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초심자들이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재즈가 멋진 음악이라고 해서 제대로 들어볼려고 하는데, 참 생각보다 어려워요!” 공감한다. 재즈는 결코 쉬운 음악이 아니다. 초창기 재즈야 멜로디와 구성이 단순해 금방 따라 잡을 수 있지만, 비밥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모던 재즈는 그리 녹록한 분야가 아니다. ‘바라바라’하며 브라스가 동서남북을 넘나들면, 선명한 팝 멜로디에 익숙한 사람들은 ‘도대체 이 친구들이 주장하는 게 뭘까?’하는 의구심까지 갖게 된다.

하지만 문제가 있으면 해결책도 있는 법. 이럴 땐 스탠더드(Standard)로 불리는 재즈 넘버들을 팝이나 경음악을 통해 먼저 손쉽게 익히면 된다. 스탠더드 <Stella By Starlight>를 예로 들어보자. 팝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이 곡은 멜로디가 가슴을 저밀 정도로 아름답다. 마음으로 그 아름다움을 찬찬히 받아들여보자. 멜로디가 어느 정도 각인됐다 싶으면, 그 다음부터 ‘변형체’인 재즈 넘버로 발길을 옮긴다. 모르긴 몰라도 멜로디 여운이 재즈 비트와 엮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익숙해지면 이젠 오히려 팝 오케스트라 연주를 견딜 수 없게 된다. 한결같은 멜로디, 한결같은 구성에 물리게 되는 것이다. ‘물림’ 현상이 나타난다면 이는 곧 감상자가 재즈에 제대로 발을 담궜다는 징표다.

장년들에게 익숙한 경음악

연령대로 본다면 7080세대나 그 이전 세대는 이런 면에서 행운아였다. 재즈형 경음악이 넘실거리던 시대를 살았기 때문이다. 디지털 영상 문화가 도래하기 전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던 건 라디오 문화였다. 그 가운데서도 팝 음악을 틀어주던 음악 프로그램은 인기 만점이었다. 그리고 프로그램 시작을 알리던 시그널 뮤직은 이런 음악 프로그램과 동의어였다.

Bert-Kaempfert.

지금 조사해도 버트 캠페트(Bert Kaempfert) 악단이 남긴 <Swingin' Safari>나 <That Happy Feeling>, <Wonderland By Night 번역제목: 밤하늘의 트럼펫>를 모르는 한국 장년은 없다. “어! 난 그딴 것 모르는데!”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실제로 음악을 들려주면 대뜸 “아! 그래 이 것 알아!”하는 반응을 보인다. 제목도 모르고 내용도 모르지만 라디오 음악프로 시그널 뮤직으로 적게는 수년, 많게는 십년 넘게 한국인들의 귀를 사로잡은 음악이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50~70년대를 풍미한 이들 경음악단이 사실은 팝과 재즈를 넘나들었다는 점이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이들이 즐겨 다룬 팝 연주곡 중 상당수가 재즈 스탠더드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다. 스탠더드라고 하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음악처럼 여겨지는데 그게 아니다. 독창적인 재즈 작곡가들이 만든 음악도 있지만, 대부분은 팝 넘버였지만-<Autumn Leaves>가 대표적 사례-많은 재즈인들이 즐겨 연주하는 바람에 스탠더드 지위를 획득한 것들이다.

“난 <밤하늘의 트럼펫>이 좋아”

작은 거인 미셀 페트루치아니(Michel Petrucciani)가 남긴 명연중에 <Little Peace In 'C'>가 있다. 다른 악기 모두 제하고 드러머 스티브 갯(Steve Gadd)과 듀오로 연주한 게 있는데, 이게 명작중의 명작이다. 피아노와 드럼이 찰떡궁합처럼 맞아 들어가는 게 가히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 할 만하다. 예전에 재즈 문외한인 친구에게 이 음악을 들려주었더니 “세상에 이런 음악도 있나!”라며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이었다. 함께 70년대를 넘어온 친구이기에 “‘경음악 베이스’가 네 감성을 자극했나 보다”라고 했더니, “솔직히 나는 지금도 <Wonderland By Night>가 가장 좋다”고 답하는 것이었다. 그랬다. 60~70년대엔 재즈 사촌들이 도처에 있었다.

Wonderland_By_Night_200A.

장년들은 그래서 요즘 세대에 비해 ‘역사적’으로 유리한 귀와 청음구조를 갖고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이제라도 늦지 않다. 무의식중에 재즈 사촌들과 함께 해온 ‘History’를 잘 활용하기만 하면 된다. 게다가 요즘은 경남에서도 재즈 라이브가 심심찮게 열리고 있지 않은가?

국산 아티스트 중 J씨는 재즈 입문 초기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젊은 사람이 스탠더드를 줄줄 꿰고 있다’는 찬사를 받았다. 집안 환경이 재즈나 재즈 사촌 음악들로 꽉 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신기한 눈으로 볼지 몰라도, 자신에게 재즈나 그 비슷한 음악은 삼시 세 끼 먹던 밥과 비슷한 것이었으리라! 80년대 초반 나도 그 비슷한 행운을 누린 적이 있다. 우연히 들른 지인 댁에서 어마어마한 오리지널 음악들을-그것도 릴 테이프로-만났다. 60년대 베트남 미군들에게서 사들인 것이었는데, 거대한 JBL 스피커를 통해 들으면 흡사 무릉도원에 앉아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했다.

재즈는 듣는 만큼 들린다

릴 테이프는 릴 형태의 자기(磁氣) 테이프에 자연 파장처럼 소리를 그대로 녹음한 것인데 그 두터움과 현장감, 풍부한 음감은 이루 말로 옮기기 힘들다. 특히 디지털 음악에 익숙한 지금 세대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감동이 얼마나 컸으면 나는 지금도 그 때를 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때 가슴에 몰아친 파장은 아직도 자양분이 되어 내 귀를 굳건하게 받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당시만 해도 재즈 구력이 일천했기에 머디 워터스(Muddy Waters)를 비롯한 블루스 음악과 초기 록 음악에만 관심을 쏟았을 뿐이라는 점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수백 개가 넘는 릴 테이프 중에는 재즈 거장들이 숱하게 있었던 것 같다. 아! 아무리 명마(名馬)가 많으면 뭣하나! 백락(伯樂 고대 중국사람. 말을 잘 고른 것으로 유명)이 없으면 모두 무용지물인 것을!

물론 그런 옛 경험이 다소 존재한다고 해서, 젊은이들보다 장년이 절대 유리하다는 건 아니다. ‘디지털 연예 아이돌 무비’세대인 지금 젊은이들은 음악적으로는 장년들보다 한 수 위다. 감성도 훨씬 풍부하고 예민하다. 재즈에 대한 경계심도 별로 없다. 아니 오히려 이들은 이해 여부를 떠나 재즈를 입에 달고 산다. 단지 자연음에 기반한 깊이가 약하다는 게 흠일 뿐!

히스토리가 있건 없건 재즈를 원하는 초심자들에게 꼭 들려주고픈 말이 있다. 평론가 김현준이 한 이야기다. “재즈는 듣는 만큼 들린다!” 음악 히스토리도 그런 게 아닐까? 자의든 타의든 장년들도 그렇게 음악을 들었기 때문에 재즈에 더 가깝다고 보는 게 아닐까? 듣지 않는다면? 만사휴의(萬事休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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