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은 경남에서 가장 넓은 갯벌을 품고 있다. 사천 땅 가운데를 깊게 파고든 사천만이 곳곳에 갯벌을 펼쳐놓았다. 바닷물이 들어왔다 빠졌다 하며 갯벌 위 배들을 들어 올렸다 바닥에 놓곤 하는 모습은 언제 봐도 신기하다. 옛날에는 사천만처럼 바닥이 깊지 않고 썰물과 밀물 차이가 큰 곳이 좋은 항구였다. 밀물을 타고 최대한 육지에 가까이 올 수 있었고, 썰물로 배가 바닥에 닿으면 짐을 내렸다. 그리고 다시 밀물이 들어오면 바다로 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천시 광포만 전경. /사천시
사천시 광포만 풍경. /이서후 기자
사천시 광포만 풍경. /이서후 기자
사천시 광포만 풍경. /이서후 기자
사천시 광포만 풍경. /이서후 기자
사천시 광포만 풍경. /이서후 기자
사천시 광포만 풍경. /이서후 기자

◇갯벌 생태계 보고 = 현재 사천만 동쪽은 매립으로 공단이 많이 들어서 있다. 하지만, 서쪽은 그대로다. 그 서쪽 해안으로 생태계 보고 광포만이 펼쳐져 있다.

광포만은 지리산에서 시작한 곤양천을 중심으로 바닷물과 민물이 섞이는 곳이다. 목단천·묵곡천도 이곳을 통해 바다로 스며든다. 광포만에는 3만 3000㎡(1만 평)에 이르는 모래톱에 국내 최대 규모 갯잔디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갯잔디는 철새들의 쉼터 노릇을 하면서, 어패류가 알을 낳고 키우는 장소이기에 갯벌 생태계 먹이사슬에서 중요한 기능을 한다.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대표이사 정판용)은 2013년부터 현재까지 습지 생태계 변화 조사 사업으로 도내 주요 철새 도래 습지인 광포만 등을 대상으로 생태계 조사를 하고 있다. 2021년 발표한 조사 결과를 보면 2013년부터 2018년까지 6년 동안 광포만에서 확인된 조류는 모두 103종 3만 396마리였다. 또, 지난해 람사르환경재단이 낸 <2022 경상남도 철새도래지 동시 모니터링 결과보고서> 내용 중 광포만 부문을 보면 노랑부리백로, 노랑부리저어새, 수리부엉이, 붉은배새매, 재두루미, 흰목물떼새 등 멸종위기 1·2급과 천연기념물에 속하는 다양한 조류가 사계절 내내 광포만에서 활발하게 먹이활동을 하고 번식하는 것으로 관찰된다.

특히 대추귀고둥과 기수갈고둥, 콩게·방게·길게·농게·칠게 등 작은 게들, 펄 속을 뛰어다니는 말뚝망둥어 같은 작은 생명들은 먹이사슬 피라미드에서 낮은 부분을 감당하며 바다 생태계를 풍성하게 한다. 광포만을 비롯해 사천 바다의 생산성이 높은 까닭이다.

국대 최대 군락을 이루고 있는 광포만 갯잔디. /이서후 기자
국대 최대 군락을 이루고 있는 광포만 갯잔디. /이서후 기자
국대 최대 군락을 이루고 있는 광포만 갯잔디. /이서후 기자
국대 최대 군락을 이루고 있는 광포만 갯잔디. /이서후 기자
광포만 갯벌에 사는 말뚝장어와 작은 게(칠게?). /이서후 기자
광포만 갯벌에 사는 말뚝장어와 작은 게(칠게?). /이서후 기자
정판용 람사르환경재단 대표이사가 지난 6월 사천 광포만을 둘러보고 있다. /람사르환경재단
정판용 람사르환경재단 대표이사가 지난 6월 사천 광포만을 둘러보고 있다. /람사르환경재단
정판용 람사르환경재단 대표이사가 지난 6월 사천 광포만을 둘러보고 있다. /람사르환경재단
정판용 람사르환경재단 대표이사(오른쪽)가 지난 6월 사천 광포만을 둘러보고 있다. /람사르환경재단

 

이처럼 광포만은 주변 바다 생태계를 떠받치며 국제적인 멸종위기 생물들에게 안락한 서식처 노릇을 하고 있다. 람사르환경재단은 생태적으로 우수하고 자연경관도 뛰어난 광포만이 생태관광지로 도약하도록 힘을 쏟을 예정이다.

그동안 광포만을 매립해 산업단지로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계속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광포만 일대를 생태관광지로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실제 사천시는 지난 2020년 초양섬을 국립공원에서 제외하고 광포만을 새로 편입해 줄 것을 환경부에 요청했었다. 정부 부처 간 연안습지 관리 의견 차이로 국립공원 편입이 불가능해지자, 해양수산부가 나서 광포만을 해양보호구역 중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하려고 애쓰고 있다. 사천시는 광포만이 습지보호구역이 되면 연관 사업으로 광포만 생태 탐방로 조성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갯벌 관련 유적들  = 넓은 갯벌을 품은 만큼 사천에는 갯벌 관련 유적이나 기록이 많다. 조선시대 조창인 가산창을 비롯해 매향비, 작도정사, 쾌재정 같은 것들이다.

