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차 병원 수소문 시간 허비
대전·인천까지 환자 보내기도
응급의료 취약지 14곳 더 심각

의료 공백이 반년 넘게 이어지면서 구급차 환자 이송 거부,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가 심각해지고 있다. 구급 대원들은 병원에서 환자 인계를 거부당할 때마다 치료 적기를 놓쳐 환자에게 치명적인 상황이 벌어질까 봐 전전긍긍한다. 구급대원들은 이 같은 상황을 초래한 가장 큰 이유를 역시 의료 인력 부족에서 찾는다. 

◇일상이 된 ‘응급실 뺑뺑이’ = 경남지역 119안전센터 구급대원 ㄱ(44) 씨는 매일같이 아픈 환자를 곁에 두고 거리를 떠돌며 시간을 허비한다.

전화를 10통 이상 할 때도 있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병원에서 시작해 대형 병원까지 모조리 전화를 걸어도 치료할 의사가 없다는 말이 먼저 돌아온다. 의사가 있어도 담당 분야가 아니라거나, 병상이 부족하다는 말도 자주 듣는다. 설명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환자 못 받아요”라고 말하는 병원도 있다.

긴박한 상황에서 응급실 근처에 닿고도 환자를 병원에 인계하지 못할 때도 있다. 이런 일을 겪으면 자연스레 언성이 높아진다. “환자를 받을 수 있으면서 왜 받지 않느냐”며 의료진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ㄱ 씨를 보기만 해도 인상부터 쓰는 의료진까지 있다.

119대원들이 3일 오후 응급환자를 창원시 의창구 파티마병원에 데려다주고 있다. /김구연 기자
119대원들이 3일 오후 응급환자를 창원시 의창구 파티마병원에 데려다주고 있다. /김구연 기자

그는 가까운 대학병원이 안과 진료가 필요한 환자를 받지 않아 대전·대구까지 간 적도 있다. 도내 의료기관에는 안과 당직 의사가 없어 치료를 할 수 없었다. 같은 문제로 다른 이송 담당 대원에게 맡겨 인천지역 병원으로 보내기도 했다.

“환자 증상을 보면 어느 병원 무슨 과로 보내면 될지 대충 머릿속에 그려지는데, 전화를 걸면 병원에서는 ‘먼저 온 환자가 있어서 안 된다’라고 할 때도 많고요. 중증도에 따라 환자를 봐야 하는 건데 못 받는다는 말만 하니 얼마나 답답해요. 여러 근무지 중에서도 특히 하동에서 일할 때는 진주나 창원권으로 환자를 이송하는 날이 많아 한 번 출동했다가 돌아오면 2~3시간은 족히 걸렸습니다. 내 가족이 겪을 수도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죠.”

◇환자 이송 거부에도 속수무책 = 국립중앙의료원이 지난해 12월에 낸 <2023년 의료취약지 모니터링 연구보고서>를 보면 경남 응급의료취약지는 통영·사천·밀양·거제·의령·함안·창녕·고성·남해·하동·산청·함양·거창·합천, 이렇게 14곳이다. 여기에 의정 갈등에 따른 의료 공백까지 더해졌다.

또 다른 도내 구급대원 ㄴ(33) 씨는 통영에서 근무한다. 이곳은 대형 병원이 하나도 없고, 응급실을 갖춘 병원도 한 곳뿐이어서 진주·창원으로 자주 나갈 수밖에 없다.

3일 오후 119대원들이 응급환자를 창원시 의창구 파티마병원에 데려다주고 있다. /김구연 기자
3일 오후 119대원들이 응급환자를 창원시 의창구 파티마병원에 데려다주고 있다. /김구연 기자

 

“응급실이 있는 병원에는 항상 사람이 많고, 자리가 비어도 여건이 되지 않는다며 받지 않을 때가 많아요. 보통 만나는 환자가 10명이면 경증인 경우가 8명 정도거든요. 그래도 환자를 받을 것 같은데도 안 받으니 통영지역 응급환자는 다 다른 지역으로 옮겨진다고 봐야 해요. 하루 1~2건씩 꼭 길거리나 병원 근처에서 전화를 돌리는 일이 생기고 있어요.”

특히 심각한 건 중증 응급 환자다. 그는 2주 전쯤 뇌졸중 증상이 명확한데도 신경외과 의사가 병원에 없어 대학병원이 아닌 창원에 있는 민간 병원으로 환자를 옮겨야 했다. 이송에 1시간 이상이나 소요됐다.

가족여행 중 돌에 찍혀 넷째 발가락이 절단된 환자는 전화만 10번가량 돌리다 부산지역 병원으로 옮길 수 있었다.

창원지역에서만 일한 구급대원 ㄷ(43) 씨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 구급차에서 만난 환자나 보호자들과 이야기해보면 병원이 안 구해져도 구급대원 욕을 잘 하지 않아요. 이제는 다들 왜 지연되는지 아니까. 보호자들은 ‘돈이 100만 원이 들고 200만 원이 들어도 아프면 가야죠’라고 이야기하거든요. 명절이 되면 환자가 평소보다 1.5배에서 2배 정도는 더 몰릴 건데 걱정입니다. 뺑뺑이는 사람 생명이 걸린 문제입니다. 의료 정상화가 하루빨리 이뤄져야 해요.”

/최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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