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흔치 않은 2대 걸친 거장 이야기
아들 성취에 묘한 경쟁심 품은 아버지
잘못 온 '라 스칼라' 제안 갈등 폭발
연주되는 '주를 찬양하라' 역설적 승화

가업을 잇는다는 것은 어쩌면 주체적인 인생을 옭아매는 사슬일 수도 있다. 하지만 피를 물려받은 자가 그 재능을 계승한다는 것은 해당 분야에서 쌓아온 노하우를 다음 세대로 물려주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음악사에서 2대에 걸쳐 큰 이름을 남긴 경우는 흔치 않다. 

작곡가의 경우 선뜻 떠오르는 이름이라면 바흐와 그의 아들들, 그리고 요한 슈트라우스 일가 정도이다. 전자의 경우는 아버지의 명성과 업적을 뛰어넘지 못했고, 후자는 오히려 아들이 더 유명해 왈츠의 왕과 황제라는 칭호를 나눠 가졌다. 어느 경우이거나 서로를 바라보는 심정은 어땠을까? 충분히 시대를 대표할 만한 훌륭한 음악가였음에도 아버지가 쌓아 올린 거대한 음악적 업적에 바흐의 아들들은 아연했을 것이다. 반면 자신이 누리던 인기는 물론 음악성마저 훌쩍 뛰어넘어 버린 아들 요한을 바라보는 아버지 요한은 묘한 경쟁심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서로가 피로 맺어진 부자(父子)이자 스스로의 한계를 돌아보게 하는 라이벌이자 거울이었다. 

◇연말 한국을 찾은 세계적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들

지휘계는 어떤가. 올해는 10월과 11월 두 달에 걸쳐 세계 유수 오케스트라들의 공연이 이어지며 풍성한 들을 거리로 가득했다. 3대 메이저인 베를린 필, 빈 필, 그리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자랑 로열콘세르트허바우. 이에 더불어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오슬로 필, 체코 필, 런던 필까지 이름만으로도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악단들이 한국을 찾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가 컸던 악단은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였다. 앞서 언급한 악단들과 비교하면 다소 생소하겠지만 '파보 예르비'라는 지휘자를 향한 신뢰가 컸던 때문으로 작년 자신이 창단한 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이끈 통영에서의 공연은 내가 경험한 최고의 음악적 순간 중 하나였다. 

그리고 몇 달 전 6월에는 스위스의 루체른 오케스트라가 방한했었다. 협연은 임윤찬이었고 지휘는 미하엘 잔데를링이었다. 파보 예르비와 미하엘 잔데를링. 이 두 지휘자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아버지가 지휘자, 그것도 시대를 대표하는 명 지휘자였다는 것이다. 네메 예르비, 그리고 쿠르트 잔데를링. 과연 그들이 이전 아버지의 이름으로 이루었던 명성과 음악적 성취를 넘어설 수 있을까 하는 것은 과거 네메와 쿠르트를 사랑했던 팬들에게 관심 어린 화두다. 이러한 도전이 아직은 진행형인 가운데 파보와 미하엘에게 아버지의 이름은 버팀목이자 걸림돌이기도 하다. 아니 어쩌면 아버지란 이름은 세상의 모든 아들들에게 넘기 힘든 산이자 경외의 대상일지도. 

◇영화 속 아버지와 아들의 엇갈린 운명

세계적인 권위의 빅투아르 상을 받는 드니 뒤마르. 그는 아버지 프랑수아의 뒤를 이어 지휘자가 되었고 이 자리에 이르게 되었다. 모두가 축하하는 자리, 하지만 신경이 쓰이는 것은 이곳 시상식에 아버지가 자리하지 않았다는 것이며 과연 이 성과를 어떻게 생각하실지이다. 걱정했던 것처럼 TV로 아들을 바라보는 프랑수아의 표정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앞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자신의 업적이 왠지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다. 둘의 만남은 눈치와 질투로 어색했고 다음 날 리허설을 향한 발걸음 중 마주친 이들이 전하는 축하 인사를 프랑수아는 심드렁하게 대한다. 

