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이 다시 오르고 있지만 정작 농민들은 생산비도 건지기 어려운 현실에 놓여 있다. 가격은 올랐다고 하지만 비료·농약·인건비가 몇 년째 뛰면서 남는 몫은 더 줄었다. 윤석열 정부 때 물가를 자극하지 않겠다는 이유로 쌀값을 눌러 잡았다. 이후 정권은 바뀌었지만 농민의 생산비 구조나 농촌 경제의 지속 가능성은 정책에서 좀처럼 고려되지 않는다.소비자는 싼값을 원하고 정부는 안정된 물가를 말한다. 하지만 그 균형을 농민의 희생 위에 얹어둔다면 오래 버틸 수 없다. 농업은 시장 논리만으로 굴러가는 산업이 아니다. 식량과 지역 생태계를 지탱하
백반(白飯)은 백미로 만든 흰쌀밥을 뜻하면서도 밥·국·반찬 등을 한 상에 차려놓은 음식을 의미한다. 백반은 ‘오늘 뭐 먹지’가 일생일대 고민인 나를 포함한 직장인들에게 늘 사랑받는 점심 메뉴이기도 하다.얼마 전 자주 가던 백반집에서 이달 말 영업을 종료한다는 알림을 봤다. 8000원에 매일 다른 국과 반찬 일곱 가지가 나오던 곳이었다. 점심이면 인근 일터 사람들로 북적였고 60~7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 두 분이 바삐 음식을 만들고 옮겼다. 백반집은 노동집약형이다. 이곳의 경우 매일 장을 봐야 하고 매일 다른 음식을 해야 했을 것이다
아날로그 감성에 푹 빠져 레코드판을 모으는 취미가 생겼다. 분위기 좀 잡고 음악을 들으려니 소리가 한쪽에서만 나온다. 오디오 케이블이 문제라는 결론을 내고 온라인 쇼핑몰에 주문하기로 했다. 4000원도 안 되는 가격에 배송료가 공짜다. 게다가 지금 주문하면 새벽에 도착한다니.출근길 대문을 여니 새벽에 도착한 택배가 놓여있다. 대문 안으로 던져 넣고 잰걸음으로 나선다. 퇴근 후 케이블을 꽂아 들어 볼까 하다 피곤함에 바로 소파에 드러눕는다. 눈을 뜨니 어느새 자정에 가까운 시각이다. ‘늦은 밤 음악을 틀면 민폐겠지?’ 싶어 내일로 미
청둥오리 두 마리가 주남저수지를 거닐고 있다. 물에 코를 박고 먹이를 찾는다. 먹느라 바빠 서로 멀어지다가도 다시 가까워진다. 한눈에 봐선 부부인지, 형제·자매인지 알 수 없다. 노을 그림자가 암수를 가리고, 같은 배에서 나왔는지는 알 길이 없다.최근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성별이 같더라도 ‘배우자’, ‘비혼 동거인’으로 입력할 수 있게 됐다. 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가 주도하는 인구주택총조사는 정책 수립 기초자료로 활용된다. 성소수자 단체 등은 이번 변화가 “성소수자 존재가 국가 통계에 기록되는 역사적 결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생
창원시 마산회원구 합성동 지하상가 벽에 붙은 ‘대피소’ 안내 표지판이 눈에 띈다. 예전에는 한글과 영어로만 쓰여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한글·영어뿐만 아니라 중국어·일본어·베트남어·태국어로 대피소를 알려주고 있다. 창원에도 다양한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 이미 많다는 뜻일 테다.지난 주말 창원에서 국내 최대 규모 ‘문화다양성축제 맘프(MAMF) 2025’가 열렸다. 여러 나라에서 온 많은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자국의 전통문화와 음식을 선보이며 축제를 즐겼다.이렇듯 우리 사회는 이미 다민족·다인종·다문화 사회다. 여기에 혐오와 차별이
일본 어느 바다에서 푸른바다거북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다. 사람은 본체만체, 거북은 온순하고 느긋했다. 이런 순한 성격이 인간들에게는 약점으로 인식됐고 많은 거북이 사냥당했다. 결국 거북은 절멸 위기에 빠졌고, 세계자연보전연맹은 1982년 거북을 멸종위기 생물로 지정했다. 그로부터 43년 후 연맹은 푸른바다거북의 멸종위기 단계를 ‘위기’에서 ‘관심 대상’으로 조정했다. 거북의 개체수가 약 20~30% 증가한 까닭이다. 그동안 시민단체들이 거북과 알을 보호하기 위한 서식지 순찰, 남획 중단을 촉구하는 홍보활동을 벌인 성과가 빛을 발했다
