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블로우 백(blow back)'은 우리말 역풍에 해당된다. 명저 <블로우 백>을 쓴 찰머스 존슨은 이렇게 말한다.

"아마도 21세기 세계 정치는 주로 20세기 후반의 역풍(블로우 백), 다시 말해 냉전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와 탈냉전하의 세계에서도 냉전적 태도를 유지하려는 미국의 중대한 결정으로부터 야기되는 역풍에 의해 추동될 것이다."

표현이 조금 어렵긴 하지만 역사를 조금이라도 깊이 있게 탐구한 이라면 무릎을 치며 탄복할 만한 식견이다. 찰머스 존슨은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제정세 분석 자문관을 지낸 사람이다. 그는 말년에 미국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선봉에 서서 제국주의가 치른 비용과 그 귀결을 역설했다. 그리고 이 주장은 9.11 사태가 터짐으로서 예언이 되고 말았다.

미국은 19세기 후반부터 서서히 강국으로 성장해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세계를 쥐고 흔드는 패권국가가 됐다. 그들의 말대로 은총과 영광이 늘 함께 했지만, 커진 파워에 비례해 미국인이 전 세계에 뿌려놓은 부정적 유산도 만만치 않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는 한 구절을 보자.

"1955년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미국 기업들에 위협적인 토지개혁을 단행한 과테말라 대통령을 전복시키기 위해 쿠데타를 계획했고 CIA는 그것을 조직하고 자금을 지원했다. 이에 대한 역풍은 1980년대 마르크시스트 게릴라의 반란과 CIA 및 국방성 지원하의 마야 농민에 대한 대학살로 이어졌다"

전통 막사 안에서 가족들과 앉아 이야기 하고 있는 아메리칸인디언.
전통 막사 안에서 가족들과 앉아 이야기 하고 있는 아메리칸인디언.

2019년 11월 지소미아 사태가 '조건부 유예'로 결론나기까지 미국이 보여준 행태 또한 이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미국은 일본을 끼고 돌면서 한국이 무조건 일본 요구에 굴복할 것을 요구했다. 한국 정부가 밀당 끝에 '조건부 유예'라는 결론으로 문제를 풀었지만, 이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의 노골적인 압박은 도대체 이들이 주권국가를 존중하고 있는지 여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우방이자 동맹이라고 늘 떠드는 한국이 이럴진대 다른 나라는 오죽할까? 한국을 둘러싼 동아시아 근현대사는 미·일 협력을 축으로 한국과 중국이 여기에 종속되거나 견제 받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미국이 한 때 적성국이었던 일본과 이토록 가깝게 지내는 것은 결국 아시아에서 미국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일본이 가장 유용하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비단 동아시아만이 아니다. 세계 경찰을 자임하는 미국은 언제 어디서건, 제국주의적 면모를 여지없이 과시했다. 찰머스 존슨이 지적한 것은 이 과정에서 발현된 오만한 행태가 결국 9.11 이란 역풍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역풍은 21세기 세계정치를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라는 게 존슨의 예언이다.

사실 미국은 몇 가지 성격으로 규정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그들이 쓰는 영어는 세계를 지배하는 언어이며, 그들이 이끄는 경제는 세계를 뒤흔든다. 그들이 주창하는 문화와 과학 또한 세계를 조아리게 만든다.

그래서 미국을 분석하는 주류 담론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차고 넘친다. 그리고 대다수는 이담론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주류 담론을 이해한다고 해서 미국을 100% 이해할 수 있느냐 하면 꼭 그것도 아니다. 미국에는 풍요로운 상층부만 존재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인디언, 흑인, 백인 하층민이란 세 가지 저변층을 이해하지 않고선 미국을 제대로 알 수 없다. 이들은 주류에서 소외된듯하나 그 역사와 존재는 미국의 현주소를 파악하는 데 필수적이다.

토지 침식으로 거대한 우곡이 생긴 앨라배마, 버림받은 소작농이 헛간 옆에 절망적인 모습으로 서 있다./ 소작농 농장의 침식된 땅, 앨라배마, 워커카운티(아서 로스스타인, 1937)
토지 침식으로 거대한 우곡이 생긴 앨라배마, 버림받은 소작농이 헛간 옆에 절망적인 모습으로 서 있다./ 소작농 농장의 침식된 땅, 앨라배마, 워커카운티(아서 로스스타인, 1937)

링컨이 암살될 때만 해도 로키산맥에서 미네소타 아이오와 미주리 아칸소에 이르는 드넓은 지역은 아직도 변방의 성격을 지니고 띠고 있었다. 이곳에 산재한 여러 도시들은 이전에 영국이나 프랑스가 건설한 요새 같은 전초기지에 불과했다.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도 들소가 뛰어다니는 대초원이 있었다.

1865년에는 수백만 마리에 달하는 거대한 들소가 떼지어 살고 있었다. 하지만 사냥꾼들이 가죽을 얻기 위해 조직적으로 도살하는 바람에 몇 해 지나지 않아 들소는 거의 멸종되고 말았다. '버팔로 빌(Buffalo Bill)'이란 별명으로 불린 윌리엄 코디 대위는 철도 노동자들에게 들소고기를 공급하면서 유력한 식량 조달업자가 되기도 했다.

