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축구를 보게 됐어요? 이 팀에 빠지게 된 계기가 있어요? 어떻게 하면 이렇게까지 열정적일 수 있나요?”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아서일까. 인터뷰 내내 모양만 다른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던졌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어떤 존재를 사랑하는데 구체적인 이유가 있어야 할까. 어쩌면 그는 인터뷰가 진행되는 1시간 30분 내내 자신이 가진 사랑의 근거를 낱낱이 밝히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럴싸한 이유에만 골몰한 기자가 못 알아차렸을 뿐이다.
자신이 응원하는 축구팀 경기를 보려고 왕복 14시간을 달려가는 마음이나 한 달 용돈이 10만 원인 중학생이 자기 용돈을 탈탈 털어 팀 머플러를 제작하는 일은 모두 사랑이다. 무엇보다 숨길 수 없는 표정이 있다. 미세하게 커지는 눈동자, 평소보다 빨라지는 말, 인상을 쓰다가도 중간중간 보이는 옅은 미소까지도 사랑이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의 모든 말과 행동에서 사랑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나는 한참 뒤에나 깨달았다. 이럴 때마다 사람에 대해 무뎌졌음을 느낀다. 중첩되는 사건, 사고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니 생기는 부작용이다. 물론 그럼에도 정진하는 훌륭한 기자들이 더 많다.
이 같은 고민을 안고 영화 <세계의 주인>을 보게 됐다. 영화는 어떤 사건보다 한 개인의 평범한 일상을 따라간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품은 편견이 얼마나 얄팍한 것인지도 아프게 전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얼얼하게 다가온다.
그 여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영화를 만든 윤가은 감독 인터뷰까지 찾아보게 됐다. 그는 자신을 사건보다 마음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그 말이 묘한 위로가 됐다. 기자 일이라는 것도 사건보다는 마음에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기자들은 엎질러진 사건 앞에서 사실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만을 신성시하며 때로는 답을 정해 놓고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여러 장치를 만들어 이 오류를 바로잡으려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다. 이미 스스로 답을 내렸으니 그에 부합하는 사실만 눈에 들어올 뿐이다.
그렇게 조각된 사실들은 어쩌면 거대한 허구일 지도 모른다. 우리가 아는 사실은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며, 마지막까지 사실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끝없는 질문과 의심이 닿아야 할 곳은 마음이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어쩌다 그런 상황이 됐을까?’, ‘그가 보인 웃음과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모든 사건에 대한 진실은 사실이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을지 모른다.
/박신 문화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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