나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문화동에서 줄곧 살고 있다. 잠깐 떠난 적도 있지만 다시 돌아왔다. 동네 사람들 대부분이 그 시간을 동고동락해 골목에서는 늘 인사와 대화가 오고 간다. 어릴 적엔 열쇠 없이 외출했다가 집 문이 잠겨 있으면 가족이 돌아올 때까지 옆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밥을 얻어먹으면서 기다렸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니까.어느 날은 집 밖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났는데 영 마음이 찝찝해 나가봤다가 또 다른 옆집 아저씨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머리를 다친 것을 발견하고 신고한 적이 있다. 추석 연휴에 인터넷에서 이웃집 문이 열리는
시곗바늘이 수요일 0시를 가리키자마자 휴대전화를 켰다. 카드사 애플리케이션을 열고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신청했다. 이튿날 오전 8시쯤 소비쿠폰 10만 원이 들어왔다는 문자메시지가 뜬다.‘오랜만에 게임 타이틀을 하나 살까? LP 음반을 하나 살까?’라며 행복한 고민을 하던 찰나 초인종이 울린다. 인터폰 너머 낯익은 모습. 갑작스러운 장인·장모의 방문이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모시고 나가 식사를 대접했다. 아내 저녁거리로 부대찌개 하나 포장하고 단골 카페에서 커피와 빵을 몇 개 사고 나니 잔액이 4000원밖에 남지 않았다. 10만
시멘트 틈새에 식물이 자란다. 이름은 뽀리뱅이, 꽃말은 순박함이다. 열매에 갓털이 있다더니 바람 타고 여기에 도착했나 보다. 그 뒤 담벼락에 레몬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다. 조화로운 듯싶지만 실은 껍데기일 뿐. 뽀리뱅이와 어떤 상생 관계가 있는지, 공존하곤 있는지 의문이다. 뿌리내린 틈새가 좁아 갑갑해 보인다. 뽀리뱅이 줄기는 속이 비어 쉽게 끊긴다. 역시나 위쪽 줄기가 꺾여있다. 하지만, 또 다른 특징은 올곧게 자란다는 것. 꺾인 줄기가 다시 허리를 펴고 있다. 햇빛에 치유와 생명을 갈구한다.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고민스럽다.
극심한 가뭄으로 고통을 겪는 강원 강릉에 지난 주말 100㎜가량 비가 내렸다. 해갈될 만큼 충분한 비는 아니었지만 시민들은 ‘황금비’라며 반겼다. 강릉 상황과 대비되면서 이웃한 속초가 주목받았다. 속초는 과거 제한급수를 여덟 차례 시행했을 정도로 가뭄 피해가 상습적인 지역이었다. 이런 경험으로 행정에서는 가뭄에 대비하기 위해 지하댐을 건설하고 암반관정을 뚫는 등 시설 투자에 적극 나섰고, 이번에 빛을 발했다.행정은 재해 재난에서 시민을 보호해야 한다. 여기에는 행정 책임자의 자질이 큰 몫을 차지한다. 단비가 내리기만 바라면서 기우제
열대야로 잠 못 드는 9월 밤, 보름달이 새까만 하늘 위에 밝게 떴다. ‘다음 보름달(추석쯤)이 뜰 때도 이렇게 더울까’라는 생각에 잠기며 달을 바라봤다.지난 10년 사이 ‘여름 추석(秋夕)’이라는 말이 굳어졌고, 지난해에는 역대급 폭염 추석(9월 17~18일)을 보냈다.2000년대에는 성묘 가는 길에 외투를 여미고, 밤송이를 까던 손끝에 서늘함이 있었다. 이때는 따뜻한 탕국 한 사발을 들이켰지만, 현재는 땀을 뻘뻘 흘리며 시원한 냉면을 먹으러 간다. 가을이 사라진 듯했던 지난해 10월을 떠올리면, 앞으로 추석에 시원해질 것이라는
경남도민일보에는 장애인 화장실이 없다. 화장실은 문턱이 높아 휠체어로 진입할 수도 없고 심지어 일부 시설은 몹시 낙후돼 있다. 화장실은 그곳의 얼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 나는 사내에서 휠체어를 탄 외부 방문객을 마주칠 때면 마음 한편이 늘 죄송했다.얼마 전 일본에서 만난 화장실은 여러모로 인상적이었다. 남성·여성·장애인·남아·여아·영아를 위한 공간을 세밀하게 나눈 것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남성·여성 화장실 내부에는 모두 기저귀교환대가 설치돼 있었다. 널찍한 장애인 화장실에는 용도가 다른 세면대가 두 개 있었고 한 곳에는 샤워기까
여름휴가로 일본 삿포로를 다녀왔다. 삿포로에 왔으면 '닛카 상'이라 불리는 주류 광고판 앞에서 사진 하나는 찍어 줘야 한단다. 새벽 1시가 다 되어갈 즈음 인증 사진을 한 장 찍고 왔다. 늦은 시간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려 모여 있었다.요즘 말 많고 탈 많은 창원시 대상공원 '빅트리'가 생각났다. 과연 창원을 찾은 사람들이 인증 사진을 찍기 위해 빅트리 앞에서 줄을 설까? 인공적인 형태도 맘에 들지 않지만 그다지 독창적이지도 않아 보인다. 334억짜리 전망대가 광고판에 밀리는 모양새다.문득 은퇴 후 빅트리 아래 식당을 하나
