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남성당한약방 김장하 선생 삶
낮게 뜨고 잘 보이지 않는 별 같아

경남도민일보에서 최근 펴낸 <줬으면 그만이지>가 호평을 얻고 있다. 초판 1쇄 찍고 보름 만에 2쇄에 들어갔다.

김장하 선생은 50년 넘게 나누고 베풀었다. 1963년부터 지난해까지 남성당한약방을 운영하면서 아프고 병든 사람들에게서 벌어들인 돈으로 자신만 호의호식할 수는 없다며 그렇게 실천했다.

선생은 진주에서 태동한 백정의 신분 해방을 지향하는 형평운동을 사랑했다. 선생이 형평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은 것은 100억 원 넘게 들여 만든 명신고교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고 미련 없이 국가에 헌납한 직후인 1993년이었다. 선생은 이런 글을 썼다. "오늘날 '백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여러 모습의 다른 차별들이 엄존하고 있다. 남자와 여자,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 몸이 자유로운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등등…. '형평사'는 지금 없어도 형평운동은 계속되어야 한다."

선생은 평등하지 못한 여성의 처지에 주목했다. 엄동설한 추운 겨울에 자녀 손잡고 갈 곳도 없이 집에서 쫓겨난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이 숙식을 하면서 안정을 찾고 기술도 배우게 하는 보호시설을 만드는 데도 큰 힘을 보탰고 진주가정법률상담소 이사장도 맡았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과정에서 회의나 행사를 할 때 자신이 이사장이면서도 가장자리나 귀퉁이에 자리했다는 사실이다. 한가운데에 자리를 마련해 놓아도 손사래 치며 구석진 자리를 찾아갔다.

1923년 형평사를 만들었던 강상호 선생의 묘비에도 이렇게 적혀 있다. "모진 풍진의 세월이 계속될수록 더욱 그리워지는 선생님이십니다. 작은 시민이." 선생이 1999년 세운 것이지만 이름도 밝히지 않고 그냥 '작은' 시민이라 낮추었다.

재산을 나누고 베푸는 것은 어쩌면 쉬운 일이다. 자랑하지 않고 내세우지 않는 것이 훨씬 어려운데 선생은 그렇게 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해답은 할아버지가 한약방 상호로 지어준 '남성당(南星堂)'에 있었다.

'남성'은 목숨을 맡은 별자리다. 약방에서 지은 약을 먹고 오래 살라는 뜻이다. 남성은 낮게 뜨고 잘 보이지 않는 별이다. 보일 듯 말 듯하면서도 제 역할은 하는 그런 사람을 가리킨다. 빛나지 않아서 더욱 빛나는 주인을 빼닮은 상호다.

진주시는 남성당한약방을 보존하기로 했다. 선생은 보존을 오히려 반대했다. 자신을 기리는 데 활용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진주시는 기념관이 아니라 후원문화 정착과 확산을 위한 남성교육관을 올해 말 개관할 계획이다.

<줬으면 그만이지> 책 한 권 챙겨 들고 투어에 나서면 어떨까. 남성당한약방에 더해 강상호 선생 묘역, 형평운동기념탑, 명신고교, 정동초교 이순신 장군·세종대왕 동상과 영은재 등 선생이 만들고 세우고 기증한 데를 둘러보고 뜻을 새기려면 한나절도 모자라겠다.

/김훤주 출판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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