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하지만 아름다운 지구, 산은 솟았고 물은 흐르지만 생명은 찾아볼 수 없는 이곳의 하늘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거대한 외계 비행체. 이윽고 눈, 코, 입을 지녔지만 결코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존재가 등장하고 DNA화되어 세상에 뿌려진다. 그렇게 영화는 ‘인류의 기원은 이러하다’ 밝히며 시작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지구의 풍광이 여전한 가운데 스코틀랜드의 어느 동굴에서 오래된 벽화가 발견된다. 고고학자인 엘리자베스와 찰리는 벽화 속 하나의 그림을 바라보며 놀라워한다. 우주지도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이미 발굴된 고대의 유적들 속에서도 같은 패턴의 벽화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찾으러 오길 바란 거 같아.”
이로부터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우주를 향해 빠르게 뻗어가는 우주선. 인류의 조상을 찾아 떠난 탐사선 ‘프로메테우스’호다. 엘리자베스와 찰리를 포함한 승무원들은 냉동수면 상태이며 인공 로봇(AI) 데이비드가 그들의 생명과 우주선을 관리하고 있다. 그렇게 2년여의 운행을 거쳐 드디어 도착한 Lv223 행성. 엘리자베스와 찰리가 깨어난 승무원들에게 이곳에 온 목적을 알리지만 모두가 코웃음 치고 착륙을 시도하던 중 인공 구조물을 발견한다. ‘이게 장난이 아니구나’ 싶었을 놀라운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내부 탐사를 통해 발견한 인간의 얼굴 형태를 지닌 거대한 동상과 어마어마한 양의 기괴한 캡슐들. 그렇게 탐사가 이어지고 남겨진 2000년 전의 홀로그램을 단서로 이곳의 정체가 밝혀져 간다. 이 와중에 인간을 위해 헌신해야 할 데이비드의 행동이 왠지 수상하다.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행세다. 그리고 마침내 두려운 존재들이 깨어나려 한다.
과연 지구로부터 조 단위 킬로미터가 떨어진 이곳에서 살아남아 인류의 조상을 만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들은 우리에게 우호적일까 적대적일까? 2000년을 잠들었다 깨어난 무시무시한 괴생명체는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이며 목적은 무엇인가?
모두가 잠든 우주선, 오직 데이비드만이 깨었다. 로봇이니 잠이 필요할 리 없고 에너지만 주어진다면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이행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것)도 놀이가 필요했던가. 각종 고대언어를 습득하는 것 외에도 승무원들의 잠을 훔쳐보거나 농구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러한 배경을 타고 흐르는 음악이 있다. 평화롭지만 어딘지 우울한 감성이 감도는 선율. 바로 폴란드의 작곡가이자 피아노의 시인 ‘쇼팽’(Frédéric Chopin·1810~1849)의 ‘프렐류드’ 중 15번(Prelude Op.28: No.15 in D flat Major), 일명 ‘빗방울 전주곡’(Raindrop)이다.
쇼팽의 전주곡을 언급함에 있어 그의 뮤즈이자 심리적 어머니였던 조르주 상드의 이야기를 피해 갈 수 없다. 그녀는 당시의 유명한 소설가였으며 여성을 향한 차별에 일침을 불사하는 전사였고 자유로운 사랑의 권리를 주장하는 개혁가였다. 그런 그녀가 폴란드에서 파리로 건너온 젊은 음악가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어쩌면 필연이었을 것이다. 뛰어난 음악성과 낭만의 서정을 지닌 매력적인 예술가. 어찌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쇼팽의 병약한 모습은 상드에게 모성적 보호 본능마저 일으키니 이젠 자신에게 찾아온 새로운 사랑이 지키고 보호해야 할 운명처럼 여겨졌다. 그렇게 둘은 스페인 남부, 아름다운 지중해의 섬 마조르카로 사랑의 도피행각을 떠난다. 사교계의 여걸과 폴란드에서 건너온 젊은 음악가의 도피라니 세상의 여러 편견을 뒤로한다면 너무도 낭만적인 행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 이유는 그리 낭만적이지 못하다. 당시 폐결핵으로 건강이 악화된 쇼팽과 류머티즘으로 고생하던 상드가 추운 파리를 피해 따뜻한 곳으로 도피, 소위 요양을 떠나왔으니 말이다. 뭐 이유야 어찌 되었든 편안하게 건강을 챙기다 돌아왔으면 되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여느 해보다 날씨가 추웠으며 기대했던 햇살 대신 비가 오는 날이 많았다. 게다가 숙소도 마땅치 않았는데 더 속상한 것은 반드시 곁에 두어야 할 피아노도 오랜 시간을 세간에 묶어두어야만 했다는 것이다. 모두가 1838년과 1839년 사이의 겨울 벌어진 일이다.
