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공화국·의사 집단행동 의미는
'엘리트 카르텔형 부패'국가 현주소

1962년 '007 영화'가 처음 나올 때 악당은 소련이었다. 다음에는 중국, 북한까지 빌런으로 등장한다. 냉전 시기가 끝나고 감정이입이 손쉬운 악당이 없어지면서 007 영화는 밋밋해지고 화려한 시각적 효과에 주로 의존하게 되었다. 뚜렷한 악당이 있으면 설명이 손쉽고, 설명이 간단하면 대중 동원이 수월하다.

한국 사회에서 철 지난 악당 만들기, 이른바 '카르텔' 이야기가 등장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언급한 '카르텔'만 해도 사교육 이권 카르텔, 통신시장 이권 카르텔, 과학기술 카르텔 등이 있다. 올 신년사에는 '패거리 카르텔'이라는 용어도 등장한다. 카르텔이 패거리를 의미하는 것이라서 '역전앞', '초가집' 같은 동어반복의 오류인데, 언론은 '운동권'을 지칭하는 것 같다고 풀이한다.

카르텔은 '자유로운 경쟁'을 배제해 독과점적인 이익을 챙기는 '내부자'들의 '부당한 공동행위'를 의미한다. 그런데 '내부자'가 되어 '독점적 이익'을 챙기는 것은 아무나 하지 못한다. 규정과 제도, 크게는 정책을 만들고 이를 강제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독점적 이익'에 방해가 되는 세력을 처벌하는 힘도 있어야 한다.

2012년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강력부 검사로 나오는 곽도원은 화장실에서 브로커 최민식을 발로 짓밟으며 이렇게 말한다. "난 니가 깡패인지 아닌지 관심 없어. 이 새끼야. 너는 그냥 내가 깡패라고 말하면 깡패야." 실체적 진실과 관계없이 그냥 '너는 나쁜 놈'이라고 말하면 '나쁜 놈'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홍준표 당시 경남지사에게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했고 이들의 실제 모델이 누구인지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2011년 한겨레 이순혁 기자가 쓴 <검사님의 속사정>(부제는 대한민국 검찰은 왜 이상한 기소를 일삼는가)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2004년 대구지검 부근 카페에서 제일 젊어 보이는 남자가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남자에게 호통을 쳤다. "요즘 민선 지자체장들은 선거로 뽑혀서 그런지, 목이 너무 뻣뻣해. 그래서 인사도 제대로 할 줄 몰라. 그래도 되는 거야." 그러자 머리가 허옇게 센 노인이 "부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라며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그 자리는 동향 출신 고위공직자 모임으로 노인은 경북 ○○지역 군수였다. 젊은 남자는 37살의 우병우 부장검사였다. 이 정도의 '선민의식'과 파워풀한 집단이라야 '카르텔'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지금은 그때보다 더한 '검찰 공화국'으로 불린다.

한국에서 국가 자격증은 160여 개인데 두 번째 파워집단은 의사이다. 지금까지 두 번 파업해 정부를 굴복시켰다. 2000년 첫 파업에서는 당시 3300명 수준의 의대 정원을 3058명으로 줄였다. 의대 정원은 지금도 그때 그대로이다. 그 결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인구 1000명당 의사(한의사 포함)는 2.6명으로 멕시코 다음으로 적다. OECD 평균은 3.7명이다. 의사를 만나기 어려운 지역도 많지만 '원격진료'는 인터넷 강국 한국에서는 아직도 불법이다. 미국에서는 1990년대부터 도입되었는데도 그렇다. 미국 마이클 존스턴 콜게이트대 정치학 교수는 그래서 한국을 '엘리트 카르텔형 부패' 국가로 분류한다. 학연·지연으로 뭉쳐 권력 유지 기반을 만들고 부패 행위를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형태라는 것이다. 이 분석이 오히려 더 그럴듯하지 않은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김석환 부산대 석좌교수 전 한국인터넷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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