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만연한 불법파견 문제
법원에서 인정되는 추세지만
기업들 법망 피해 직접 고용 회피
"자회사 전환 등은 임시방편일 뿐"
경기 화성시 일차전지 제조업체 아리셀에서 발생한 화재로 숨진 23명 대부분이 불법파견 노동자로 보이는 점도 중요한 문제다. 불법파견과 같은 불안정한 고용 형태가 피해를 키운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제조업 불법파견은 크고 작은 공단이 있는 경남에서도 오래전부터 제기된 현안이다. 수년째 비정규직 불법파견 소송을 벌이는 한국지엠부터 1심 재판을 앞둔 현대위아까지 규모가 큰 사업장에 속한 노동자들도 이 문제로 수년째 투쟁을 벌이고 있다.
◇불법파견 인정 추세 =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파견법)상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 노동자를 파견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제조업에서 원청이 직접 고용한 노동자 외에 추가 인력을 쓰려면 도급 계약으로 하청업체 노동자를 고용해야 한다. 도급은 원청이 하청업체에 일의 완성을 대가로 업무를 맡기는 것을 뜻한다. 도급 계약 관계에서 원청은 하청노동자에게 업무 지시를 하거나 채용 등에 관여할 수 없다.
문제는 관행적으로 원청이 정규직과 마찬가지로 하청업체 노동자에게 업무 지시를 내리고 관리·감독을 한다는 점이다. 이 경우 하청업체는 원청에 노동자를 파견한 것으로 간주하는데, 그 업무가 제조업 직접생산공정과 같은 파견 금지 직종이라면 ‘불법파견’이다.
이를 근거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원청을 상대로 직접고용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 결과 대다수 사업장에서 불법파견이 인정되는 등 관련 판례가 쌓이면서 법원에서도 불법파견 인정 기준을 명확히 세우고 있다.
법원은 △원청의 하청노동자에 대한 지휘·명령 여부 △원청 노동자와 하청노동자 업무 연관성 △원청의 하청노동자 인사 관리 등을 기준으로 불법파견 여부를 따지는데 최근 들어 폭넓게 인정하는 추세다.
한국지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이 같은 기준을 적용받아 잇따라 승소했다. 불법파견이 인정된 사용자는 파견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
불법파견 인정 사례가 늘자 기업들은 비용 절감을 위한 자회사 전환이나 발탁 채용 등 ‘꼼수’로 일관하고 있다. 회사 제안을 받지 않는 노동자들은 해고되거나 기존 업무와 무관한 곳으로 전보되는 등 사실상 비정규직 노동자 처지에서는 선택권이 없는 셈이다.
◇불법파견 인정돼도 비정규직 노동자는 고난 길 = 한국지엠은 보상금 명목으로 일정 금액을 지급하고 소송을 취하한 비정규직 노동자들만 정규직으로 발탁 채용해 오고 있다. 현재까지 1000여 명이 이런 방식으로 채용됐다.
배성도 한국지엠 비정규직지회 비상대책위원장은 “불법파견 소송을 2016년부터 이어오고 있는데 아직도 대법원 판결이 나오지 않았다”며 “노동자로서는 해고자 신분으로 견디기 어려워서 회사 회유에 응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현대위아는 지난해 12월 자회사인 테크젠을 설립해 불법파견 소송을 내지 않기로 합의한 파견 노동자에 한해서 채용했다. 직접 고용 의무를 회피하고자 자회사를 만든 셈이다.
김진형 현대위아 창원비정규직지회 소송단 대표는 “자회사 전환은 자본이 그동안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벌인 불법파견 범죄를 은폐하려는 수단일 뿐”이라며 “자회사 고용 형태를 보면 현대위아 하청이다. 노동조건이 조금 개선됐을 뿐 고용은 여전히 불안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자회사 전환은 임시방편일 뿐이고 결국 불법파견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은정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는 “자회사 구조에서 일거리는 결국 원청에서 받아올 수밖에 없는데 이게 어느 순간 끊기면 가장 먼저 자회사 노동자들이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며 “이 경우 자회사 노동자들은 또다시 직접 채용을 요구하는 소송과 투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 교수는 “원청에서는 자회사나 발탁채용을 내밀면서 노동자에게 선택권을 준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회사 제안을 거부하면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너무 길고 고돼서 노동자 처지에서는 적당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라고 덧붙였다.
/박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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