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생활양식 바꿔놓은 과학의 힘
이공학부 홀대 정책 '문과라서 죄송'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프린키피아)>라는 책을 아시나요? 아이작 뉴턴의 1687년도 저작입니다. 읽어 보신 분은 드물겠지만, 사실 이 책의 내용은 많이들 알고 계실 겁니다. 가령 'F=ma' 같은 공식이요. 이건 뉴턴의 제2법칙인 '가속도의 법칙'입니다.

그런데 뉴턴은 단지 천재라서 운동 법칙을 발견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태어나기 약 1년 전 78세로 사망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이미 힘과 물체에 관해 이뤄둔 연구에 기초한 것입니다.

1727년 뉴턴이 사망하자 그 장례식장에 프랑스 망명객 한 명이 참석합니다. 프랑스 어느 귀족에게 대들다 바스티유 감옥에 갇혔던 그는 출옥 후 영국으로 망명한 상태였죠. 그가 바로 볼테르입니다. 그는 영국 왕의 목도 거침없이 날리던 영국 귀족들이 일개 수학 교수인 뉴턴의 관을, 그것도 왕족들이 묻히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운구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에 빠집니다. 이때 볼테르는 <프린키피아>가 단순한 물리학 교과서가 아니라 구체제를 무너뜨릴 시대정신임을 간파하죠. 2년 뒤 프랑스 살롱계에 복귀한 그는 후작 부인인 에밀리 뒤 샤틀레를 만나 그녀와 함께 프랑스에 뉴턴 사상을 전파하는 데 온 힘을 쏟습니다.

에밀리는 그냥 귀족 부인이 아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수학에 푹 빠져 살았던 그녀는 자신의 성에 과학 연구기지를 건설하고 온갖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그 노력 끝에 '제곱'의 중요성을 발견합니다.

뉴턴은 질량(m)이 3㎏인 공이 10㎞/h의 속도(v)로 날아간다면 이 공의 에너지(E)는 30이라고 생각했습니다(E=mv¹). 그러나 에밀리는 이와 달리 이 경우 공의 에너지는 3×10², 즉 300이라고 생각했습니다(E=mv²). 이는 독일의 외교관이자 자연철학자인 라이프니츠의 관점이었는데, 에밀리는 '무거운 추를 무른 진흙에 떨어뜨리는 실험'을 통해 이 관점을 입증한 것이죠. 만일 뉴턴이 맞았다면, 추를 2배 빠르게 떨어뜨리면 진흙이 2배 더 깊이 파여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4배 더 깊이 팼던 것입니다. 즉, E=mv²일 때의 예측과 일치한 것입니다.

그리고 1905년 아인슈타인이 제곱을 이용하여 인류의 운명을 바꾼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합니다. 'E=mc²'가 탄생한 것이지요.

갈릴레오부터 아인슈타인에 이르기까지 4세기의 긴 세월 유럽이 전 지구를 지배하고 인류의 생활양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부산시 중구 광복동에 동주여고가 있어요. 그곳 정문에 '한국물리학회발상지'라는 작은 기념비가 있죠. 이 학회는 1950년 한국전쟁 중에 부산에서 창립했어요. 당시 회장 고 최규남 교수는 나중에 서울대 총장, 문교부 장관을 거쳐 하와이 교민들 기부로 인천에 만들어진 인하공대 이사장을 맡으셨죠.

오늘의 작태에 '문송(문과라서 죄송)'한 저로서는 한마디 거들 자격이 없으니 최규남 교수께서 1950년 6월 26일 자 동아일보 1면에 기고한 칼럼 일부를 인용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자연 과학에 혐오감을 가지고 공부하기를 기피하던 학생이 고등학교에 와서 … 문과를 마치고 또다시 대학 문과에 입학하여 순수한 문과계의 학문만을 학습하여 … 자연 과학에 아무런 교양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 이와 같은 인문 계통 졸업생이 사회에 나와서는 정치·경제·법률 기타 모든 중요 방면에 지도자 격으로 군림하여 이공학부 출신 기술자를 부리는 지도적 지위를 점하게 된다."

/나유신 법률사무소 우림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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