갯벌이 발달한 사천만은 조선시대에는 훌륭한 항구였다. 1760년 설치된 조창 가산창은 가화천이 바다를 만나는 어귀(축동면 가산리)에 있었다. 1660년 축동면 구호리에 들어섰던 장암창이 100년 만에 이리로 옮겨왔다. 조창은 고려·조선 시대에 조세로 거둔 곡식을 모았다가 옮겨가기 위해 강가나 바닷가에 지은 창고다. 가산창은 조선시대 사천·진주·곤양·하동·단성·남해·고성·의령에서 조세로 거둔 곡식·면포와 특산물을 이듬해 봄에 서울로 실어 갈 때까지 쌓아두던 곳이다. 경남에는 창원 마산창, 밀양 삼랑창, 사천 가산창 등 세 곳이 있었는데 옛 자취가 제대로 남은 데는 사천뿐이다. 당시 뱃길의 안전을 기원하던 석장승이 지금도 가산마을 당산나무 아래 등에 네 쌍(8기)이 남아 있다.

쾌재정은 고려 말 이성계나 최영 수준의 명장이었던 이순 장군이 지은 정자다. 조선시대에는 남명 조식이나 퇴계 이황 같은 이들이 이곳을 들러 시를 짓고 이순 장군을 생각했던 기록들이 있다. 특히 남명 조식의 지리산 유람기 <유두류록>에는 진주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사천만 축동면 구호리 쾌재정 앞에서 배를 타고 지리산을 향한 여정을 시작했다고 적혀 있다. 그러다 임진왜란 이후로는 자취가 사라졌다. 다만, 현대에 들어 사천문화원에서 쾌재정이 있던 장소로 추정되는 축동면 구호마을 노인정 근처 포구나무 아래에 표지석을 세워 놓았다.

가산조창터. 조선시대 곡식 등으로 조세를 거둔 후 이곳 조창에 보관했다가 서울로 실어갔다. /경남도민일보 DB
가산조창터. 조선시대 곡식 등으로 조세를 거둔 후 이곳 조창에 보관했다가 서울로 실어갔다. /경남도민일보 DB
가산마을 석장승. 사천매향비. /경남도민일보 DB
가산마을 석장승. 조선시대 사천만 일대 뱃길 안전을 기원하며 세운 것이다./경남도민일보 DB
사천매향비. 고려 시대 사천 갯벌에 4100명이 모여 미륵부처 왕생을 기원하며 갯벌에 향을 묻고 세운 비석이다./경남도민일보 DB
사천매향비. 고려 시대 사천 갯벌에 4100명이 모여 미륵부처 왕생을 기원하며 갯벌에 향을 묻고 세운 비석이다./경남도민일보 DB

서포면 외구리 곤양천이 광포만으로 스며드는 초입에 있는 작도정사에는 퇴계 이황과 그의 스승 관포 어득강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1533년 서른셋의 이황은 곤양(현 사천) 군수로 있던 어득강을 찾는다. 한 해 전 어득강이 보낸 초대 편지에 대한 응답이었다. 당시 나이 차가 서른 살이 넘었지만, 둘은 사천만을 바라보는 작은 섬 작도(까치섬)에 들어가 술상을 마주하고 아침저녁으로 서로의 생각을 나눴다. 당시 이황은 사천만 갯벌에 물이 들었다 완전히 빠지는 장관을 본 후 그 신기한 경험을 시로도 남겼다.  일제강점기 매립으로 지금 작도는 논밭 한가운데 있는 작은 동산이 됐다. 지금 이곳에 있는 작도정사는 1928년 당시 유림들이 이황을 기리기 위해 만든 건물이다. 

갯벌 유적 가운데 으뜸은 사천매향비다. 고려 우왕 13(1387)년 미륵부처 왕생을 기원하며 갯벌에 향을 묻고 세운 비석이다. 비문은 "많은 사람이 계를 모아 미륵불 왕생을 기원하며 향을 묻는다"로 시작하는데, 이날 모두 4100명이 모였다고 적혀 있다. 지금도 4000명 모이기는 쉬운 일이 아닌데, 당시 중앙귀족과 지역토호에게 겹겹이 시달렸던 당시 민중들의 바람이 간절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임진왜란 관련 유적 = 사천만 주변에는 임진왜란 유적도 제법 있다. 사천은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처음 투입해(사천해전) 이긴 승전지이기도 하면서 왜군의 거점이기도 했다. 선진리 왜성은 고려시대 토성을 바탕으로 왜군이 쌓은 일본식 성이다. 정유재란 때 일본군과 조·명 연합군이 큰 전투를 벌인 곳이기도 하다. 선진리성은 현재 공원으로 잘 정비돼 있다. 특히 벚나무가 많아 해마다 벚꽃 축제가 벌어진다. 이 성에 주둔하던 왜군 장군 후손이 일제강점기에 이 성을 사서 벚나무를 잔뜩 심은 까닭이다.

