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거제서 조선 하청 노동자 투쟁 문화제 개최
서울과 천안 등 전국 각지서 연대 발걸음 이어져
노조법 2·3조 개정 희망하면서 한 해 마무리
2024년의 마지막 날, 연대가 필요한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과 이들의 손을 잡아 주고 싶은 사람들이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서문다리 위에서 만났다. 형형색색의 응원봉 불빛이 마지막 날이 저문 하늘 위를 채웠다.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주자. 해 떨어져 어두운 길을 서로 일으켜 주고.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31일 오후 10시께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서문다리 위에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노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좌우로 몸을 흔들면서 함께 노래를 불렀다. 전국금속노동조합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등이 개최한 투쟁 문화제에 참가한 이들이다.
투쟁 문화제 참가자들은 추위로 빨갛게 물든 얼굴을 감싸면서도 자리에 남아 서로를 응원하면서 마지막 날을 보냈다. 따뜻한 어묵 국물과 손난로를 나누면서 추위를 버텼다. 조선소 하청 노동자의 곁을 지키기 위해서다.
조선하청지회는 한화오션과의 임금단체교섭(임단협)을 타결짓지 못하고, 거리 위에서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이날로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은 노숙 농성 49일차, 단식 42일 차를 맞았다.
“조선하청지회의 투쟁은 우리나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는 투쟁입니다. 우리의 투쟁을, 우리의 투쟁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새해에는 반드시 조선하청지회의 승리를 전하겠습니다.”
강인석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은 “(조선소 하청 노동자에게) 연대의 배려를 더 많이 보내주면 좋겠다”라며 “2025년에는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함께 새로운 대한민국, 노동 중심의 대한민국을 함께 만들어갔으면 한다”고 밝혔다.
조선하청노동자들 농성은 해를 넘겨서도 계속된다. 조선하청지회는 한화오션 하청업체와 교섭에 나섰지만, 지난 7월에 결렬됐다. 이달부터 교섭이 재개됐다가 지난 28일 중단됐기 때문이다. 조선하청지회는 농성을 이어가면서 노동조합법 2·3조 개정 등으로 원청과 교섭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청년들은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기 위해 서울에서 연대 버스를 꾸려 거제를 찾았다. 연대 버스 참여자 모집 3일 만에 자리가 다 찼다고 한다. 창원에서도 연대 버스가 사람들을 가득 싣고 거제에 도착했다.
대학생 최휘주 씨는 “조선소에서는 한 달에 서너 명씩 죽어간다던데, 하청업체가 수십 개여서 어느 현장에서, 어떻게 죽었는지 제대로 알 길이 없다고 한다”라며 “정규직 자르고 하청 비정규직 늘려서 가장 위험한 노동 현장으로 투입하고 있다. 이 기업은 도대체 사람을 무엇으로 보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여기 같이 온 다른 학생의 가족도, 친구의 삼촌과 할머니도 이 뒤에 있는 조선소 노동자다”라며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친구의 이야기고, 가족의 이야기다. 이제 사회에 나가서 노동자가 될 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와 가족이 농성하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안 올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충남 천안에서 온 박수현 씨는 자신을 최저시급 노동자라고 소개했다. 그는 “포기하고 순응하는 것은 쉬운데,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싸워주기를 선택해 줘서 감사하다”라며 “앞으로도 지치지 않고 힘내서 연대하고, 싸우겠다”고 말했다.
연대가 필요한 이들도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경북 구미에서 온 정나영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조합원은 “2024년에는 하루빨리 나라가 안정세로 접어들고, 투쟁하는 사업장들이 승리해서 노동자가 살기 좋은 나라가 만들어지면 좋겠다”라며 “내년 1월 10일 우리는 희망텐트를 치기로 했다. 고공농성을 하는 동지들과 조합원에게 힘을 달라”고 호소했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노동자들은 일본 닛토덴코 그룹의 한국 자회사다. 2022년 10월 공장 화재가 발생하고 나서 사측에서 공장 청산을 시도했다. 희망퇴직을 거부한 노동자들은 농성에 들어갔으나, 결국 해고됐다. 해고 노동자 2명이 지난 1월 8일부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는 회사 공장 앞에서 희망 텐트로 연대자들을 모집하고 있다.
투쟁 문화제 참가자들은 노동조합법 2·3조 개정(노란봉투법)을 염원했다. 기존 노동조합법 2·3조는 사용자 범위를 협소하게 해석하고 있어 원청에 책임을 묻기가 어렵다. 노동자 쟁의 행위에도 제한을 두고 있다. 노동조합법 2·3조가 개정된다면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 개선도 크게 진전될 수 있다.
김재하 노조법2·3조개정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은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이 2022년 51일간 파업 투쟁을 하면서 노조법 2·3조 개정이 전면화되고, 국민 70% 이상이 개정에 찬성하는 여론이 만들어졌다”라며 “조선하청지회가 가장 헌신적으로 투쟁한 일이기도 하다. 내년에는 2·3조가 반드시 통과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마침내 하나 됨을 위하여” 참가자는 문화제가 끝나고 나서도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가사를 흥얼거렸다. 이들은 끝까지 ‘희망’을 말하면서 2024년의 마지막 날을 보냈다.
/김다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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