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는 기후변화를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왜냐면 코로나19는 언젠가 지나갈 거라고 생각하지만, 기후변화는 티핑포인트를 넘어가면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거든요. 그래서 세계의 많은 나라가 '야! 코로나도 경제에 이렇게 심각한 영향을 주는데, 기후변화가 발생하면 정말 다 죽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누가 한 말일까? 환경단체 활동가의 말처럼 보이지만, 놀랍게도 이윤 추구의 최일선에 있는 기업인의 말이다. 바로 현대자동차 김세훈 전무의 강연 중 한 대목이다.그는 이제 새 패러다임으로 세계 산업구조를 바
내가 참여하고 있는 한 모임은 며칠 전 줌(Zoom)으로 화상 송년회를 열었다. 회원들은 미리 받은 먹거리 꾸러미를 풀어 맥주를 마시며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으로 얼굴을 마주했다. 원래 공부 모임이다 보니 한 시간은 화면공유 기능을 통해 파워포인트를 보며 강의를 들었고, 이후엔 각자 근황과 내년 계획을 나누며 회포를 풀었다. 세 시간 정도 걸렸는데, 술집에서 왁자지껄 보내는 송년회보다 오히려 의미와 재미가 더했다.코로나19는 올 한 해 우리 일상에 많은 변화를 줬다. 한 지인은 요즘 웬만한 회의도 줌이나 구글 미트(Meet)로 한단다.
'마산 4·11민주항쟁은 4·19혁명의 첫날입니다.' 이 문구에 3·15의거기념사업회(3·15사업회)가 발끈했다. 알다시피 4월 11일은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왼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모습으로 떠오른 날이고, 분개한 마산시민이 총궐기해 이승만 독재를 붕괴시킨 계기가 되었다. 3·15사업회 측이 발끈한 이유는 이랬다. "4·11이 첫날이라면 3·15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이냐?" 이후 이 단체 김장희 회장과 해당 문구를 쓴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 김영만 상임고문이 9차례에 걸쳐 지상논쟁(경남도민일보)을 벌였고, 급기야 지난 6일
한동안 페이스북에 아무런 글도 올리지 않았더니, 몇 지인들로부터 '뭔 일이 있느냐'는 문의를 받았다. 그러고 보니 두 달째 내 페이스북은 멈춰 있다.첫 계기는 지난 5월 '윤미향 사태'였다. 아니 정확히는, 윤미향의 죄를 미리 단정해놓고 그를 향해 독기 서린 증오 글을 올린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받은 충격 때문이었다. 그들이 윤미향을 증오한 근거는 당시의 언론보도였다. 내가 믿고 존경해왔던 분들이었고, 평소 누구보다 조중동류의 보도 행태에 분개해왔던 이들이어서 충격이 더했다. 두 달 뒤 박원순 사건 때도 그랬다. 정확히 밝혀진 건 아
모처럼 반가운 소식 하나 알려드립니다. 지난달 이 지면을 통해 보도연맹 민간인학살 유족 황점순·이귀순 할머니 이야기를 전해드렸는데요. 억울하게 죽은 남편의 누명을 벗겨달라며 제기한 형사 재심청구 소송이 검찰의 재항고로 인해 7년째 대법원에 계류 중이며, 망백(望百)이 넘은 할머니들이 끝내 판결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탄식이었죠.그 후 창원유족회 노치수 회장도 대법원에 호소문을 냈더군요. "특히 4명의 피고인 중 제일 위급한 상황에 놓여 있는 '망 이용순의 처 황점순 할머니'는 돌볼 가족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노파로 지금
'따옴표 저널리즘' 혹은 '받아쓰기 보도'라는 말이 있다. 누군가의 말을 큰따옴표 속에 그대로 옮겨 적어 보도하는 것을 말한다. 세월호 전원구조 오보나 최근 김정은 수술설 사망설 오보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언론이라면 응당 거쳐야 할 사실 확인 과정은 없다. 그냥 '누가 이렇게 말했다'고 대문짝만하게 보도한 후 '아니면 그만'이다. 무책임한 보도의 전형 중 하나다.그러나 적어도 '따옴표 저널리즘'은 기사 속의 말이 발화자의 워딩 그대로라는 전제가 있다. 하지도 않은 말을 기자가 지어냈거나 왜곡·조작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작
"다 너 때문이야, 나와 딸이 감염된 건, 다 너 때문이라고." 윤다혜 기자가 2월 13일 송고한 기사의 첫 문장이다. 기사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중국 저장성에 위치한 '코로나19' 격리 병실에 울린 여성의 외침엔 원망이 가득했다. 아내와 딸을 감염시킨 장본인은 의사로 일하고 있던 남편 양모 씨였다. 그는 후난성과 후베이성이 접하고 있는 작은 도시의 의사였다."좀 어이없지 않은가? 뉴스 발신지가 '서울=뉴스1'으로 되어 있는 걸로 보아 윤다혜 기자가 중국 특파원도 아니고, 기사 속 그 작은 도시의 격리병실을 방문취재한
