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역사와 함께하는 생태관광 (5) 함양 상림공원

함양 상림은 사람의 힘으로 조성된 것으로는 역사가 1100년이 넘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숲이다. 통일신라 진성여왕 때 당대 최고 학자이자 문장가였던 최치원(857년~미상)이 천령군(옛 함양) 태수로 있으면서 홍수 피해를 막으려고 만들었다. 그때는 홍수 방지 시설이었지만, 지금은 천연기념물 제154호로 지정돼 사람들이 즐겨 찾는 생태 관광지가 됐다. 함양 사람들이 선대가 남긴 유산을 망치지 않고 잘 가꾼 덕분이다.

함양 상림공원 숲속 산책로를 맨발로 걷는 사람들. /이서후 기자

국내 인공숲 명품으로

백운산에서 발원한 위천 물길은 함양군 백전면을 지나 함양읍에서 상림을 만난다. 위천은 아주 오래전부터 함양 지역 식수와 농업용수로 쓰였다. 하지만, 함양읍 남쪽에서 구룡천과 합류하는 지형상 물 빠짐이 좋지 않아 여름이면 물난리가 많이 났다. 옛 함양 고을 태수 시절 최치원은 둑을 쌓고 나무를 심어 물길을 돌렸다. 상림의 시작이다.

상림은 제방을 보호하기 위한 숲이라 하여 호안림(護岸林)이라 불렀는데, 다르게는 대관림(大館林)이라고도 했다. 그러다 숲 가운데 지역이 홍수로 무너진 뒤부터 상림(上林)과 하림(下林)으로 나뉘게 됐다고 한다. 현재 옛 모습을 유지한 곳은 상림뿐이다. 

상림은 길이가 1.6㎞, 폭이 80~200m로 전체 면적은 21만 ㎡다. 이 중  9만 9200㎡에 졸참, 갈참나무 등 활엽수를 중심으로 120여 종 2만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다.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스스로 생태계가 돌아간 까닭도 있지만, 오랜 세월 함양 주민들이 숲을 보호하려고 기울인 노력도 적지 않다. 함양군은 지금도 고사한 나무를 대신할 후계목을 상림 한편에다 키우고 있다.

상림은 도심인 함양읍에서 바로 이어지기에 군민들이 편하게 나들이 산책을 즐기는 장소다. 워낙 친근한 휴식 장소이기에 고운역사공원, 함양군문화예술회관, 함양박물관 같은 문화 공간도 모두 이 주변에 모여있다. 또, 함양산삼축제 같은 큰 행사부터 야외 영화관, 역사 체험 등 아기자기한 행사까지 대부분 이곳에서 열린다.

함양 상림공원 전경. /함양군
함양 상림공원 전경. /함양군
함양 상림공원 풍성한 숲. 함양 사람들이 상림을 보존하려는 오랜 노력의 결과다. /이서후 기자
함양 상림공원 풍성한 숲. 함양 사람들이 상림을 보존하려는 오랜 노력의 결과다. /이서후 기자

상림과 비교해 하림은 그 자취를 잃었었다. 그러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5년간 45만 3000t의 흙과 돌, 나무 등을 들여 복원사업을 진행했다. 2009년 1월부터 나무를 심기 시작했고, 2013년부터 2015년까지는 자생 식물원을 조성했다. 그 결과 지금 하림은 노각나무숲, 숲안뜰, 중앙광장, 바람의 언덕, 숲쟁이숲, 수구막이숲, 동산숲, 전망언덕, 동구숲, 하림정 등 다양한 휴식 시설을 갖춘 공원으로 거니는 맛이 있다. 여기에 함양토속어류생태관(9월 현재 공사로 휴관 중), 곤충생태관, 토속어류사육동, 야외학습장 등의 생태체험 시설도 있어 아이들과 함께 찾기 좋다.

상림 숲속으로 이어진 산책길은 지난달 산림청에서 주관한 국토녹화 50주년 기념 '걷기 좋은 명품숲길 50선'에 선정됐다. 접근이 쉽고, 생태적·역사적·문화적 가치가 높으며 자연환경이 풍부하게 잘 조성된 까닭이다. 함화루에서 물레방아까지 1.2㎞ 정도 모래흙이 깔려있는데, 요즘에는 이곳에서 맨발 걷기를 하는 이들이 많다.

숲속 산책길 주변으로 문화재도 많다. 사운정이나 함화루(도 유형문화재 제258호) 같은 누각이나 이은리 석불(도 유형문화재 제32호), 최치원 신도비(도 문화재자료 제75호), 척화비(도 문화재자료 제264호) 같은 비석들이다. 이것 말고도 권석도 장군 동상, 만세 기념비, 대한의사 김한익 기념비, 대한의사 하승현 기념비 등이 있다.

