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통고 조선하청지회 투쟁 문화제
성중립숙소 설치돼 20여 명 이용
"우리 존재 지워지지 않았다" 환호
"성소수자 인정·존중 시도 뜻깊어"
거제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이 전국에서 모인 연대자들을 위해 성중립숙소를 만들었던 사실이 알려져 화제다. 생물학적 성별에 얽매이지 않는 공간에서 하룻밤을 묶을 수 있게 된 이들은 “우리 존재가 지워지지 않았다”며 환호했다.
전국금속노조 경남지부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는 지난달 31일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서문다리 위에서 투쟁 문화제를 열었다. 당시 전국에서 모인 연대자들만 300여 명에 달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새해를 함께 맞이할 예정이었다.
이 많은 인원을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재울 수는 없었다. 조선하청지회는 한화오션 인근 노동조합 사무실 등을 수소문해 상대적으로 공간이 넓은 웰리브지회 사무실을 남성 숙소로 정했다. 여성 숙소는 인근 사무실 두 곳으로 결정했다. 숙소 위치를 공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참가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김춘택 조선하청지회 사무장은 “한 동지가 여성 숙소가 두 개이니 하나를 성중립숙소로 해달라고 요청하더라”며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라 잠시 고민했지만 그렇게 해보자고 결정했다”고 전했다.
일반적으로 성중립숙소는 남성과 여성으로만 정의되는 이분법적 성 정체성 분류에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을 위해 마련되는 공간이다. 이번 성중립숙소 설치는 고태은 민주 노조를 깨우는 소리 호각 활동가 제안에서 시작됐다.
고태은 활동가는 “집회 참가자 다수가 무지개 깃발을 들거나 트랜스젠더임을 나타내는 표식을 달고 있었다”며 “아무래도 성별 이분법적인 숙소에서는 모두가 편히 쉴 수 없다 생각했고 곧바로 성중립숙소 설치를 제안했다”고 말했다.
최종적으로 20여 명이 성중립숙소에 모였다. 이들은 서로를 반갑게 맞아줬다.
자신을 젠더리스(성 정체성 관념을 인지하지 못 하는 이들)로 밝힌 집회 참가자는 “성중립숙소에서 묵으면서 해방감을 느꼈다”며 “여성도 남성도 내 이름이 아니라는 사실을, 내가 나라는 사실을 이렇게 자연스럽고 마음 편하게 확인할 수 있어 기뻤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자신을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지정 성별로 규정되는 것을 거부하는 이들)라 밝히며 “그동안 수없이 집회를 다니고 연대해왔지만 늘 마음 한편이 괴롭고 힘들었다”며 “내 지정 성별이 여성이기에 여성 숙소에 가야 했고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거통고 조선하청지회 동지들이 마련해준 성중립 숙소 덕분에 늘 주변부로 밀려났던 나의 존재도 환대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투쟁도 중요하지만 함께 투쟁하는 이 공간에서 아무도 배제되지 않게 노력하는 것도 해방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남성 중심 사업장인 조선소 투쟁 현장에 설치된 성중립숙소는 그 자체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고태은 활동가는 “사회가 나를 인정하지 않고 존재를 부정한다는 것은 매우 큰 폭력이고 실재적 위협”이라며 “거통고 동지들의 고민은 단순히 성중립숙소 마련이 아니라 성소수자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려는 시도였기에 더 뜻깊었다”고 말했다.
이김춘택 사무장은 “집회를 주최한 입장에서 성중립숙소 필요에는 공감했지만 정말 그 공간이 안전한지, 편안한지가 걱정됐었다”며 “다양한 존재에 대한 존중은 특별하다기보다는 이 시대에 당연히 갖추어야 할 감수성”이라고 밝혔다.
/박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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