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가축 매몰 100곳 찾아
썩은 땅 기록하고 여러 질문 던져
가축매장 동원된 사람들 인터뷰도

지난달 초부터 아프리카돼지열병과 관련한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의심신고, 방역 안간힘, 발병지역 이동제한 유지, 그리고 함께 나온 단어가 있다.

살처분. 가축 전염병 만연 방지를 위한 예방법 중 하나로 감염 동물 및 접촉 동물 그리고 전염 가능성이 있는 동물 등을 죽여 처분하는 제도. 법률에 권고된 살처분 방식은 안락사 후 소각이나 매몰이다. 그러나 현실은 생매장이었다.

우리는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일을 기억한다. 트럭에서 가득 실려온 돼지들이 구덩이 속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돼지는 공중에서 버둥거리며 비명을 질러댔다. 수천 마리의 오리와 닭들이 뒤뚱뒤뚱 쫓기다 구덩이 속으로 후드득 굴러 떨어졌다. 영문을 모른 채 두리번대던 동물들 위로 흙더미가 쏟아졌다. 당시의 충격은 세월과 함께 희미해졌고 당장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저 무심해졌음을 고백한다.

2010년 구제역 사태로 소와 돼지 347만 9962마리가 산 채로 땅에 묻혔다. 구제역은 그해에만 세 차례 발생했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그해 겨울,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해 이듬해 5월까지 648만 마리의 닭, 오리 등 가금류가 살처분됐다. 병이 들었든, 멀쩡하든 살아있는 동물을 묻으려고 전국 4799곳에 매몰지가 조성되었다. 그리고 3년 뒤, 4799곳의 매몰지가 고스란히 사용 가능한 땅이 되었다. <묻다>의 저자 문선희는 문득 궁금해졌다. 정말 사용 가능한 땅이 되었을까?

▲ 〈묻다〉문선희 지음
▲ 〈묻다〉문선희 지음

이 책은 이런 의문에서 출발해 2년 동안 매몰지를 쫓아다니며 남긴 기록이다.

"비교적 가까운 매몰지를 찾아갔다. 갑자기 물컹, 하고 땅이 꿀렁거렸다. 그것은 눈이나 진흙을 밟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그리고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며칠 뒤 다시 그곳을 찾았고 땅을 자세히 쳐다봤다. 그것은 곰팡이였다. 곰팡이는 모래와 흙더미를 부둥켜안고 억세게 퍼져 나갔다."

이대로 눈을 감으면 두고두고 목에 걸린 가시가 될 것 같았던 저자는 전국에 있는 매몰지 4799곳 중에서 100곳을 무작위로 골랐다. 적어도 100곳 정도는 직접 확인한 후에 입을 열든 닫든 하기로 마음을 먹고 현장을 찾아 나섰다.

살처분 매몰지를 다니며 사진을 찍고 주변 환경을 살폈다. 이 과정에서 지금의 대량 살처분 방식이 합당한지, 가축 전염병의 예방과 대처법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전염병이 시작되면 살처분밖에 답이 없는지에 관한 질문으로 이야기를 확장한다. 전시회를 열면서 당시 살처분에 동원됐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상처를 마주한다.

▲ 작가 문선희가 동물살처분 이후 현장을 찾아 찍은 토양 사진들. /책공장 더불어 블로그
▲ 작가 문선희가 동물살처분 이후 현장을 찾아 찍은 토양 사진들. /책공장 더불어 블로그
▲ 작가 문선희가 동물살처분 이후 현장을 찾아 찍은 토양 사진들. /책공장 더불어 블로그
▲ 작가 문선희가 동물살처분 이후 현장을 찾아 찍은 토양 사진들. /책공장 더불어 블로그

"분명 합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살처분만이 유일한 길이며, 최선이었을 것이다. 정부와 전문가들이 뼈아프게 내린 용단이었을 것이다. 물론 농장주인도 수의사도 공무원도 모두가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삭이고 있었다. 현장에서 직접 그 일을 감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섣부른 의문을 갖는 것조차 송구스럽다."

매몰지를 찾아다니는 동안 저자는 이 말을 주문처럼 되뇌었다. 그러면서도 살처분 정책 어디에도 생명에 대한 배려는 없었던 현실을 마주한다. 수지타산을 명분으로 수백만의 동물을 산 채로 땅에 파묻었다. 구덩이를 팠고 비닐을 깔고 동물을 밀어 넣었다. 비닐을 덮고 석회와 흙 등으로 밀봉했다. 동물들은 고통 속에 죽어 갔고, 땅은 심하게 오염됐다. 그 비닐이 온전히 밀봉되었어도, 동물들의 몸부림 등으로 밀봉에 실패했더라도 둘 다 환경문제를 일으킬 것이 뻔했다. 죽음을 삼킨 대지는 그 죽음을 토해내고 있다. 우리가 아끼고 지킨 것은 오직 시간과 비용뿐이었다.

책 표지 사진부터 찬찬히 들여다보라. 책의 시작과 함께 당최 알 수 없는 여러 사진을 들여다보고, 그 옆 숫자도 되뇌어 보라.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지금 우리가 동물에게, 대지에, 그리고 자연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경악할 것이다.

이 책은 인간의 욕심과 경제논리에 '묻혀' 산 채로 땅에 '묻어버린' 수많은 생명이 '묻힌' 땅 위에서 '묻는다'. 우린 정말 괜찮은 거냐고.

책공장 더불어. 181쪽. 1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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