그러다 받게 된 한 통의 전화. 라 스칼라의 차기 지휘자로 내정되었다는 감격스러운 소식에 뛸 듯이 기뻤으며 지금까지 자신을 괴롭히던 스스로를 향한 연민과 상실감은 깨끗이 사라져 버렸다. 얼마나 바라고 기다리던 라 스칼라의 입성인가. 

그렇지만 큰일도 이만한 큰일이 없다. 담당자가 실수로 아들 드니에게 가야 할 전화를 아버지인 프랑수아에게 해 버린 것이다. 물론 같은 뒤마르이기에 일어날 법한 실수이지만 이 무슨 결례란 말인가. 이 사실을 먼저 전해 들은 드니는 난감할 지경이다. 아버지가 위대한 지휘자이며 자신은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피력해 보지만 책임자는 입장이 명백하다. 

그렇다면 이 사실을 어떻게 아버지에게 알린단 말인가? 자신의 꿈이 다가왔다며 아이처럼 기뻐하시던 모습을 보았기에 평생의 꿈을 뺏은 것 같아 죄책감마저 드는 상황. 하지만 사실을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갈등은 폭발하고야 만다. 서로에게 가해지는 공격, 그리고 이로 인한 상처들. 그냥 둔다면 곪아 더 이상 치유가 불가능할 것 같고 바로잡자니 오해와 연민이 겹쳐 더 큰 상처가 될 것 같다. 그들은 화해할 수 있을까? 화해한다면 과연 어떤 방법이 좋을까? 

지휘자, 그것도 거장(마에스트로)인 두 인물이 주인공이니 당연히 영화 속 많은 명곡이 등장한다. 택시 안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던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아들이 지휘하고 있음에도 아버지 프랑수아는 볼륨을 줄이거나 채널을 바꿔 달라고 부탁한다. 라 스칼라로부터 전화를 받는 리허설 장면에서 프랑수아가 오케스트라를 훈련시키던 곡은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 중 2악장 스케르초이다. 이 외에도 귀에 익은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와 슈베르트의 세레나데가 화면을 통해 등장하며 영화의 마지막 감동의 순간에 흐르던 곡은 비밀로 하겠다. 

◇ 모든 것을 정화하는 모차르트 선율

이처럼 많은 명곡이 펼쳐지는 가운데 순전히 음악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을 뽑으라면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1756~1791)의 'Laudate Dominum'(주를 찬양하라)가 흐르던 순간일 것이다. 녹음 부스 안,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 평화로운 오케스트라의 반주가 흐르고 이를 지휘하고 있는 이는 드니다. 이미 아버지와의 갈등이 폭발했고 한바탕한 후이다. 그럼에도 울려 나오는 선율은 천국의 것으로 전주에 이어 들려오는 흑인 소프라노의 목소리는 천사의 노래인 듯 평화롭다. 지휘자 드니는 계속해서 주를 찬양하는 곡임을 악단에 이르지만 그럴 필요도 없이 곡 자체가 이미 안식이며 위로다. 

이러한 곡은 1779년 잘츠부르크 대성당에서의 미사를 위하여 작곡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놀라운 것은 이 곡이 구상되던 시기 모차르트의 심경이다. 1777년 잘츠부르크를 떠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모차르트는 참담한 현실에 직면한다. 만하임에서 만난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성공을 기대했던 파리에서 인기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맞이한 어머니의 죽음. 그의 심경은 참담했으며 결국 잘츠부르크로 돌아와야만 했다. 이 시기를 아울러 구상하여 완성한 곡이 바로 'Vesperae Solennes de Confessore' K.339(구도자를 위한 저녁기도)이며 총 6곡의 구성 중 5번째 곡이 바로 'Laudate Dominum'이다. 하지만 들어보라. 어찌 체념과 슬픔으로 괴로운 이가 창조한 곡이라 하겠는가? 모든 것을 정화하는, 영원히 평화로운 곳에서나 존재할 법한 선율이 오로라가 되어 우주 끝까지라도 퍼져나갈 기세다. 어쩌면 모차르트는 자신의 언어인 음악을 통해 스스로를 위안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영원하신 사랑 우리 위에 넘치고, 자비로운 마음 끝이 없도다."

/심광도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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