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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양지로 변한 남한산성…"이 또한 지나가리라"

[발길따라 내맘대로 여행] (91) 경기 광주 남한산성

최규정 기자 gjchoi@idomin.com 2016년 10월 28일 금요일

안개가 짙게 내려앉았다. 스산한 바람이 때때로 매몰차게 불어오는데도 무겁게 가라앉은 안개는 쉬 자리를 비키지 않는다. 세상이 흐릿하다. 굳건한 돌담도, 웅장한 산성도 안개 속에 몸을 숨겼다. '상그랍던' 머릿속이 차분해지는 기분이다.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 남한산에 있는 조선시대 산성, 남한산성. 남한산성은 조선 인조 때 완성되긴 했지만 이미 삼국시대부터 천연 요새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백제 시조인 온조의 왕성이었다는 기록이 있고, 나당전쟁이 한창이던 신라 문무왕 12년에 한산주에 쌓은 주장성이라는 기록도 있다. 고려 시대에는 몽고 침입을 격퇴한 곳이기도 하고 일제강점기엔 항일운동 거점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남한산성은 대부분 사람에게 '병자호란'으로 기억된다. 조선 인조 14년, 청나라 10만 대군에 밀린 조정은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 조선 왕실은 군사적 요충지로서 유리한 지형을 이용해 치열하게 청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그냥 산성 안에서 버티는 것을 택한다.

남한산성 행궁 옆 산책길. 안개 속에서도 가을색이 짙다.

왕자들이 피신해 있던 강화도가 함락되고 패색이 짙어지자 인조는 40여 일 만에 항복한다. 세자와 함께 성문을 열고 삼전도에 나가 치욕적인 항복을 한다. 이것이 1637년 '삼전도의 굴욕'이다.

남한산성 여행의 시작은 정문에 해당하는 남문이다. 남한산성 4개의 문 중에 가장 크고 웅장하다. 정조 3년에 기존의 성문 자리에 새로이 문로를 마련하면서 성문 이름을 '지화문(至和門)'이라 명하였다. 성벽에 올라서면 가파른 산 아래로 치욕적인 화친을 맺은 송파구 삼전동 일대와 유유히 흐르는 탄천이 저 너머로 아련히 내려다보인다.

굴욕적인 역사의 현장은 이제 편안한 산책길을 선물한다. 단풍 구경을 온 사람들의 감탄 어린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사람들은 '후두둑 후두둑' 흩날리는 낙엽 소리를 따라 안개 속으로 걸어간다.

남한산성 산행은 크게 5가지 코스로 나뉘지만 구간구간 샛길이 많아 자신에게 맞는 길을 선택해서 걸으면 된다.

남한산성 남문.

남한산성행궁(입장료 어른 2000원, 청소년 1000원)은 남한산성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남한산성 행궁 정문 한남루 앞에 섰다. 남한산성행궁은 전쟁이나 내란 때 후방의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한양도성의 궁궐을 대신할 피난처로 사용하려고 인조 4년 남한산성과 함께 건립됐다. 다른 행궁과 달리 종묘와 사직에 해당하는 좌전과 우실을 갖추었다. 유사시 임시수도 역할을 했던 매우 중요한 곳이다. 행궁 속 뚜벅뚜벅 걷는 길은 잔뜩 가을을 머금었다.

왕이 백성을 버린 슬픈 역사가 서려 있는 곳. 수천 년이 흘러도 요새는 묵묵히 자리를 지켰고, 백성은 서럽게 살아남았다.

<남한산성 만해기념관>

행궁을 나와 오른쪽으로 가면 만해기념관이 나온다. 만해 한용운 선생의 뜻을 기리는 전당이다. 1981년 10월부터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심우장에서 10년 동안 운영하던 것을 1990년 5월 남한산성으로 이전 신축했다.

한용운 선생은 일생을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했고, 말년에 이르러 비로소 서울 성북동에 집 한 칸을 갖게 됐다. 그게 바로 조선총독부와 마주 보기 싫어서 북향으로 고쳐 지은 것으로 유명한 '심우장(尋牛莊)'이다. 입장료 어른 2000원·청소년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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