선진리 왜성 옆으로 '조명군총'이란 일종의 병사들 무덤이 있다. 정유재란 발발 이듬해인 1598년 10월 조명연합군이 선진리왜성 왜군을 치러 갔지만(사천전투) 패배하고 말았다. 4만 명 규모 조·명 연합군은 7000명 왜군에 밀려 식량이 불타고 괴롭힘을 당한 끝에 숱한 주검을 남기고 물러났다. 왜군은 숨진 군사들 귀와 코를 잘라 일본에 보내고 머리는 베어내 성 앞에 쌓고 묻었다. 귀·코는 일본 교토 도요쿠니 신사 앞에 묻혀 이총(귀무덤)이 됐고 머리는 지금 있는 조명군총으로 남았다. 조명군총 옆에도 귀무덤이 있는데, 1992년 사천문화원 등이 일본 이총에서 떼어온 흙을 안치하고 표지판을 세웠다.

선진리 왜성에서 좀 떨어진 대방동에 있는 '대방진 굴항'은 고려 때 만들어진 군항 시설이다. 입구는 좁으나 안으로 들어가면 큰 배 2척 정도를 넣을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숨겼던 곳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우람한 나무로 주변 숲이 깊어 가만히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사천시 용현면 해안도로에 있는 사천해전 기념물./ 이서후 기자
사천시 용현면 해안도로에 있는 사천해전 기념물./ 이서후 기자
임진왜란 때 거북선을 숨겼다고 알려진 대방진 굴항. /경남도민일보 DB
사천 선진리성.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쌓은 일본식 성이다. /경남도민일보 DB
사천 선진리성.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쌓은 일본식 성이다. /경남도민일보 DB

◇멋진 해안 풍경들 = 광포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천팔경 중 하나인 비토섬이 있다. 비토섬을 포함해 주변으로 월등도·거북섬·토끼섬 그리고 목섬 5개 섬은 전래 설화 별주부전의 무대이기도 하다. 비토섬 자체는 풍경도 그럴듯하고 끊어질 듯 흩어져 있는 섬들도 괜찮아 한 바퀴 둘러볼 만하다. 비토섬 동쪽 끝에 월등도가 있다. 월등도 너머에 있는 거북섬, 토끼섬, 목섬이 직접적인 별주부전의 무대다. 비토섬과 월등도를 오가는 길은 하루 두 번 물이 빠질 때만 열린다.

비토섬에서 나와 사천대교를 지나면 용현면 해안도로다. 해 질 녘 황금빛으로 물드는 갯벌이 멋진 곳인데, 요즘에는 사천시가 해안 방호벽을 알록달록 무지갯빛으로 칠하면서 무지갯빛 해안도로로 인기를 끌고 있다. 여기에 바다 위로 암초까지 산책로를 만들어 일몰을 감상하도록 한 전망대 '선셋 파고라'나, '그리움이 물들면'이라는 조각 작품은 사진 명소로 유명하다.

무지갯빛 도로를 지나 삼천포 방향으로 가다 보면 실안노을길이다. 이곳에서 보는 노을 풍경을 실안낙조라 하는데 황금빛 노을을 배경으로 작은 섬들과 죽방렴, 등대 그리고 항구로 돌아가는 고기잡이배가 어우러진 풍경은 전국 9대 일몰 중 하나로 여겨질 정도로 멋지다.

별주부전 이야기를 품은 사천 비토섬. /이서후 기자
별주부전 이야기를 품은 사천 비토섬. /이서후 기자
별주부전 이야기 배경인 월등도 가는 길. 하루 두 번 물이 빠질 때 길이 열린다. /이서후 기자
별주부전 이야기 배경인 월등도 가는 길. 하루 두 번 물이 빠질 때 길이 열린다. /이서후 기자
요즘 인기 있는 사천시 용현면 무지개빛 해안도로. /이서후 기자
요즘 인기 있는 사천시 용현면 무지갯빛 해안도로. /이서후 기자
요즘 인기 있는 사천시 용현면 무지개빛 해안도로. /이서후 기자
요즘 인기 있는 사천시 용현면 무지갯빛 해안도로. /이서후 기자
요즘 인기 있는 사천시 용현면 무지갯빛 해안도로 중 전망대 '선셋 파노라마' 가는 길. /이서후 기자 
요즘 인기 있는 사천시 용현면 무지갯빛 해안도로 중 갯벌 탐방 시설. /이서후 기자 


/이서후 기자 

※참고문헌 
<습지에서 인간의 삶을 읽다>(2018)
<경남의 재발견>(2017)
<경남의 숨은 매력>(2022)

 

* 습지 보전 인식 증진 및 생태관광지 추가 발굴을 위해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과 경남도민일보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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