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추 손상 병원 70곳 거부...2시간 30분 만에 이송
중증 환자 가득 찬 응급실에 경증 환자도 발 동동
정부, 추석 비상 응급 대응 주간 지정에도 '미봉책'
"정부 땜질 처방 아닌 환자 피해 최소화할 대책 내야"
추석 연휴에 우려했던 응급실 이송 거부 사례가 잇따랐고, 경증 환자 대처 혼란 등 시민은 불안한 명절을 보내야 했다.
소방당국 설명을 종합하면, 추석 전날인 지난 16일 오후 10시 40분 50대 남성 ㄱ 씨가 창원시 진해구 화천동 한 건물 계단에서 굴러떨어졌다. 구급대원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ㄱ 씨는 팔과 다리에 감각이 없다고 말해 척추 손상이 의심됐다. 얼굴 부위에 길이 3㎝ 열상도 있었다.
하지만 ㄱ 씨는 곧바로 병원에 이송되지 못했다. 구급대원이 경남과 부산·울산지역 병원 70곳에 전화를 걸었지만, 받아주겠다는 병원이 없었다. 신경외과와 성형외과 진료가 어려워 환자 수용이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ㄱ 씨는 사고 발생 2시간 27분 뒤인 17일 오전 1시 7분에서야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로 옮겨졌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소방당국은 17일 오전 9시 20분 창원시 진해구 여좌동 한 주택에서 90대 여성 ㄴ 씨가 호흡곤란을 겪는다는 신고를 받았다. 경남과 경북지역 병원 18곳에 전화를 돌렸지만 의사가 없어 호흡기 내과 진료가 어렵다거나, 병상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환자 수용을 거부했다. ㄴ 씨는 신고한 지 1시간 48분 뒤인 오전 11시 8분께 김해 조은금강병원으로 이송됐다.
경증 환자들 또한 답답한 상황을 겪기도 했다. 김해 부곡동에 사는 이모(39) 씨의 9살 딸은 16일 늦은 밤부터 구토와 두드러기 증상을 보였다. 이튿날 이른 아침 응급의료포털 E-Gen에서 문 여는 병원을 검색해보니 응급실과 보건소뿐이었다. 응급실은 중증 환자 중심이어서 진료 대기가 길다는 생각에 보건소로 갔다. 하지만 보건소는 만성질환만 진료한다고 했다.
이 씨는 “추석 당일 문을 연다는 약국 또한 오전 11시에 시작해 몇 시간 동안 발만 동동 굴렀다”며 “경증 환자는 갈 곳이 없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11일부터 25일까지를 ‘추석 명절 비상응급 대응 주간’으로 지정했다. 연휴 기간 응급환자에 대비해 경남지역 응급의료기관 34곳에서 24시간 진료에 나섰다. 지난 설 연휴보다 병·의원과 약국 운영을 1.5배 이상 늘렸다. 하지만 의료 공백을 메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추석 당일인 17일 오후 10시 30분~11시 중앙응급의료센터 종합상황판을 살펴봤다. 창원시 기준으로 모두 8개 응급의료기관이 검색됐는데, 이 시간대 ‘심근경색’ 응급 진료가 가능한 곳은 3곳뿐이었다. 특히 ‘안과적 수술’을 요하는 응급 진료 가능한 의료기관은 한 곳도 없었다. 또한 삼성창원병원 경남권역응급의료센터에는 ‘의료진 부족으로 중증환자 수용 제한적’ ‘의료진 부족으로 외부기관 환자 제한적’이라는 메시지가 떠 있었다.
추석 연휴 동안 밥상머리 화두는 단연 ‘의료 대란’이었다.
김지곤(72·마산회원구 양덕동) 씨는 “명절에 친척들을 만나면 서로 아픈 곳 없는지부터 물었다”며 “지금 상황에서 아프면 작은 일도 큰일이 될 것만 같다”고 말했다.
정명보(30·김해시 장유3동) 씨는 “요양병원에 계신 할머니가 혈뇨 증상이 있어 연휴 일주일 전에 대형 종합병원 응급실에 다녀왔다”며 “이 때문에 ‘추석 연휴에 혈뇨 증상이 또 발생하면 어쩌나’ 가족 모두 노심초사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추석 연휴를 넘겼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라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정부는 응급실 과밀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방침으로 ‘한국형 중증도 분류체계’를 완화할 예정이다. 응급실에서 경증과 비응급 환자를 받지 않더라도 의료진이 책임지지 않게 된다.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사유도 늘어난다. 적절한 응급의료 행위를 할 수 없는 경우라면 정당한 진료 거부로 판단하기로 했다.
김윤(더불어민주당·비례) 국회의원은 17일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사직 전공의 수를 공개했다. 지난달 기준 사직 전공의는 1만 1732명에 달한다. 2021년 278명, 2022년 238명, 2023년 226명과 비교하면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 방침을 발표하고 나서 사직 전공의 수는 급증했다.
김 의원은 “정부는 지금의 의료대란에 따른 국민 고통과 환자 피해를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라며 “추석 연휴 진료비 3.5배 인상과 군의관, 공중보건의 동원 같은 땜질식 처방이 아니라 환자 피해를 최소화할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다솜 최석환 이승환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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