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내란 '제왕적 대통령제' 탓하며
국민의힘과 야권 일부에서 필요성 주장해
대통령 탄핵 심판 진행 중, 내란 진압 안 돼
논의 시점과 깊이에 부정적인 견해도 많아
대선 이재명 견제 수단화 전락도 경계해야
반헌법적·불법적 ‘비상계엄 선포’로 국민 일상을 무너뜨린 윤석열 대통령 내란 사태 이후 현행 대통령제 대안으로 개헌을 앞세운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은 당내 개헌특별위원회 가동을 천명했고, 야권에서도 비이재명(비명)계를 중심으로 개헌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대한민국헌정회 등 정치 원로들은 물론 시민사회도 국민주도상생개헌운동본부를 조직해 개헌을 추동하려 하고 있다. 이와 달리 탄핵 심판이 진행되는 등 ‘친위 쿠데타’ 성격의 윤 대통령 내란이 아직 완전히 진압되지 않은 상황에 개헌론이 발화한 건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국민의힘과 야권 일부의 개헌론 = 국민의힘은 개헌특위를 발족하고 6일 국회 부의장인 주호영 의원을 위원장으로 임명한다. 17일부터 3일간 국회에서 ‘국민 위에 군림하는 국가기관 정상인가’를 주제로 개헌 연속토론회도 연다.
조기 대선 국면 때 야권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김경수·김두관 전 경남지사도 각각 ‘계엄 방지 개헌’, ‘분권형 개헌’으로 논의에 군불을 때고 있다. 김경수 전 지사는 5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대통령 권한 분산만을 목적으로 한 ‘원포인트 개헌’을 주장했다. “제2 윤석열, 제2 계엄과 내란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해 국민 불안을 없애자”는 이유를 들었다.
김두관 전 지사는 ‘분권형 4년 중임 대통령제’를 내세우며 개헌론을 설파하고 있다. 선거법도 승자독식 구조인 소선구제에서 중대선거구제로 개정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와 이광재 전 국회 사무총장도 개헌을 말한다. 김 전 총리는 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탄핵의 강을 같이 걷는 세력들을 포괄하는 연합을 이룰 개헌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새로 만드는 대기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전 사무총장은 4일 누리소통망(SNS)에 “개헌 논의를 주도하면 대선 승리와 성공한 정부로 나아가는 길이 열린다”면서 “40일이면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 원로들과 시민사회서도 목소리 = 전직 국회의원 모임인 대한민국헌정회는 지난해 말부터 ‘선 개헌 후 대선’을 주장하고 있다. 헌정회 내 ‘나라를 걱정하는 원로 모임’은 3일 개헌 관련 3차 간담회도 했다. 이들은 5년 단임 대통령제를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 혹은 ‘내각제’로 전환하는 원포인트 개헌을 국회가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견해다. 개헌 국민투표는 선 개헌 후 정치 일정 원칙 아래 대통령 탄핵 심판 기간 중이나 늦어도 차기 대선 때 동시에 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국민주도상생개헌운동본부 추진위원회는 ‘국민주도 3단계 상생 개헌 전략’을 제시하고 이를 구체화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이들은 내란 사태 발발 원인이 ‘극단적인 양당제’에 있다 보고 있다. 이에 이를 혁파하는 동시에 △중앙집권적 제도→연방적 지방분권제 전환 △지역대표형 상원과 주민자치제 전면 도입으로 대의민주제에 직접민주제와 추첨민주제 접목 등을 주장한다.
3단계 실현 전략으로 △윤 대통령 탄핵 직후 국민발안 원포인트 개헌 1000인 선언 △대선 과정에 주요 정당과 대선 후보에 선거일과 동시에 원포인트 개헌 국민투표 요구 △헌법개정발안권 내용과 행사 근거인 ‘개헌절차법’ 제정을 제시했다. 이때 국민 주도를 실질적으로 담보하고자 개헌절차법 내에 시민의회(또는 개헌의회) 등을 거쳐 국민이 직접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도록 한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 = 개헌론은 윤 대통령 내란으로 드러났듯 9차 개헌으로 이룬 1987년 체제의 고질적인 문제인 ‘제왕적 대통령제’를 고치자는 움직임이다. 한데 이 전가의 보도와 같은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이라는 명분도 짚어 볼 필요가 있다.
