서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과 시민듣이 일출을 보고 있다. /김다솜 기자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을 선포할 때) 희망은 힘이 세다고 말했었는데, 그 말이 기억에 남았어요. 이렇게 같이 해돋이 보는 것도 희망을 찾기 위함이잖아요. 새해에는 희망이 더 힘이 세지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어요.”

조선하청지회 등은 연대자들에게 떡국을 대접했다. 종이그릇 위에 잘 익은 떡과 만두가 얹어졌다. 연대자들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그릇을 들고서 마주 앉았다. 봉준희(25)·김다빈(25)·한승이(29) 씨는 떡국을 숟가락으로 퍼서 입 안에 넣었다.

“남태령에서 밤을 새웠어요. 그전에는 연대가 무엇인지 몰랐거든요. 연대는 이론이나 책으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 몸으로 배우는 것 같아요. 이번에도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에게 후원했는데 마음이 가더라고요. 그래서 거제에 왔죠.”

1일 거제 옥포조각공원에서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김다솜 기자 
1일 거제 옥포조각공원에서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김다솜 기자 

한 씨는 서울 남태령에 이어 거제 조선소를 찾아 ‘연대’를 배워갔다고 말했다. 봉 씨도 남태령에 있었다. 그는 “노동자, 농민의 문제가 우리 사회의 문제이자 제 문제이기도 합니다. 모두 다 연결돼 있어요”라며 “눈앞에서 사람이 위협받는데 가만히 볼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김 씨는 “연대의 폭이 점점 넓어지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라며 “우리 사회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올라오는 것 같아요. 조선소 하청 노동자나 농민 등 약한 자에게 연대하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강인석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은 연대버스를 타고 온 학생들과 나란히 서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하나, 둘, 셋” 외침 끝에 “투쟁”이 따라붙었다. 강 지회장은 단식 43일 차이지만, 이날만큼은 속이 든든하다.

“딸이랑 친구들도 같이 왔어요. 어젯밤부터 ‘아빠, 힘내세요’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강 지회장은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이 사회적으로 소외당하고, 핍박 받는다는 사실이 많이 알려진 것 같습니다. 탄핵 정국이 이어지면서 공감대가 넓어졌어요”라며 “대한민국 사회에 아프고 힘든 사람이 너무 많은데, 결국 정부와 권력의 문제가 해결된다면 더 좋아지지 않을까 싶어요. 희망을 가지고 함께살면 좋겠습니다”고 말했다.

이날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과 연대자들은 둥글게 원을 만들고, 그 안에서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노동자들은 누구보다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이들은 서로 얼싸안으면서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학수 조선하청지회 조직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입니다. 투쟁하는 사람들은 계속 싸우고 있으니 특별히 변한 건 없지만, 이렇게 다양한 분들이 연대해주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에요. (연대자들과 1박 2일 동안) 이야기도 나누고, 공감대도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조선소 하청 노동자와 그에게 연대하기 위해 거제를 찾아 온 시민들이 1일 거제 옥포조각공원에서 해맞이를 보고있다. /김다솜 기자
조선소 하청 노동자와 그에게 연대하기 위해 거제를 찾아 온 시민들이 1일 거제 옥포조각공원에서 해맞이를 보고있다. /김다솜 기자

 

/김다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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