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로 사는 주인공 통해
무례하고 모순된 세상 고발
주연배우 강렬한 감정연기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DC 코믹스 최고의 악당이자 배트맨의 영원한 숙적, 조커. 기괴한 광대분장과 잔인한 광기로 혼란한 고담시를 더욱 혼돈으로 몰아넣었던 악당.

앨런 무어가 쫓은 조커의 행적 <배트맨 : 킬링 조크>의 명대사 "내게 과거가 있다면 여러 선택지가 있는 게 좋겠군"에서 알 수 있듯 그는 기원을 할 수 없는 악당이었다.

그리고 여기 '가장 어두운 전설의 시작'을 알리는 <조커>(감독 토드 필립스)가 호아킨 피닉스를 통해 현실을 밟고 새롭게 탄생했다.

아서(호아킨 피닉스)의 꿈은 머레이 프랭클린(로버트 드니로) 같은 유명한 코미디언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홀어머니 페니 플렉(프란시스 콘로이)을 모시고 살아가는 고담시의 광대에 불과하다.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모욕당하는 게 일상. 여기에 웃음을 제어할 수 없는 신경병 증세는 그를 사회에서 더욱 고립시킨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하철에서 큰 싸움이 일어나고 이를 계기로 아서의 인생은 전환점을 맞이한다.

제76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조커>는 눈은 울고 있지만 입은 한껏 웃는 광대 아서를 통해 무례하고 모순된 세상을 고발한다.

▲ 영화 <조커> 주요 장면. /스틸컷
▲ 영화 <조커> 주요 장면. /스틸컷

즐겁고 행복할 때 터져 나오는 웃음이 그에게는 통제할 수 없는 병이다.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터져 나오는 병적 웃음, 그에겐 웃는 것 자체가 때론 고통이다. 그런 그의 병마저 세상은 여유롭게 지켜봐 주지 않는다. 되레 그의 병을 무례하고 혐오스럽게 바라보며 멸시하고 외면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 상담사는 기계적인 질문이나 해대며 진심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네가 참 마음에 든다"는 사장은 그에게 해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해고한다.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라며 건넨 동료의 총 덕분에 그는 정말 좋아하는 직업을 잃게 된다. 그의 자리는 그 친구가 대신 차지한다.

아서를 '해피'라고 부르는 엄마. "넌 언제나 웃는 아이였어. 이제 세상을 웃게 해야지"라고 말했던 엄마는 정작 어릴 적 자신을 학대했으며, 그녀의 여러 애인으로부터 학대를 방치했다. 유일하게 동경했고 마음속으로 의지했던 머레이마저 그를 조롱한다. 시청률을 위해 허락도 받지 않고 자신을 이용하고 그의 유머를 비웃는다.

이처럼 사회부적응자로 살아가는 아서에게 세상은 '너의 불행의 끝은 거기가 아니야'라고 속삭이듯 치밀하고도 촘촘하게 절망의 나락으로 몰아넣는다. 상처 가득한 쓸쓸하고 앙상한 등에는 분노와 증오가 싹튼다.

"사람을 광기로 빠지게 하는 건 말이야. 단 하루, 단 한 가지 안 좋은 날부터 시작하는 거야"라는 <배트맨 : 킬링 조크> 속 말처럼 동료에게 건네받은 총과 함께 어두운 자아가 점점 그를 잠식해 나간다.

우발적으로 저지른 살인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등 경악에 가까운 언론의 반응에 아서는 희열을 느낀다. 극심한 양극화와 가난한 자들에 공감하지 못하는 부자들의 말과 행동에 분노한 시민들의 이유 없는 추종에 아서는 폭주한다. 너무나 현실적인 사회 현상에 발을 딛고 탄생한 <조커> 덕분에 미국이 영화 개봉과 함께 긴장감에 휩싸였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을 듯하다.

그토록 바랐던 대중의 관심이 살인 이후 쏠리는 현실에서 아서는 피로 광대 웃음을 그리며 사람들의 환호에 처연하게 응대한다.

신경질적이고 미치광이로 변해가는 조커는 사과 한 알로 하루를 버티며 만들어낸 바짝 마른 몸의 호아킨 피닉스가 아니면 상상하기 어렵다. 모노드라마에 가까운 122분 동안 그는 혹독하게 조커가 됐고, 관객마저 조커의 감정에 이입하게 하며 끝내 조커의 광기를 설득해 낸다.

특히 조명이 불규칙하게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하는 지하철 안에서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모를 혼동의 연기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수만 가지 표정으로 관객을 압도하고 망상에 사로잡혀 예측할 수 없는 그의 행동은 보는 이마저 힘들게 한다. 공동화장실에서 홀로 춤추는 장면 등 몇 번의 춤사위조차 훌륭한 미장센, 음악 등과 만나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한다.

"나의 죽음이 내 삶보다 더 '가취' 있기를…."

타인은 아서에게 배려도 없고 무례했지만 관심은 주지 않았다.

<조커>는 수많은 질문을 던지며 쓰디쓴 여운을 남긴다.

도내 멀티플렉스 상영관 등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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