포털 다음이나 네이버 검색창에 '친독재'라는 키워드를 넣어본다. '다음 책'에서는 유일하게, '네이버 책'에서는 6권의 책 중 맨 위에 가 나온다. '친일'이라는 키워드를 넣으면 약 70종의 책이 나오는데, 물론 그 속에도 이 책이 포함되어 있다.클릭하면 예스24, 교보문고, 알라딘 등 8개 인터넷서점에서 판매 중이라는 안내와 함께 책 소개, 저자 소개, 목차, 출판사 서평 등이 펼쳐진다.이 책에는 '열린사회희망연대 20주년 기념 백서'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백서(白書)'란 말은 17세기 영국
독자 여러분께 송구한 말씀 올립니다. 월간 가 이번호를 끝으로 발행을 중단합니다. 이번 12월호가 종간호(終刊號)인 셈입니다.2011년 10월호를 시작으로 8년 동안 여러분의 과분한 사랑을 받아왔지만 변화하는 매체 환경 속에서 계속 끌고 나가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8년간 나름 지역사회에 역할을 한 것도 있지만, 종간하는 마당에 자화자찬을 늘어놓진 않겠습니다.다만 8년 동안 누적된 수많은 경남 사람들의 이야기는 영원히 기록으로 남아 역사의 발자취가 될 것입니다.는 발행을 중단하지만 우리 지역 사람과 자원을 주요
"4283년(1950년) 7월 15일 당시 보도연맹원 360명을 마산형무소에서 수감한 후 특히 부녀자들에게 능욕을 자행하고…."(1960년 7월 마산피학살자유족회가 국가를 상대로 낸 고발장)"김영명(23) 씨는 미모가 뛰어났을 뿐 아니라 인간 됨됨이로 주위의 칭찬이 자자했던 교사였다. 지서장 김병희가 그녀의 미모를 탐내오다가 오빠를 빌미로 잡아가 강제로 능욕하고 학살해 버렸던 것이다."(1960년 국회 양민학살조사특위 조사기록)위에 인용한 글은 한국전쟁 당시 국군과 경찰의 민간인학살 과정에서 공공연한 성폭행이 벌어졌음을 보여주는 사
인터넷에서 정보를 검색하다 '디지털 향토문화 전자대전'이라는 걸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창원시의 경우 '디지털창원문화대전', 진주시의 경우 '디지털진주문화대전'이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되고 있지요.예를 들어 '민주성지 마산'이라는 문구를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면 네이버는 '지식백과', 다음은 '백과사전' 항목에 '격동의 한국 현대사와 함께 민주 성지가 된 마산'이라는 글이 뜹니다. 그걸 클릭하면 '디지털창원문화대전'의 해당 글이 열리죠.'마산 민간인학살'이라는 검색어를 넣어봅니다. 그러면 역시 백과사전 항목에 '마산 민간인 학살 진상 규
40여 명의 제주 4·3사건 피해자들이 16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옛 마산형무소 터(천주교 마산교구청 맞은편 주차장)를 찾아왔다. 이들은 일제히 묵념을 하며 제주 4·3사건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피해자들의 명복을 빌었다.그들은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대표 양동윤) 소속 부산·마산·진주형무소 수형희생자 순례단이었다. 이들 중에는 1948년 4·3사건 당시 계엄군에 붙잡혀 대구형무소와 부산형무소를 거쳐 1950년 10월부터 52년까지 3년간 이곳에 수감되어 있었던 현우룡(97) 씨도 포함되어 있었다.현
저는 9월 23일 현재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아침에 우연히 포털사이트에서 아주 불쾌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라는 제목의 조선일보 기사였는데요.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났던 화성시가 도시로 개발되면서 땅값이 크게 올랐고, 그 덕분에 '대대로 벼나 고구마 농사를 지으며 제법 많은 농지를 소유했던' 이 사건 용의자 이춘재의 모친(75세)도 '최소 수십억 원대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2010년에 100평 크기의 땅을 매각했고, 2014년에도 다른 토지 200
