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클래식 이야기 -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
1941년부터 신년 첫 날 공연
왈츠·행진곡 위주 선곡이 전통
올해는 브루크너 발자취 따라가
변함 없는 슈트라우스 곡 대미
올해도 어김없이 음악의 도시 오스트리아 빈으로부터 새해 인사가 전해져 왔다. 1941년 이후 매해 1월 1일이면 빈 음악협회 황금홀에서 열리는 신년 음악회. 무려 130개국에 생중계,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클래식과 관련된 가장 유서 깊은 행사다. 국내에서는 시차로 인하여 매년 1월 1일 저녁 7시 시작되는데 국내의 극장에서 생중계로 접할 수 있다.
이 행사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모든 레퍼토리가 왈츠나 폴카 등의 춤곡이나 행진곡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하니 당연히 왈츠의 왕인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작품이 주를 이룬다. 근래에 들어 새로운 작곡가를 발굴하여 소개하려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슈트라우스 일가의 작품 비중이 높다. 이러한 협소한 양식과 레퍼토리에 매년 열리는 행사이다 보니 오랫동안 지켜본 이들에게는 그게 그거 같을 수도 있다. 초청받은 지휘자에게도 상당한 스트레스일 것이다. 뭘 더 어찌해 보기 힘든 레퍼토리에다 왈츠가 이미 핏속에 녹아있는 빈 필 단원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매년 기대가 되는 것은 이번엔 어떤 새로운 작곡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을까이며 빈 필이라야 가능한 들었다 놨다 밀당 왈츠의 절묘한 매력 때문이다.
올해는 프라하 태생의 오스트리아 작곡가 ‘카를 콤자크’(Karel Komzák)의 ‘대공 알브레히트 행진곡’(Erzherzog Albrecht-Marsch, marche, op. 136)으로 그 문을 열었다. 다음으로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Johann Strauss II)의 ‘비엔나 봉봉’ (Wiener Bonbons, valse, op. 307)이 이어졌다. 소위 영광의 300번 대 중 한 곡으로 1부 순서 중 가장 귀에 익은 곡이다. 이후 3곡이 더 이어지다 1부가 끝나고 막간(Entracte)이 찾아온다. 그리고 이 막간의 시간이 허투루 지나지 않는다. 빈 필 측은 매년 주제를 선정, 미리 제작한 영상을 통해 제법 긴 시간을 할애, 음악 여행을 떠나도록 한다. 작년의 주제는 오스트리아가 보유한 유네스코 유산 탐방이었으며 경이로운 자연과 유산을 배경으로 국립발레단이 선보인 발레의 순간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이때 강효정 발레리나가 등장하여 관심을 모았으며 빈 필 신년 음악회에 등장한 최초의 한국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렇다면 올해의 주제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탄생 200주년을 맞은 작곡가 ‘브루크너’(Anton Bruckner·1824~1896)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정이다. 아마도 올해는 다른 해에 비해 브루크너의 음악을 접할 기회가 많을 것임이 분명하다. 영상은 성 플로리안 수도원 소년합창단의 개구쟁이 소년 2명이 브루크너와 관련된 장소를 찾아다니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성 플로리안 수도원은 브루크너가 교사로 그리고 그곳의 오르가니스트로 봉직했던 곳으로 작곡가의 초기 음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곳이다.
먼저 들려오는 것은 브루크너가 작곡한 오르간 곡이다. 아름다운 호수를 배경으로 웅대한 선율이 울려 나와 눈과 귀가 함께 즐겁다. 다음 장소는 ‘린츠’로 이어진다. 브루크너와는 긴밀한 관계가 있는 도시로 브루크너 협회가 이곳에 있다. 이때를 배경으로 장엄하게 뿜어 나오는 사운드는 마치 지구를 떠나 광활한 우주를 바라보는 듯 장대하다. 이는 교향곡 8번 마지막 악장의 피날레로 그의 작품 중 많은 사랑을 받는 지점이다. 이렇듯 브루크너의 작품 중 정점은 종교곡과 더불어 11개에 달하는 교향곡에 있다. 지점이란 표현을 쓴 것은 그의 교향곡들이 지닌 상당한 시간 때문으로 거의 말러와 비견할 만한 길이다. 하지만 마지막 번호가 9번이라는 것을 제외하자면 (앞서 11곡이라고 했으나 9번이 마지막인 것은 습작인 00번과 0번이 있기 때문이다) 말러의 교향곡과는 그 결을 완전히 달리한다.