홍 할매(81)가 손을 등 뒤로 감춘다. 작은 체구에 비하면 유달리 굵은 손가락이다. 손가락 마디는 굽어 있다. 그의 말에서 제주 억양이 묻어난다. 20대에 통영 비진도로 시집왔다고 한다. 홍 할매는 섬을 넘나들며 평생 물질했다. 그는 "바다에서 물건 줍느라 손이 이 모양"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런지 참 예쁘네요." 할매가 씨익 웃는다. 이제 자랑스럽게 카메라 앞으로 손을 내민다.해녀 몸은 물질한 세월을 기억한다. 유전자로도 확인됐다. 국제학술지 는 잠수 적응에 특화된 '해녀 변이 유전자'가 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고양이 한 마리가 동네 편의점 앞에서 어슬렁거렸습니다. 가까이 가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할 일을 하거나 꿀잠에 빠져있습니다. 마음씨 좋은 주인아주머니가 집을 만들어주고부터는 아예 자리를 잡고 편의점의 마스코트로 손님들 사랑을 독차지하게 됐습니다.눈이 흐릿하고 털이 거친, 어딘가 아파 보이는 고양이가 있습니다. 고양이용 참치캔을 사다 주니 허겁지겁 비워냅니다. 얼마간 간식을 가져다줬는데 어느 날부터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 뒤로도 며칠 캔을 들고 고양이가 늘 있던 풀숲을 찾아봤지만 다시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휴대전화 사진첩을
작은 딱새 한 마리가 집 대문 위에 조심스레 앉아 있다. 아직 솜털이 군데군데 삐죽 솟아 있는 걸 보니, 몸집도 마음도 아직 덜 자란 듯하다. 그런데도 녀석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아마 둥지를 떠나는 연습 중인 모양이다. 근처 어딘가에서 딱새 부부가 연신 울음을 내며 새끼를 부른다. 녀석은 그렇게 울음소리를 따라, 낯선 곳을 지나쳐 이 자리에 닿았나 보다. 그 여정이 얼마나 멀고 낯설었을지 알 수 없지만,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을 것이다.세상은 아직 크고, 앞으로 다시 날아가야 할 길도 많겠지만, 지금은 잠시 이곳에
경남도민일보 편집국 내 휴게공간에는 커다란 손팻말이 여러 개 놓여 있다. 동료들이 각종 시상식에서 받은 것이다. 좋은 일로 받았으니 버리기가 애매해 이곳에 두었겠지만 결국 쓰레기다. 이런 '손팻말들'을 자주 볼 수 있는 지면이 있다. 바로 경남도민일보 12·13면인 '사람들'이다.이 지면에는 성금 기부, 헌혈 캠페인, 쓰레기 줍기 등등 여러 행사 소식이 실린다. 행사는 제각각이건만 사진은 어째 비슷하다. 참가자들이 펼침막 뒤에서 혹은 손팻말을 들고 선 사진이 그것이다. 저 펼침막·손팻말도 사진만 찍고 나면 쓰레기가 된다. 농촌에서
알람 소리에 눈을 뜨자마자 컴퓨터를 켠다. 팔순이 넘은 장모님의 여성회관 강좌를 등록해 드리는 날이다. 모집인원 수가 적어 잠시 머뭇대도 끝나버린다.몇 년 전만 해도 직접 등록하는 방식이라 장모님은 이른 새벽부터 돗자리를 깔고 줄을 섰다. 3년 전부터 누리집에서 신청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편리해진' 것이라고 하지만 이런 세상이 어르신들에게도 '편리한' 것일까. 컴퓨터의 '컴' 자도 모르는 장모님을 대신해 내게 1년에 두 번 미션이 주어졌다. 장모님 명의의 휴대전화가 없다 보니 본인인증도 번거롭다. 예전에 잠깐 주춤거리다 실패한
회사를 나섰다. 2주간 주말도 없이 보낸 터. 본업에 신경 써야 하건만 부업(?)에 얽매인 상황이라 심란했다.노을이 지고 있었다. 그림 같은 모습. 시티팝을 들어야 할 것 같은, 뭐 그런…. 위안이 됐다.마음을 움직이는 노을을 볼 때면 떠올리고는 한다. 남해안이든 서해안이든, 붉게 타들어 가고 있을 그 어딘가를.그러고 보니 그때도 노을이 멋졌었다. 어디에선가 타들어 가고 있었을 것이다.그렇게 2025년 7월이 지나간다. /류민기 기자
종종 점심을 먹으러 들르는 기사식당 화장실에 갔다가세면대 위에 설치된 칫솔 보관함을 보았다. 식당 주인은 여기에서 밥을 먹는 택시 기사들을 위해 마련했다고 한다. 칫솔 케이스의 웃는 얼굴을 보니 덩달아 미소가 그려진다.좁은 택시 운전석에서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기사들에게 한 끼 식사는 잠시나마 고단함을 씻어내는 휴식이자 재충전의 시간일 테다. 칫솔 보관함은 그런 기사들 덕분에 생계를 꾸려가는 식당 주인의 고마움과 배려를 담아 건네는 작은 선물이지 않을까. /강해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