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공장 사내 하청 노동자들
현대위아 회유 거절하고 소송 돌입
"불법적인 파견 행위 따져물을 것"
해고에도 가족들 응원 목소리 전해
"직접 고용 목표로 끝까지 싸우겠다"
공장 노동자들이 거리에 섰습니다. 쳇바퀴 같은 일상에도 묵묵히 현장을 지키던 이들입니다. 같은 공장에서 같은 작업을 했으니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외친 게 시작이었을 것입니다. 회사는 지난 일은 덮어두자며 절충안을 내밀었지만 이들은 거부했습니다. 그 대가는 가혹했습니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었고 매일 다니던 출근길 위에서 붉은 머리띠를 매고 소리쳐야 했습니다. 지난 20년 수많은 하청노동자가 겪었던 불법파견 투쟁은 늘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평범한 이들이 수년간 거리로, 법정으로 내몰리는 지난한 시간의 연속입니다. 현대위아 창원공장 사내 하청노동자들은 이제 그 첫발을 내딛습니다.
지난 4일 현대위아 창원공장 사내 하청노동자 46명이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1차 변론이 창원지방법원에서 열렸다. 이 소송은 이른바 ‘불법파견’ 소송으로 하청노동자들이 법원을 통해 원청과 자신의 고용·계약 관계를 명확히 하고자 제기했다. 원청 사용자인 현대위아가 하청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으니 자신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파견법은 파견 업종과 기한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이에 해당하지 않는 기업이 다른 업체 노동자를 파견 노동자처럼 사용하면 불법이다.
◇당연한 권리 찾아서 = 불법파견 소송은 대다수 하청노동자가 해고자 신분으로 소송에 참여하고 소송 기간이 긴 까닭에 고된 싸움으로 꼽힌다.
한국지엠 창원공장 사내 하청노동자들 역시 9년 넘게 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현대위아 평택공장 사내 하청노동자들은 2021년 대법원에서 불법파견을 인정받았는데 소송 7년 만에 받아든 결과였다. 불법파견 소송에 이름을 올린 현대위아 창원공장 사내 하청노동자들도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현대위아 제안을 거부하고 소송이라는 어려운 길을 택했다. 앞서 현대위아는 지난 2월 자회사를 세워 하청노동자를 고용했는데, 고용 조건으로 향후 불법파견 관련 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부제소합의서 서명을 내걸었다.
현대위아 창원공장에서 20년 일한 이춘협(47·부산) 씨는 부제소합의서를 써야 한다는 소식을 듣고서 억울한 감정이 먼저 들었다.
“원청 작업반장 통해서 지시받는 일은 일상이었습니다. 불법파견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니까 원청·하청 작업 공장을 분리했는데 노골적 지시만 없었지 원청 관리·감독은 매한가지였습니다. 현대위아는 제 청춘을 다 받친 곳입니다. 기계처럼 부릴 때는 언제고 인제 와서 그 종이 한 장으로 모든 것을 덮을 수는 없었습니다.”
서정호(40·창원) 씨도 같은 마음이다.
“원청직원과 하청직원은 일할 때 표정만으로도 구분이 됩니다. 원청은 그렇게 여유로울 수 없는 표정인데 우리는 계속 돌아가는 컨베이어 속도에 맞춰 일을 해야 하니 늘 어둡고 찡그린 표정이었을 겁니다. 사실 같은 현장에서 같은 제품을 만드는데 노동 강도는 저희가 훨씬 더 셌습니다. 근데 돈은 원청의 절반보다 조금 더 받으니 답답할 노릇이지요.”
춘협·정호 씨와 뜻을 같이한 또 다른 이들은 자회사 전환이 완전한 ‘직접 고용’이 될 수 없다고도 했다. 원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 안에서는 자회사 직원들이 휴직·근무지 이동·정리해고 일 순위로 꼽힐 거라는 뜻이다.
이병조(40·창원) 씨는 현대위아가 자회사 전환을 제안했을 때 고용 안정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집요하게 물었다. 그때 그가 들은 답은 “최선을 다하겠다”였다.
“우리가 해고된 뒤에도 회사는 최선을 다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할 것 같았어요. 결국 구체적인 고용 안정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셈이지요. 그렇다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확실하게 짚고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지요.”
◇혼자만의 싸움 아니다 = 현대위아 불법파견 소송에 참여하는 이들 대다수는 부양가족이 있다. 불법파견 소송은 곧 계약 종료를 뜻했기에 자신의 결단만큼이나 함께 하는 가족들의 뜻도 중요했다.
지난해 6월 결혼한 김진형(39·창원) 현대위아 불법파견 소송단 대표는 9개월 된 아이도 있다. 최근 마련한 집 대출금도 갚아야 하는 상황이다. 아내에게 어렵사리 소송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어떤 아내가 저 같은 상황을 선뜻 이해해 줄까요. 그래서 정말 열심히 설명하고 설득했습니다. 자회사에 들어간다 해도 고용이 불안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했고요. 코앞에 이익이 아니라 멀리 보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내가 열심히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김진형 대표는 지난해 결혼식장에서 금속노조가를 틀 만큼 노동 운동에 진심이다. 어쩌면 그런 그가 대표를 맡는 것은 당연했다.
춘협 씨는 불법파견 소송을 제기한 지난해 12월 암으로 어머니를 떠나보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털어놨다.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돼지 저금통을 춘협 씨에게 건넸다.
“제가 평소에 어머니에게 그런 사정을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근데 그때는 왠지 제 이야기를 털어놓아야 할 것 같았어요. 어머니한테 저금통을 받으면서 했던 말이 있어요. 꼭 이기겠다고, 끝까지 싸우겠다고 그때 다짐했습니다.”
10·13살 딸을 둔 병조 씨는 얼마 전부터 새벽 우유 배달을 시작했다. 아이들을 위해서다.
“딸들한테 아빠가 이제 다른 일을 하게 됐다고 설명하는데 아이들이 무슨 일이냐고 묻더라고요. 순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아이들도 답답했는지 엄마한테 다시 물었다 하더라고요. 그때 아내가 아빠는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해줬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병조 씨는 불법파견 1심 판결이 나올 때쯤 아이들에게 자신이 벌이는 투쟁에 대해 다시 설명을 해줄 계획이라고 했다.
“소송 관련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이길 수 있느냐 입니다. 현대위아는 다 부정하겠지만, 회사가 저희에게 작업 지시를 내린 증거는 이미 충분히 확보하고 있습니다. 보는 눈이 몇 명인데 그게 숨긴다고 숨겨지나요. 준비가 안 됐으면 시작도 안 했습니다. 싸움이 길어질 수 있겠지만 결과는 정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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