말러가 가로 나열이라면 브루크너는 세로 나열로 음이 겹겹이 쌓여 짱짱하게 뻗어나가는 악상으로 관악의 활약이 두드러지니 더욱 강렬히 다가온다. 한마디로 구조적이고도 건축적인 장대함이다. 이는 음악적으로 바그너에게 큰 영향을 받은 결과다. 하지만 이로 인해 바그너와 대립 관계에 있던 브람스 추종자들에게 촌뜨기 작곡가로 폄하되기도 한다. 교향곡 3번은 ‘바그너’라는 제목이 달렸는데 이는 브루크너가 바그너를 얼마나 존경했나를 보여주는 듯하지만, 오히려 반대파들이 브루크너를 조롱하기 위해 붙인 제목이라는 설도 있다. 이처럼 작곡가로서의 그의 행보는 순탄치 못했다. 오히려 오르가니스트로서의 명성이 대단하여 해외에서 열리는 국제 오르간 콩쿠르에 오스트리아 대표로 참가할 정도였다.
그런 그에게 작곡가로서의 첫 성공을 안겨준 곡은 교향곡 제7번 (Symphony No. 7 in E major)이다. 라이프치히에서 초연이 이루어진 것이 1884년으로 그의 나이 60이었으니 상당히 늦었다. 국내의 애호가들에게도 7번 교향곡은 친숙하다. 최근 이순신 3부작의 대미 <노량: 죽음의 바다>가 개봉되어 전작의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미 20년 전 이 위대한 성웅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가 인기를 끈 바 있다. 바로 <불멸의 이순신>이며 배우 김명민을 국민배우로 올려놓았었다. 1년여 동안 무려 104회에 걸쳐 방송, 최고 시청률 32.2%를 기록한 대작이다. 당시 음악감독 원일이 작곡하여 장면을 도왔던 음악들도 큰 관심을 끌었는데 현재도 사극 최고의 OST라는 평가다.
이와 함께 출정의 비장한 순간이면 어김없이 울려 나오던 선율이 있었으니 바로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의 2악장이다. 바그너의 죽음을 예감한 브루크너가 그를 애도하기 위하여 작곡한 악장으로 알려져 있으며 ‘바그너 튜바’를 사용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바그너 튜바는 바그너가 자신의 작품 ‘니벨룽겐의 반지’에 사용하려 고안한 악기로 이름과 달리 호른류에 속한다. 튜바와 호른의 중간 정도의 소리를 내며 그 음색이 음울하여 비장함을 더하는 데 효과적이다.
브루크너는 제7번 교향곡에 이르러 이 악기를 처음으로 사용하였는데 이로 인해 성공하였다고 여겼는지 이후 작곡한 모든 교향곡(8번, 9번)에 사용한다. 영상에서도 두 소년이 협력하여 이 악기를 부는 장면이 나오는데 모르고 본다면 지나치겠지만 알고 본다면 상당히 의미가 있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흘러온 영상은 ‘성 플로리안 수도원’ 소년합창단의 음성으로 층계송 ‘Locus iste’(1869)을 들려주며 막을 내린다. ‘이곳은 거룩한 곳’이라는 제목이다. 그리고 화면에 비치는 관. 바로 브루크너의 관이다. 브루크너는 그의 유언에 따라 자신이 연주하던 오르간 밑에 묻혔다. 태어난 곳은 아닐지라도 음악가로서의 시작점에 돌아오고 싶었던 것일까? 이러한 생각에 울컥하여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렇게 2부가 시작되고 흥겨운 선율이 이어진다. 올해의 마지막 곡은 ‘요제프 슈트라우스’ (Josef Strauss·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동생)의 ‘데릴린 왈츠’(Delirien-Walzer, valse, op. 212 Rappels)다. 카라얀을 비롯한 많은 지휘자들이 선택했던 인기 레퍼토리 중 하나다. 그리고 이어지는 앙코르. 1959년 이후 지금까지도 변치 않는 앙코르의 전통은 2005년 남아시아 대지진의 참사 때를 제외하곤 계속하여 이어져 오고 있으며 올해도 변함이 없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와 ‘라데츠키 행진곡’이 그것이다.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라데츠키’도 좋지만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가 지닌 의미는 크다. 제대로 된 새해 인사이기 때문이다.
“빈 필하모닉과 저는 여러분께 기원합니다.” (Die Wiener Philharmoniker und ich wünschen Ihnen)
이러한 지휘자의 말에 단원들이 소리 높여 전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Prosit Neujahr!)
/심광도 시민기자
관련기사
잠깐! 7초만 투자해주세요.
경남도민일보가 뉴스레터 '보이소'를 발행합니다. 매일 아침 7시 30분 찾아뵙습니다.
이름과 이메일만 입력해주세요. 중요한 뉴스를 엄선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