숲 가운데에 이르면 함양군이 2001년에 만든 '새천년 역사인물공원'이 있다. 최치원을 중심으로 좌우에 조선 성리학 대가 일두 정여창과 실학파 핵심 연암 박지원, 영남 유림 중심 점필재 김종직, 한말 호남 의병대장 의재 문태서 등 함양 지역 역사 인물 11명의 흉상을 설치해 기념하고 있다. 

조선 선비들이 고운 최치원을 추모해 만든 사운정. 상림공원에는 이런 문화제가 많다. /이서후 기자 
최치원의 생애와 활동을 담은 최치원 신도비. /이서후 기자
상림공원 내 새천년 역사인물공원 조형물. 고운 최치원, 일두 정여창 등 함양 인물 11명의 흉상이 있다. /이서후 기자 
상림공원 내 새천년 역사인물공원에 있는 고운 최치원 흉상. /이서후 기자

선비들의 보석 같은 흔적

함양은 남쪽에서는 지리산이, 북쪽에서는 덕유산이 감싼 고장이다. 이런 산줄기가 펼쳐놓은 골짜기와 계곡, 그리고 들판 곳곳에 정자와 누각, 서원 같은 유교 문화재가 많다. 김종직, 유호인, 정여창, 박지원 같은 출중한 함양 선비와 그 후손들이 남긴 유교 문화 자산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남계서원을 포함해 당주서원, 백연서원, 도곡서원, 구천서원, 용문서원 등 함양 지역 서원들이 선비들의 학문을 상징하는 곳이라면 안의면 화림동 계곡을 따라 수묵화처럼 자리 잡은 정자들은 함양 선비의 풍류를 상징하는 장소다.

특히 지곡면 면 소재지 근처 개평한옥마을은 함양 선비들의 생활을 상상해 볼 수 있는 곳이다. 개평한옥마을에는 14세기에 경주 김씨와 하동 정씨가, 15세기에 풍천 노씨가 들어와 살기 시작했는데, 지금도 마을 주민은 풍천 노씨와 하동 정씨가 대부분이다. 이 마을은 함양을 대표하는 선비 일두 정여창의 고향이다. 정여창은 이황, 김굉필, 조광조, 이언적과 함께 조선시대 유학을 크게 발전시킨 '동방오현(東方五賢)' 중 한 명이다. 마을에는 지은 지 100여 년이 되는 한옥 60여 채가 남아 있는데, 그 중심은 일두 정여창 생가 자리에 후손들이 지은 일두고택이다. 1만여 ㎡(약 3000평)에 사랑채, 행랑채, 안채, 곳간, 별당, 사당 등이 자리 잡았는데, 전형적인 경남 양반 가옥으로 현재 국가 중요민속문화재 제186호로 지정돼 있다.  1987년 KBS <토지>, 2003년 MBC <다모>, 2019년 tvN <왕이 된 남자> 등 지금까지 여러 번 드라마 배경으로 등장했다. 특히 요즘에는 2018년 방영된 tvN <미스터 션샤인>에서 주인공 중 고애신의 집으로 유명하다. 일두고택에서 시작해 안내 지도를 따라 솔송주문화관, 하동정씨 고가, 오담고택, 풍천노씨대종가, 노참판댁 고가 등을 차례로 둘러보며 저마다 특색 있는 부분을 비교해보는 일도 재밌다.
 

함앙군 지곡면 개평한옥마을에 있는 일두고택. 이 마을에는 함양 선비들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이서후 기자
함앙군 지곡면 개평한옥마을 전경. 이 마을에는 함양 선비들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이서후 기자
함앙군 지곡면 개평한옥마을에 있는 일두고택. 이 마을에는 함양 선비들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이서후 기자
함앙군 지곡면 개평한옥마을에 있는 일두고택. 일두 정여창 생가 자리에 후손이 지은 한옥이다. /이서후 기자
함양군 안의면 화림동 계곡 선비문화 탐방로에 있는 정자 거연정. /함양군
함양군 안의면 화림동 계곡 선비문화 탐방로에 있는 정자 거연정. /함양군

안의면에 있는 화림동 계곡(농월정 국민관광지)은 자연과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한 우리나라 정자 문화의 진수를 잘 보여주는 곳이다. 그야말로 산도 좋고 물도 좋고 정자까지 좋은 곳이다. 화림동 계곡은 옛날부터 8담8정(八潭八亭)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계곡을 따라 8개 웅덩이와 8개 정자가 있었다는 뜻이다. 지금은 거연정과 군자정, 동호정, 농월정 같은 정자들이 남아 있다. 이 중에 거연정은 국가 명승으로 지정돼 있다. 함양군은 이 계곡을 따라 선비문화탐방로를 조성했다. 거연정에서 시작해 농월정까지 6㎞, 농월정에서 오리숲까지 4.1㎞ 두 개 구간이다. 정자의 위치와 주변 경관과 조화 등을 살펴보면서 옛 선비들이 어떤 생각으로 위치와 방향을 잡았을까 상상해 보는 것도 재밌다.

/이서후 기자

* 습지 보전 인식 증진 및 생태관광지 추가 발굴을 위해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과 경남도민일보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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