들소 멸종은 들소에게서 식량, 주거용 천막, 그리고 가죽을 얻어 생활하던 인디언의 삶을 완전히 박살냈다. 먹을 것을 빼앗기고 백인 목축업자와 농민에게 토지를 약탈당한 인디언은 할 수 없이 저항전을 시도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인디언은 당시 동부 백인정권에게 해결하기 힘든 문제 중 하나였다. 남북전쟁 막바지 무렵 미국내에는 약 29만 4000명의 원주민이 있었다. 이들 부족은 대부분 미합중국 정부에 귀순했다. 처음에 그들은 일정한 토지 소유권을 인정하겠다는 정부를 믿고 조약을 체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백인이 그들의 소유지를 통행할 권리를 요구하자 그들은 이것까지 승인했다.

그 다음에는 목축업자와 농민이 나타나 그들에게 소유지를 매도하라고 강요했다. 거절할 경우 백인들은 그들을 학살했다. 1871년 오리건에서는 백인이 짐승을 잡듯 개를 몰아 인디언을 굴속으로 몰아넣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조리 학살했다.

궁지에 몰린 인디언들이 역마차 호위대와 요새를 습격하자, 미합중국 육군성은 2만5000명에 이르는 상비군을 인디언 구역에 배치했다. 군대를 이끌던 셰리던 장군은 이렇게 말했다.

"죽은 인디언만 선량한 인디언이다!"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 홍보 포스터.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 홍보 포스터.

1887년 도스 법 제정으로 인디언에게 소유지를 할당했으며 1901년에는 다섯 부족의 인디언들이 미합중국 공민권을 얻었다. 1924년 의회는 미합중국 내에서 출생한 모든 인디언은 미국 국민이라는 법안을 제정했다. 그러자 적지 않은 백인이 부유한 인디언 지역에 들어가기 위해 인디언 여자와 결혼했다. 예컨대 오클라호마에 광대한 유전지대를 보유한 오세이지족에 이런 백인이 꽤 있었다. 비교적 양호한 위생 덕분에 인디언 인구는 계속 증가했지만 대부분 혼혈이라 대륙의 옛 주인은 서서히 백인 속에 용해되어갔다.

인디언 말살은 이른바 '서부개척'이라는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 동부지역 백인 이민자들은 '명백한 운명'이라는 슬로건 하에 자신들이 미국 중서부로 진출하는 것을 정당화했다. 이 과정에서 맞닥뜨린 원주민 인디언은 더불어 살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청소를 해야 마땅한 미개 종족(?)이었다.

서부개척이 끝난 지금에도 이 DNA는 미국인의 혈관에 남아 다른 형태로 발현되고 있다. 인디언이란 범주는 이제 아시아인과 히스패닉으로까지 확장돼 있다.

1976년에 발표된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는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무려 22주 동안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순위 꼭대기에 있었고, 나중에는 12시간짜리 미니시리즈로 만들어져 에미상 아홉 개 분야를 석권했다.헤일리는 대다수가 가능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한 일을 해냈다. 그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자기 가족의 역사를 추적해 감비아의 어느 마을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하지만 이는 엄청난 사기였다. 4년에 걸쳐 전모가 밝혀졌는데, 헤일리는 결코 존재한 적 없는 특출한 유산에 관한 장엄한 서사를 이야기하기 위해 집안 구전을 조작하고 가계도를 윤색했다. 헤일리가 의존했던 감비아인 이야기꾼은 하나같이 그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만 해주었다.

부계 조상 토비가 쿤타 킨테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조차 거짓이었다. 헤일리가 말하는 아프리카는 타잔이 뛰어다니는 초목이 무성한 정글 이미지가 아니었고, 헤일리 자신이 반의식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왜곡한 이미지였다.

헤일리는 감비아를 여러 마을로 이뤄진 미국 중부와 흡사한 땅으로 변형시켰다. 유명한 그의 조상들이 살았던 실제 마을은 역사에 굶주린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 그들만의 원시세계로 그려지는 에덴동산과는 거리가 멀었다. 헤일리는 사실 그의 조상이 영국의 교역소에 살았다고 인정했다.

헤일리 처지에서 볼 때 미국의 쿤타 킨테는 자신의 자랑스러운 조상에 대한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명예롭게 생각하는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어야 했다. 비록 노예가 되었어도 쿤타 킨테와 가족들은 백인 하층계급인 '크래커'들과 분명하게 구별되어야 했다.

헤일리는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 당연히 작가로서 명성을 얻기 위해 그랬을 것이라는 답변이 먼저 들려올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불충분하다. 그는 자신을 아프리카 귀족혈통으로 해석했고, 조상을 보면 개인의 장래성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뿌리>가 부른 논란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먼저 늘 역사의 피해자로 그려지는 흑인이 백인들의 논리를 차용해 종족의 우수성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대수롭지 않게 담배연기를 뿜어내며 다리를 드러낸 유콘지역 매춘부의 모습.
대수롭지 않게 담배연기를 뿜어내며 다리를 드러낸 유콘지역 매춘부의 모습.