이처럼 우울한 상황, 하지만 피아노의 시인은 창작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 시기를 걸쳐 그의 작품 중 최고의 걸작이라 통하는 일련의 전주곡들을 완성한 것이다. 실로 엄청난 창작력이다. 과연 예술은 오로지 이러한 상황에서만 샘솟는 것인가?
쇼팽의 전주곡은 모두 24곡으로 이루어졌다. 음악의 모든 조성이 사용되었으며 이는 그가 존경하던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에 대한 헌사다. 이 중 15번이 바로 영화에 사용되었던 빗방울 전주곡으로 원래 부제가 없었음에도 왼손으로 울려내는 지속적인 음형이 마치 빗방울을 연상시킨다 하여 그렇게 별칭이 달렸다. 영화 <페이스 오프>에서 얼굴이 뒤바뀐 형사와 범죄자가 양면 거울을 사이에 두고 자신의 얼굴이 되어버린 적의 모습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장면에서도 사용된 명곡이다. 이때 실내임에도 마치 비가 쏟아지는 듯 연출되었던 기억이다.
전해지는 일화도 있다. 비가 몹시도 내리는 어느 날, 외출한 상드가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자 그녀의 안위를 걱정하며 이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불안과 근심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서 말이다. 하여 들려오는 피아노로부터 울려오는 빗방울 소리를 듣노라면 쇼팽의 눈물처럼 쓸려온다.
“사랑하는 이여, 그대는 지금 무사한가요? 부디 안녕하기를.”
‘우리는 어디로부터 왔는가’라는 질문은 오래되었다. 아마도 인식이라는 것을 시작하면서부터일 거라 짐작되는 가운데 그 해답을 향한 여정도 그만큼이 흘렀다. 종교를 믿는 이들이라면 교리에 입각한 답을 내놓을 것이고 과학에 근거를 둔 자들은 이를 비웃으며 진화론을 주장할 것이다. 과학이 그리 큰 힘을 받지 못하던 시절은 초월자의 창조론이 대세를 이루었지만 과학이 현저히 발달한 지금은 진화론이 인류의 기원을 설명하는 데 기본이 되었다. 누군가가 어렵사리 생명의 기원에 창조론적 의견을 얼핏이라도 제시한다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취급을 받아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으로 정답!’ 하며 맺기에는 찜찜한 구석이 많다.
탐사의 선봉에 선 엘리자베스의 목에는 십자가가 걸렸다. 인간의 기원을 찾는 첨단의 과학적 여정의 주체로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낸 조상은 그저 비슷한 형상을 지닌, 초월적 존재를 꿈꾸는 또 다른 외계 생명체일 뿐이다. 동료이자 연인인 찰리는 이제 십자가를 벗으라고 한다. 그들이 우리를 만들었으니 말이다. 자신들이 이룩한 위대한 발견을 자축하자는 의미도 지녔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도무지 내려놓을 생각이 없다. 아직도 답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 그들은 누가 만들었는데?”
/심광도 시민기자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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