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공단의 기억〉 기록 남기는 까닭
원주민·노동자 통해 도시 역사 공유

창원은 최초의 계획도시로 우리나라 산업화를 대표한다. 1974년 설립된 창원기계공업공단은 한국을 선진국으로 끌어올린 일등 공신이다. 대기업·중소기업에서 영세기업까지 모두 무대에 올라 자신의 배역을 나름 소화했다. 깡촌이던 창원을 근본부터 새로 구성하여 경남 최대 도시로 탈바꿈시킨 지렛대도 창원공단이다.

내년이면 공단 설립 50년인데도 관련 기록은 많지 않다. 산업화와 도시의 역사에서 '신화'로 꼽히지만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기록은 거의 없다. 수치와 도표와 통계가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표정이 살아 있고 체온이 느껴지는 창원공단 이야기는 꿈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세월이 흐르는 바람에 90년대 초반까지 초기 20년 동안 공단과 함께 울고 웃었던 이들의 기억은 이미 희미해졌고 사라지고 흩어졌다.

경남도민일보가 <창원공단의 기억-뿌리뽑힌 사람들, 뿌리내린 사람들>을 서둘러 기록하고 발행에 나선 까닭이 여기에 있다.

창원의 원형과 거기 살던 사람들의 모습, 공단과 함께 삶을 꾸려온 사람들의 경험과 기억을 여기에 모았다. 이를 통해 산업화의 여정에서 고통과 고달픔을 겪은 원주민과 노동자 모두의 상처를 달래고자 했다.

전국에서 모여들어 이주민의 도시를 만든 기능공들은 잊힌 존재였다. 크고 작은 기업에 들어가 노동을 제공한 것은 대부분 공업계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젊은이들이었다. 공장에 청춘을 갈아넣으면서 창원 사람으로 재탄생하고 창원을 새롭고 젊은 도시로 만들었다.

대를 이어 살아왔던 원주민들은 그보다 더 잊힌 존재였다. 공단 때문에 수용된 것은 집과 논밭만이 아니었다. 생활과 문화와 자연환경까지 함께 집어삼켰다.

국가권력은 이전의 삶에서 뿌리가 뽑힌 그들을 아무 위로도 없이 불친절한 방법으로 여기저기 흩뿌려놓았다.

이들 원주민과 노동자를 빼놓고는 창원의 역사를 제대로 말하기 어렵다. 지금의 창원을 만든 것은 바로 그들이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다. 외람되지만 산업·행정·정치·교육은 물론 민간까지 지역사회 뜻있는 구성원이라면 두루 공유할 필요가 있는 공공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아무도 안 했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작업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뜻있는 이들의 관심과 성원이 날로 불어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의미 있는 작업이라도 하고 나서 적자가 붇고 더 가난해진다면 아무도 엄두를 내지 못할 때가 오고야 말 테니까.

덧붙이자면, 다른 데서는 볼 수 없고 여기서만 볼 수 있는 자료 사진이 풍성하다. 가만 들여다보면 그때의 시대정신과 분위기가 단박에 느껴진다. 공단이 마을을 삼킨 자리에 들어선 유허비 62개도 모두 찾아가 사진과 비문과 함께 실어서 보는 재미를 더했다.

/김훤주 출판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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