헤일리의 과시욕이 빚어낸 참사였다고는 하나, 이 메시지는 제 3세계 사람들에게 미국의 흑인과 백인이 다른 점은 피부색 이외에는 없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알려준다. 원래 미국 문화의 역동성은 백인과 흑인이 같이 거주하면서부터 생겼다는 게 정설이다. 미국이 자랑하는 재즈도 흑백 혼거라는 특성 덕택에 발생했다. 그렇지만 지금도 흑인은 항상 억압받는 존재로 분류된다. 과연 그럴까? 제 3세계 민중에게도 미국의 흑백이 다른 무게로 인지될까? 흑인 차별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지만, 미국 사회를 흑백이란 이분법으로 재단하긴 어렵다. 그보다는 흑백이 중층적으로 서로에게 깊이 침윤돼 있으며, 때에 따라 닮은 꼴로 나타난다고 보아야 한다.

인디언, 흑인에 이어 미국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세 번째 열쇳말은 이른바 백인 하층민을 뜻하는 '화이트 트래쉬(white trash)'다. 레드넥(redneck) 크래커(cracker) 등으로 불리는 이들은 미국의 근간을 유지하고 있지만 늘 궁핍과 무질서에 시달리는 종족(?)이다.

미국 역사속의 파워엘리트는 그동안 이들을 달래고 회유하며 거짓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방법으로 나라를 이끌어왔다. 세상 어디에나 있을 법한 계급 간 차이가 미국에는 없다는 식으로 이들을 속였다.

이런 기만에 따르면 하층 계급 뿌리에서 탈출한 비교적 적은 수의 성공한 사람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본보기로 거론된다. 마치 밑바닥에 있는 어느 누구든 똑똑하고 근면하게 일하고 절약하고 저축한다면 똑같은 성공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양 이야기한다. 그러나 프랭클린이란 '낱알 하나'에서 자수성가한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이 나올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프랭클린은 자신이 식민지에서 성공하기 위해 든든한 후견인을 필요로 했다.

품종, 혈통, 교배 같은 육종 관련 언어들이 명색이 공화국이란 미국에 지금도 공공연히 쓰이고 있다. 공화국이 사람들의 기대와 예상대로 평등을 위한 것이었다면 어떻게 이런 언어가 그렇게 호소력을 가질 수 있을까?

품종이나 혈통 등을 이야기 하면 폭넓게 퍼진 불평등이 쉽게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이는 사람들을 여러 범주로 나누고 계급 특권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레이건 정부가 표방한 경제정책 '레이거노믹스'하에서 부유층에 대한 세율이 극적으로 낮아졌을 때 뉴욕 주지사 마리오 쿠오모는 198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처음부터 자신은 일종의 사회다윈주의, 즉 적자생존을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강자에게 신경 쓰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며, 나머지는 경제적 야심과 자선으로 해결되기를 바라야 한다고 말입니다. 부자를 더욱 부자가 되게 만들어라. 그러면 거기서 떨어지는 떡고물이 중간 계급, 그리고 중간 계급이 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할 것입니다."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라고 자처하지만 대다수가 평등에는 크게 신경을 써본 적이 없는 그런 나라다. 혈통이란 그렇게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를 가진 유사 귀족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사회적 힘을 확고히 할 방법을 찾는다. 지금도 우리는 상류층 인사들이 실력이나 재능 없이도 상속재산에 따라 지위를 얻는 모습을 본다.

백인 하층민은 끊임없이 세뇌를 당하면서도 이같은 불평등에 강한 적개심을 드러내곤 했다. 하지만 그들은 불평등을 체감하면서도 이를 뛰어넘을 동력을 만들지 못했다. 그러다 드디어 그들을 포획한 이를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도널드 트럼프다.

트럼프는 본질적으로 조지 W 부시, 찰리 쉰, 패리스 힐튼 같은 '돈 많은 2세들'과 궤를 같이한다. '러스트 벨트(rust belt 쇠퇴한 공업지대)'와 농촌 오지에 주로 거주하는 화이트 트래쉬는 솔직히 그에게는 그냥 써먹기 좋은 카드에 불과하다. 이들이 지닌 적개심을 워싱턴 정치인들에게 들이댈 수 있으니 이 아니 좋은가?

대선이란 이벤트가 사라지면 트럼프가 이들을 헌신짝 버리듯 할 것이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지만 그들은 트럼프에게 열광한다. 파워 엘리트가 화이트 트래쉬를 기만한 역사가 그들에게 뿌리 깊게 박혀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미국이다.

 

참고자료

낸시 아이젠버그 지음 / 강혜정 옮김 <미국 400년 계급사> 살림

새디어스 러셀 지음 / 이정진 옮김 <불한당들의 미국사> 까치

앙드레 모로아 지음 / 신용석 옮김 <미국사> 김영사

찰머스 존슨 지음 / 이원태 외 옮김 <블로우백> 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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