경남도민일보 창간 전 몸담았던 신문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워낙 낮은 임금에다, 그마저도 체불되기 일쑤였다. 편집권 독립은커녕 최소한의 자율성도 없었다. 중요한 기사를 빼거나 키울 권한은 모두 사장에게 있었다. 기자 출신이었던 사장은 직접 사회부장이나 편집국장을 맡기도 했다.내가 입사한 지 2년이 되었을 때 비밀리에 노동조합 결성이 추진됐다. 회사 인근 다른 빌딩 강당을 빌려 기습적으로 창립총회를 열었다. 나는 '무임소 부장'이란 직책을 맡았고, 수개월간 사측과 갈등을 거쳐 전면파업에 들어갔을 땐 사무국장이 되어있었다. 당시 노조가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을 아시나요? 그가 만주에 설립한 무장독립군 양성기관 신흥무관학교는요? 아시는 분이 많겠지요. 아마 이름 정도는 다들 들어보셨을 겁니다. 저도 딱 그 정도였습니다.사실 저는 제가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대해, 그리고 독립운동가와 친일반민족행위자들에 대해 남들보다 잘 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저희가 펴낸 (선안나 지음)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습니다.물론 저는 2016년 이 책을 출간할 때 책임편집자여서 원고 단계에서 내용을 읽었는데요. 최근 일본의 경제 도발을 계기로 '노(NO) 일본
"단언하자면, 일본 국민은 정신분열병을 앓고 있다." 일본 심리학자 기시다 슈는 에서 이렇게 진단했다. 일본인의 자아가 둘로 분열되어 있다는 말이다. 미국에 비굴하게 복종하는 모습은 그들의 외적 자아이며, 대미 선전포고로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것은 억압되어 있던 내적 자아의 발현, 즉 '발광'이라는 것이다.이런 분열은 일본 역사에서 100년 간격을 두고 일어난 두 번의 굴욕적 사건이 배경이다. 1853년 페리(흑선) 내항 사건과 1945년 미국의 원폭 투하에 의한 무조건 항복을 말한다. 패전 직후
지금은 안 하고 있지만, 지난 몇 년간 시간강사로 대학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전공과목이었는데요. 제 딴엔 최대한 지루하지 않도록 재미있게, 실생활에도 유용한 내용으로 강의하려 애썼지만 별 효과가 없더군요. 강의를 해보면 수강생들이 집중하여 듣고 있는지 아닌지를 딱 알 수 있는데요. 몇몇 소수를 제외한 대다수는 도무지 집중도 안 할뿐더러 마지못해 듣는 듯한 기색이 역력하더군요.저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이나 시민단체 등에서 외부강의도 종종 하는 편인데요. 거기서 만나는 성인 수강생들과는 확연히 비교되더군요. 물론 자발적으로 강의를 들으러 온
유튜브의 시대입니다. 서구세계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유튜브가 네이버와 모든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제친 지 오래입니다. 이제 뉴스도 유튜브로 소비됩니다. 그래서 모든 언론사가 유튜브에 뛰어들었습니다. 지역신문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나 100개가 넘는 지역신문 유튜브 채널 중 구독자 1만 명이 넘는 곳은 부산일보, 매일신문, 국제신문, 경기일보, 경남도민일보 정도가 고작입니다. 저희도 간신히 1만이 넘어 5위권 내에 들긴 했지만, 아직 정체성을 찾아 안착한 것은 아닙니다.그렇습니다. 채널의 정체성을 먼저 세워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스마트폰이 가져온 혁명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최재붕 성균관대 교수는 이 시대를 라는 책으로 설명하고 있는데요. ‘포노사피엔스’란 ‘지혜가 있는 폰을 쓰는 인간’이라는 뜻으로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를 지칭합니다.즉 이들은 스마트폰으로 쇼핑을 하고, 뉴스와 정보를 소비하며, 금융 생활까지 폰뱅킹으로 합니다. 최 교수는 이런 변화가 2007년 아이폰이 탄생한 후 불과 10년 만에 벌어진 일이며, 어떤 교육기관에서도, 방송사에서도 스마트폰을 사용하라고 교육하거나 계몽하지 않았다는 데에 주목합니다. 이런 자
1950년생 황정둘. 우리 나이로 70세. 그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가 죽었다. 20세였던 엄마 이귀순은 지금 90이 되었다. 열일곱 살에 마산 진전면 곡안리로 시집와 정둘을 임신했을 때 남편 황치영을 잃었다. 남편 나이는 22세였다. 남편은 성실한 사람이었다. 열서너 마지기 농사를 지으면서도 멀리 고성의 저수지 조성공사 현장까지 막노동을 하러 다녔다. 그러던 중 한국전쟁이 터졌고 7월초 진전지서에서 부른다며 집을 나선 후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내 지서 갔다가 저녁 때 (실안골에 풀어놓은) 소 찾아 오꾸마." 이것이 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