12.3 내란 직전 정국을 보면 거대 야권은 헌법과 법률에 근거해 대통령을 견제할 국회 권력을 행사했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방송통신위원장, 행정안전부 장관, 수사에 미진한 검사들을 탄핵해 행정 업무를 중단시켰다. 감액안만 반영된 2025년 예산안도 통과시켰다. 당정은 ‘입법독재’라고 볼멘소리를 하고 정부는 25차례 거부권으로 응수했으나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그 ㅇ사이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공천 개입, 채 해병 등 특검법이 정부를 옥좼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향신문> 칼럼에서 “흔히들 우리 헌정의 권력구조를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단정하는데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 말고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그게 무슨 제왕적 대통령제인가”라고 되물었다.
김 교수는 우리 헌법을 ‘의회와 협치를 전제로 한 분권형 대통령제’라고 일컫는다. 윤 대통령 내란 행위는 정부 권력이 국회 권력의 합헌·합법적 전략을 견디지 못한 데서 비롯했다. 정치 경험이 없는 대통령이 국회 권력에 대항하다 실패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대통령 권력의 실체이기도 하다. ‘제도가 아니라 사람 문제’로 봐야 한다는 인식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퇴임 전 <JTBC>와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은 대통령 권한이 헌법이나 법률에 정해져 있다”면서 “중요한 권한이긴 하나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왕적 대통령제가 아니라 아주 민주적 대통령제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권위주의 유산에서 헌법이나 법률 권한을 넘어서 초법적인 권력을 행사한 것, 그것이 제왕적 대통령제라 프레임화해서 공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극단적 양당제’ 속에서 다수당이 모든 실권을 쥐는 ‘내각제’를 하자는 주장도 위험하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5분의 3 이상 의석을 갖고 있으면 위헌 가능성이 있는 법률을 통과시킬 수 있고 탄핵 소추권을 오남용할 수 있다”며 “통제받지 않는 국회를 향한 견제도 생각해야 한다”고 짚었다.
◇섣부른 개헌론 부른 속내 경계 = 박상훈 정치학자는 “현재 개헌이 충분한 논의 없이 붕 떠 있는 상태”라면서 “현행 대통령제 문제와 내각제나 의회중심제 등 정부 형태를 여야 간 개헌특위에서 논의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 국민이 내용을 충분히 알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개헌 추진을 논하기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다각적인 진단 없는 개헌론 발화는 유력 대권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견제하려는 시도로 여겨지기도 한다. 국민의힘은 물론 야권 내부에서 일어나는 개헌론도 같은 궤도상에 있다는 게 정치권 시각이다. 아직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이 진행 중이고 권한대행 정부의 잇따른 거부권 행사에서 보듯 ‘친위 쿠데타’는 현재진행형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국민의힘과 대한민국헌정회 등이 주장하는 내각제 개헌을 두고 “당면한 혼란 정국 안정의 길은 내란·외환 수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신속한 심리”라면서 “개헌론 자체가 음모이자 지금 개헌을 꺼내는 건 일종의 내란 동조”라고 지적했다. 내란 수습을 지연하려는 여권의 전략이라는 취지다.
개헌론자로 이름난 또 다른 민주당 의원은 “지금은 내란 세력을 척결하고 헌정 질서 회복이 먼저”라면서 국민 처지에서 개헌은 자칫 ‘배부른 소리’가 될 수 있음을 우려했다. 그는 “정치인들은 구조가 문제이고 개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국민 처지에서는 지금 ‘도저히 못살겠다’가 먼저”라면서 “개헌은 그다음 문제로 봐야 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헌법을 개정하려면 큰 산 3개를 넘어야 한다. △국회 재적 의원 과반수(151명) 또는 대통령 헌법개정안 발의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200명) 이상 찬성 의결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이 참여하는 국민투표 등이 헌법이 규정하는 개정 절차다. 국민 찬성이 과반이 돼야 비로소 개헌이 완성된다.
/김두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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